배우 박호산 (52) 만큼 대학로의 ‘장승’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대학로에서 오랜 역사를 쌓은 배우이기도 하지만 이 곳을 떠나지 않는 배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학로에서 싹을 틔워 영화로, 드라마로, 훨씬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에서 활동하지만 그는 늘 대학로로 다시 돌아온다. 최근 연극 '아트'로 무대에 선 그에게 대학로와 연극이란 어떤 의미일까. 겨울의 끄트머리의 오후, 배우 박호산을 대학로에서 만났다.
ⓒ 강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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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과 TV에서 활약하다 대학로로 돌아오는 기분은 어떤 것인가. ‘장승’이라는 타이틀은 마음에 드는지.
▷(웃으며) 기분 좋으면서도 징글징글하다. 이제 데뷔한지 28년 됐는데… 대학로는 내게…뭐 어떤 느낌일까. 연극, <우리 읍내> 속 읍내 같은 느낌이랄까? 실제로 이 동네를 구석 구석 알고 있고…. 아직도 대학로에서 10분거리에 살고 있다. 늘 이 곳에 올 때면 걸어온다. 여긴 내게 터전이자 집 같은 존재다.

▶현재의 업을 인생의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첫 생각을 했던 순간은 언제쯤 이었나
▷중학교 3학년때 처음으로 기국서 연출의 <햄릿 4>라는 공연을 봤다. 아버지가 지물포를 하셨는데 손님 중 한 명이 연극티켓을 아버지에게 줬던 것 같다. 그 티켓이 결국 내 손에 쥐어졌고, 그 표를 들고 살던 성내역에서 혜화역까지 긴 여정을 거쳐 소극장이라는 곳에 처음 온 거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봤던 그 공연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가 (지금은 이름이 기억 안 나지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를 굉장히 캐쥬얼한 대사체로 연기했었다. 그 대목에서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 한 대목이 내게 일종의 나침반이 되었다. 난 그 일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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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무대가 첫 직장으로 알고 있다. 그때는 어떤 시기였으며 어떤 기억들이 남아 있는가.
▷어릴 때 연극을 보러 다닐 때 가장 좋았던 연극이 모두 연우무대의 연극들이었다. 연우무대는 뭔가가 달랐다. 특히 연우무대의 창작극들, <한씨 연대기>, <칠수와 만수>, <최선생>,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같은 연극들은 대학로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로 창작극이 많이 만들어졌다. 처음 연우무대를 갔을 때 대학생 때였는데, 물론 너무 좋았지만 어쩌면 좀 당연한 루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연극영화과를 갔고, 자연스럽게 흘러들었던 것 같다. 어느 날 관객으로서가 공연장이 아닌, 공연 뒷편에 사무실로 들어가서 무작정 연기를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거기 앉아 있던 선배들이 나에게 기회를 줬다. 그렇게 맡은 첫 역이 <락희맨쇼>의 ‘노란머리천사’ 역이었다.

▶수 많은 공연을 했지만 가장 재미있고 즐겼던 공연이 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늘 가장 하기 힘들었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라는 연극이었는데 영화, <왕의 남자>의 기반이 되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공길’ 역할로 시작했고 이후에 나이가 들어서 연산군 역할을 했다. 특히 공길 역할을 할 때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많은 딜레마를 마주해야 했을 때 만난 연극이었고 인생의 기로에서, 생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뭐 하나 도와주는 상황이 없을 때 만났던 캐릭터였다. 탐나는 캐릭터였지만 조건이나 스케줄 면에서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궁극적으로는 쟁취(?)해서 완주했던 공연이고, 많은 선배들에게 연기로 인정을 받았던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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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는 영화, 드라마, 연극을 초월하는 배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큰 쾌감을 주는 일을 꼽으라면.
▷단연코 연극이다. 연극이 일어나는 극장, 그 공간을 매우 좋아한다.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의 집중력, 그 밀도가 느껴져서다. 그 밀도를 내가 지휘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그 밀도를 움직이고, 줄이거나 늘리고, 내가 관객의 공기를 (즉석에서) 바꿀 수 있다는 건 정말 연극만의 영역이자 매력이다.

▶최민식 배우가 미자막으로 한 공연이 2007년에 했던 연극이다. 그 공연을 할 때 본인 말로는 “똥줄이 탔다”는 표현을 했다. 박호산 배우가 요새 무대에 오르는 심경은 어떤 것이며, 언제까지 대본을 다 외우며 무대에 오르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배우마다 다르겠지만 대사를 외운다기 보다 맥락을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대사를 외우는 일이 부담이 되었던 적은 솔직히 없다. 연습기간에 맥락을 완전히 익혀 놓으면 대사를 잊어버려도 어떻게든 비슷한 표현으로 채워 낼 수가 있다. 워낙 체화 되어 있는 일상이라 사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이걸 외우거나 익히는게 어려워 질 것 같진 않다. 물론 언제까지라 하면 정말 죽을 때 까지다. 살아 있는 한, 공연을 하고 싶다.

▶현재 하는 공연, <아트>에 대해 설명해 달라.
▷<아트>는 이미 10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공연이다. 나도 오래 전에, 정보석 선배가 했을 때 이 연극을 본 적이 있었다. 블랙 코미디고, 궁극적으로는 (한 일상적인 사건을 통해) 세 친구의 우정, 혹은 역학관계를 들여다 보는 이야기다. 이번 공연에서 난 ‘이반’ 역할을 맡았다. ‘이반’은 셋 중 가장 웃음을 많이 자아내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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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못해 본 역할이 있나.
▷매우 많다. 사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를 하고 싶었지만 당시에 내가 “젊지 않다”는 이유로 안됐다. 정말 그 역이 가진 ‘절실함’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해 본 역 보다는 안 해 본 역, 탐험하고 싶은 역들이 훨씬 더 많다.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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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 동안 앉아서 이야기를 했음에도 박호산 배우가 기억하는 공연 이야기, 대학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들 중 하나는 이야기의 한 챕터가 넘어갈 때 마다 그의 눈빛과 표정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 자리에서, 늘 한 자리를 지키고 목도했던 사람의 표정과 기운이었다. 300편 가까운 연극을 했지만 앞으로 하고 싶은 역이 더 많다는 박호산 배우. 오늘도 대학로에 가면 그가 있을 것만 같다. 김효정 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