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 구하기 더 어려운 봄 폭설…탈진하고 굶주린 산양도 늘어
[유형재의 새록새록] "먹고 살기 힘들어" 야생동물의 보릿고개 '폭설'
말라비틀어진 눈 덮인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에서 직박구리가 주린 배를 채우고 있다.

다른 직박구리는 지난가을 마음 좋은 주인이 남겨 놓았으나 시간이 흘러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 까치밥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눈 쌓인 감나무에 앉아 먹을 것을 애타게 찾고 있다.

70㎝가 넘는 폭설로 온통 설국으로 변한 대관령 기슭의 강릉시 성산면 한 마을에서는 황여새 한 마리가 향나무에서 열매를 찾다가 실패한 뒤 전깃줄에 앉아 눈을 처연하게 맞고, 주변의 직박구리 몇 마리는 이 나무 저 나무를 찾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있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먹고 살기 힘들어" 야생동물의 보릿고개 '폭설'
하염없이 계속 내리는 폭설에 결국 먹이를 찾지 못한 직박구리는 나뭇가지에 앉아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강원 동해안과 산지에 이번 겨울 유난히 많은 폭설이 자주 내렸다.

동풍이 부는 2월 봄이 시작되는 시기에 많은 눈이 내리는 동해안 특성상 최고 1m에 가까운 눈은 물론 50㎝가 넘는 눈은 기본이다.

날이 따뜻해 금세 녹는다고는 하지만 한번 눈이 오기 시작하면 며칠씩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새를 비롯한 야생동물에게는 먹이를 찾기가 힘들다.

대관령 기슭의 마을 놀이터에서는 수십마리의 참새떼가 모여 앉아 이리저리 모여 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먹고 살기 힘들어" 야생동물의 보릿고개 '폭설'
강릉 남대천 주변에서는 노랑턱멧새와 방울새, 박새 등이 눈 속에 묻힌 풀씨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의 탈진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산양은 가파른 바위로 형성된 높고 험한 산악지대에 주로 서식하는 동물로 겨울철에는 두꺼운 털이 빽빽하게 나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먹이가 부족하면 나무껍질이나 이끼류를 섭식하며 겨울을 보낸다.

국립공원공단은 매년 겨울철 평균 2∼3마리가 구조되던 것과 달리 지난해 11월부터 1월 말까지 이번 겨울에는 벌써 18마리의 산양이 구조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8마리는 치료 중 안타깝게도 폐사했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먹고 살기 힘들어" 야생동물의 보릿고개 '폭설'
잦은 폭설과 강추위로 먹이를 찾지 못해 탈진한 구조 개체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있다.

이후 강원 산간에는 폭설이 1∼2차례 이어졌고 인제, 고성 등에서는 도로나 마을 주변에서 산양 목격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해지고 있어 탈진 산양은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산간에 70㎝가 넘는 폭설이 내린 22일 인제 미시령 일원에서는 새끼 고라니와 산양이 폭설에 갇혔다가 발견되는 등 강원 산간에서 야생동물의 탈진 사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먹고 살기 힘들어" 야생동물의 보릿고개 '폭설'
국립공원공단 측은 산양이 먹이나 양지바른 곳을 찾아 도로변에 출현하더라도 놀라거나 일부러 접근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12일간 179㎝라는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눈이 내렸던 2014년 2월 국내 최대의 고랭지 채소단지인 강릉 안반데기에서는 노루 10여 마리가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와 눈 속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래저래 봄 폭설은 눈을 치워야 하는 사람뿐 아니라 새를 비롯한 야생동물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린 '보릿고개'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먹고 살기 힘들어" 야생동물의 보릿고개 '폭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