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 인터뷰…"매너리즘 빠진 일본 영화계에 분뇨 투척하듯"
"과거 순환 경제 그렸지만, 오늘날에도 다가올 메시지 있을 것"
'오키쿠와 세계' 감독 "왜 분뇨 이야기냐고요? 항의의 뜻 있죠"
지난 21일 개봉한 일본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사람의 분뇨를 사고팔던 19세기 일본 에도 시대 말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도시의 인구 밀집 구역에서 분뇨를 사들여 농촌으로 가져가 더 높은 값에 파는 청년 야스케(이케마쓰 소스케 분)와 츄지(간 이치로)의 이야기다.

이들이 농가에 판 분뇨는 작물에 양분을 공급하는 비료로 쓰인다.

분뇨까지 버리지 않고 남김없이 재활용하는 순환 경제의 모습이다.

분뇨를 보여주는 장면도 많다.

흑백 영상이어서 거부감이 느껴지진 않지만,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관객도 있다.

"분뇨를 불쾌하게 여긴다면 (그래서 안 보여준다면) 그걸 수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불쾌하게 여기는 셈이 돼 영화의 본래 의도와는 정반대가 됐겠죠.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분뇨 업자들이 (남들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자유를 갈구하는 이야기여서 분뇨를 정면으로 다뤘어요.

"
26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오키쿠와 세계'의 사카모토 준지(66) 감독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사카모토 감독은 '팔꿈치로 치기'(1989)로 데뷔해 '복서 조'(1995), '얼굴'(2000), '어둠의 아이들'(2008) 등의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1973년 도쿄에서 발생한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을 다룬 'KT'(2002)로 제5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사카모토 감독이 '오키쿠와 세계'에서 분뇨를 다룬 데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그는 과거 나리타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분뇨를 투척하며 항의한 사건을 언급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일본 영화계에 싸움을 걸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며 "어찌 보면 나도 분뇨를 던지고 싶었던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일본 영화계의 매너리즘에 관해 "시청률이 높게 나온 TV 시리즈를 영화화하는 등 흥행이 보장되는 영화를 만들어 리스크를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젊은 신인 감독은 크라우드 펀딩에 의존하거나 직접 돈을 모으러 뛰어다녀야 할 상황이고, 피라미드의 정점과 바닥의 격차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오키쿠와 세계' 감독 "왜 분뇨 이야기냐고요? 항의의 뜻 있죠"
'오키쿠와 세계'도 투자 유치의 어려움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애초 장편을 기획했으나 투자 유치가 안 돼 제작자인 하라다 미쓰오 프로듀서가 자비를 들여 단편부터 만들기 시작했고, 돈이 모이면서 하나의 이야기 흐름을 가진 단편들이 덧붙여져 지금의 작품으로 완성됐다.

'오키쿠와 세계'가 여러 장(章)으로 나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영상이 잠깐 컬러로 바뀌는 것도 흥미롭다.

사카모토 감독은 "모든 영상을 흑백으로 하면 옛날이야기로만 느껴지거나 과거 작품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이야기가) 현재와 이어진다는 걸 나타내려고 컬러를 넣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에도 시대 분뇨를 소재로 순환형 사회를 그렸지만, 과거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떤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키쿠와 세계'는 순환 경제라는 주제에 걸맞게 모든 소품과 의상 등을 재활용품으로 썼다.

영화 제작에 순환 경제를 적용한 셈이다.

분뇨 업자 츄지와 몰락한 사무라이 집안의 외동딸 오키쿠(구로키 하루)의 로맨스는 순환 경제와 함께 영화의 축을 이룬다.

계층을 초월한 두 사람의 순진무구한 사랑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구로키 하루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인 오키쿠를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사카모토 감독은 구로키에 대해 "배우들은 연기할 때 무언가를 덜어내기보단 더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로키는 반대로 무언가를 덜어내는 타입"이라며 "정말 에도 시대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그 시대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고 말했다.

'오키쿠와 세계'에선 '세계'란 말이 중요한 의미를 띤다.

에도 시대 말기만 해도 외부와 고립돼 살아가던 일본 사람들에게 세계란 말은 낯선 개념이었다.

사카모토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든 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었다"며 "전 세계가 공동의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세계란 말을 넣게 됐다"고 했다.

'오키쿠와 세계' 감독 "왜 분뇨 이야기냐고요? 항의의 뜻 있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