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석 칼럼] 국민연금이 '등골 브레이커' 안 되려면
국책 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국민연금을 신·구연금으로 분리하는 구조개혁을 제안했다. 개혁 이후 낸 보험료는 신연금으로 적립해 나중에 보험료와 운용수익을 돌려주고 개혁 전 구연금은 기존에 약속한 연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현 국민연금은 낸 보험료보다 더 받는 구조다. 보험료율 9%에 소득대체율 40%를 약속한다. 문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 재정계산에 따르면 현 국민연금은 2041년 적자전환하고 2055년 고갈된다. 젊은 세대가 ‘내기만 하고 못 받는 것 아니냐’며 국민연금을 불신하는 이유다. 고갈 이후에도 약속한 연금을 내주려면 미래 세대의 보험료율을 33.4%까지 올려야 한다. 국민연금이 감당하기 어려운 ‘등골 브레이커’가 되는 것이다.

이는 현 국민연금이 뒷세대가 앞세대를 부양하는 방식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인구가 늘어날 땐 이 방식이 통할 수 있다. 하지만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젊은 층은 줄고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선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물론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을 하면 연금 고갈 시기를 일시적으로 늦출 순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되긴 어렵다. 지금 당장 보험료율을 18%로 올려도 2082년이면 기금이 소진된다는 게 재정계산 결과다.

그런 점에서 KDI의 구조개혁 방안은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신연금은 기금 고갈 우려가 없다. 낸 보험료에 운용수익만큼만 돌려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독일 스웨덴 덴마크 싱가포르 등 상당수 국가가 큰 틀에서 이런 방식을 쓰고 있다. KDI는 신연금 아래에서 40% 소득대체율을 달성하려면 보험료율이 15.5%는 돼야 한다고 분석했지만 가입자들이 원한다면 이보다 ‘덜 내고 덜 받는’ 방안도 가능하다.

일각에선 이렇게 할 바엔 국민연금 의무가입을 폐지하고 개인이 알아서 노후자금을 굴리게 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민간 연금보다 훨씬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자산 배분이나 수수료 측면에서 유리하다. 그만큼 수익률을 더 높일 수 있다.

KDI식 해법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구조개혁은 시간이 걸린다. 지금 모수개혁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구조개혁 논의까지 더해지면 연금개혁 자체가 장기 표류할 수 있다.

연금이 이원화되면 구연금에는 보험료가 더 이상 쌓이지 않는데 여기서 약속한 연금을 내줄 때 부족한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도 논란이다. KDI는 부족분이 609조원이고 개혁이 늦어지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부족분을 정부 재정으로 메워주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하려면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려면 기성세대의 고통 분담 방안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2단계 연금개혁’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우선 보험료율 인상 등 모수개혁을 먼저 한 뒤 그다음에 구조개혁을 하는 것이다. 모수개혁은 빠를수록 좋다. 4·10 총선이 끝난 뒤 현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까지가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지금보다 ‘더 내고 더 받는’ 안과 ‘더 내고 그대로 받는’ 안을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래 세대를 생각하면 ‘더 내고 더 받는’ 안은 적절치 않다.

구조개혁은 모수개혁 후 차분히 검토하면 된다. 이때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직역연금과의 연계도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고 형평성 있는 연금 제도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