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 질투, 우월감…죽마고우간 갈등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검은속내'
시기, 질투, 허영심, 우월감.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누구나 마음 속에 숨기고 있는 부정적인 내면을 ‘검은 속내’라고 말한다.

‘아트’는 하얀색 그림을 소재로 인간의 새까만 속내를 이야기한다. 25년 지기 친구인 세 남자가 다투고 우정을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코미디 연극이다.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대표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초연했다.

세 남자의 갈등은 ‘이것이 예술인가 아닌가’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피부과 의사인 세르주는 한 그림을 6억원을 주고 산다. 그 그림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다. 캔버스를 하얗게 칠한 게 전부다. 그는 작품을 보고 그냥 흰색이 아니라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는 예술작품이라며 눈물을 훔친다.

그의 친구 마크가 그를 비꼬기 시작한다. 흰색 캔버스를 5억원을 주고 샀다며 비웃는다. 그러면서 세르주도 사실 아무것도 없는 그림임을 알지만,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 보인다고 우기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반대로 세르주는 마크가 본인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교양있다는 사실에 자격지심을 느껴서 발끈하는 거라고 무시한다.

세르주와 마크는 그들의 친구 이반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를 험담한다. 셋이 함께 만난 자리에서 이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고 몸싸움까지 벌어진다. 결국 절교를 선언하면서 서로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자 오히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진심을 이해하고 우정을 회복한다.

누구나 마음 속에 숨기고 있는 치졸한 내면을 가감없이 그려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세르주와 마크의 관계를 통해 친한 친구 사이에도 느낄 수 있는 시기와 질투를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하는 허영심과 은연 중에 느끼는 우월 의식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등장인물들의 치졸함을 유머스럽게 표현해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입체적인 인물을 통해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랑과 우정과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갈등을 우정으로 극복한다’는 자칫 상투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줄거리가 사실적인 감정 묘사 덕분에 억지스럽지 않고 설득력 있다.
시기, 질투, 우월감…죽마고우간 갈등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검은속내'
작품의 유머 수준을 끌어올리는 세 배우의 연기가 놀랍다. 재치 있는 애드리브가 이어지면서 작품 내내 객석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대사 사이 공백과 사소한 몸짓을 활용한 감각적인 유머도 돋보인다. 한명이 대사를 할 때에도 배경에서 쉬지 않고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작품이 그냥 흰색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세르주가 그림을 위장 삼아 흰색 벽인 척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 객석에서는 웃음을 넘어 감탄의 박수가 쏟아졌다.

애드리브가 단발적으로 그치지 않게 서로 자연스럽게 받아줘 흐름을 이어가는 배우들 간 호흡도 인상적이다. 마이크 선이 삐져나오는 돌발상황도 놀림거리로 삼고 춤으로 대처하는 등 배우들의 능청스러움이 돋보인다. 작품 중 상대 배우의 즉흥적인 유머에 참지 못하고 비집고 나오는 웃음도 인간적이고 관객들이 덩달아 웃게 한다.

인간의 어두운 속내를 재치 있는 유머로 승화한 수작이다. 세르주를 연기한 최재웅과 마크 역의 김재범, 그리고 이반 역할을 맡은 박정복의 연기 센스가 관객을 휘어잡는다. 다른 공연에서는 어떤 애드리브가 나올지 궁금해 여러 차례 방문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공연은 5월12일까지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열린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