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간 임윤찬 팬과 축구장에 간 임영웅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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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현식의 클래식 환자의 병상일기
입춘(立春)을 끼고 도쿄를 다녀왔다. 임윤찬 리사이틀을 보는 게 중심 일정이었다. 반클라이번 콩쿠르 이전을 포함해 임윤찬 콘서트는 이번이 세번째다. 콩쿠르 우승 이후에는 나같은 아저씨는 아무리해도 예매가 안되니 해외로 가는 수밖에.
올해는 사실 뉴욕에 가서 임윤찬의 카네기홀 리사이틀을 보고 싶었다. 임윤찬이 이대로 성장한다면 나중에 역사적 이벤트로 남을 수도 있는 연주회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거리와 시간, 비용 등 현실적인 여건때문에 같은 프로그램(쇼팽 연습곡 전곡)을 훨씬 가까이서 연주하는 도쿄 리사이틀을 택했다. 나처럼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연주장소인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 로비 곳곳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임윤찬의 연주에는 사계절의 자연이 다 있었다.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겨울바다가 있는가 하면 호수에 일렁이는 봄밤의 달빛, 풀밭에 살며시 내려앉는 낙엽, 여름날의 숲 위에 부는 청량한 바람 등등, 미사여구는 다 갖다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반짝반짝 찰랑이는 가벼운 소리부터, 피아노 다리에서 음향판에 이르도록 악기가 온몸으로 우는 소리까지, 실로 다양한 음향을 빚어냈다.
해석도 신선했다. 수없이 들었다고 생각한 쇼팽 에튀드인데, ‘아, 여길 이렇게 갈 수도 있구나’,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는 대목을 곳곳에서 만났다. 젊은이만의 에너지가 약동하면서도 듣는 이와 ‘밀당’에 능했다. 한마디로… 아저씨인 내가 들어도 연주 자체가 섹시했다.
청중, 특히 여성팬들이 열광하는 게 당연했다. 대중음악가수 임영웅 팬덤도 그렇지 않던가. 임영웅 열성팬을 자처하는 여성팬들이 이런 저런 화제를 낳는데, 일단 임영웅 자체가 노래를 출중하게 잘 한다. 이른바 ‘덕질’ 할 만 하니까 하는 것이다.
임영웅 팬덤은 ‘선한 영향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2023) 4월 K리그 프로축구 경기에 임영웅이 시축자로 나섰을 때였다. 임영웅 팬들이 대거 몰리면서 당시 서울 월드컵경기장에는 코로나19 이후 국내 스포츠 최다인 4만5007명의 관중이 모였다. 축구팬들은 걱정이 많았다. 경기 시작전 시축, 최대로 쳐봤자 하프타임때 임영웅의 공연만 보고 그의 팬들이 대거 빠져나가면 후반전 경기장 분위기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임영웅 팬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축구장이라는 곳 자체가 익숙치 않겠지만 축구장의 분위기와 기존 팬들의 문화를 존중해 달라는 임영웅측 요청을 팬들이 충실히 따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5일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의 분위기는 조금 아쉬웠다. 일본의 콘서트홀들이 대개 그렇듯, 이곳도 연주홀 내에서는 모두 촬영 금지다. 연주 중에만 안되는 게 아니고 커튼콜도 안되고 휴식시간에도 안된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서양 유명 홀들보다도 훨씬 엄격한 규정인데, 나는 납득이 안되지만 자기들이 그렇다는데 뭐 어쩔 수 있나. 한국사람들이 대거 몰려든 이날, 공연장 직원들은 유난히 바쁘게 ‘촬영 금지’ 팻말을 들고 다니며 사전에 주의를 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적지 않은 청중이 휴대폰을 꺼내 커튼콜 뿐 아니라 앵콜곡 연주까지 촬영하다 제지를 당했다. 직원들이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공연 중에는 쉴 새없이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고, 물병이나 프로그램책자 등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본에서 공연을 여러차례 봤지만 처음 겪는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리를 사서 온 한국인 관객이 더 비싼 구역의 빈 자리로 내려가겠다며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이건 차마 믿고 싶지 않다.
연주가 출중했으니 열렬한 환호성과 기립박수가 쏟아진 것 자체는 당연했는데, 다음과 같은 점도 좀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내가 일어서면 내 뒷사람의 시야를 가린다는 것. 적당히 나의 감동과 아티스트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으면 좀 앉아줄 필요도 있다. 내가 계속 서 있으면 내 뒷사람도 결국 일어서야 하고, 그게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모르겠는데, 일본은 워낙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경계하는 문화가 공연장에서도 일반화되어 있다지 않나. 얼마전 도쿄에서 미국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대규모 공연이 있었다. 여기서도 앞줄에서 일어서서 시야를 가로막는 외국 팬들때문에 일본 관객들이 불만을 터뜨렸다는 기사가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임윤찬은 여전히 성장 중인 스타다. 그의 번뜩이는 천재성과 온몸을 갈아넣듯 연주하는 헌신에 찬사를 보내는 해외평론가들이 있는만큼, ‘신동? 몇년 그러다 가는 애들 많아.’ ‘잔재주인지 진짜 음악인지 더 두고 봐야 해.’ ‘티켓파워? 그거 다 한국 극성팬들이 빚어낸 착시효과 아냐?’ 이런 식의 회의론을 펴는 이들도 없지 않다. 임윤찬이 가는 곳마다 한국 팬들이 따라가서 현지 관객들이 눈살 찌푸릴 행동을 하면 그런 회의론을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되겠나.
임윤찬 소속사가 팬들과의 소통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있다. 그의 연주에 걸맞는 관람매너를 지켜달라고 말이다.
▶▶▶(관련 기사) 337대 1…클래식계 아이돌, 임윤찬 티켓파워
▶▶▶(관련 기사) "너무 좋아서 쓰러질 뻔"…임윤찬, '살아있는 베토벤'으로 청중 울리다
올해는 사실 뉴욕에 가서 임윤찬의 카네기홀 리사이틀을 보고 싶었다. 임윤찬이 이대로 성장한다면 나중에 역사적 이벤트로 남을 수도 있는 연주회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거리와 시간, 비용 등 현실적인 여건때문에 같은 프로그램(쇼팽 연습곡 전곡)을 훨씬 가까이서 연주하는 도쿄 리사이틀을 택했다. 나처럼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연주장소인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 로비 곳곳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임윤찬의 연주에는 사계절의 자연이 다 있었다.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겨울바다가 있는가 하면 호수에 일렁이는 봄밤의 달빛, 풀밭에 살며시 내려앉는 낙엽, 여름날의 숲 위에 부는 청량한 바람 등등, 미사여구는 다 갖다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반짝반짝 찰랑이는 가벼운 소리부터, 피아노 다리에서 음향판에 이르도록 악기가 온몸으로 우는 소리까지, 실로 다양한 음향을 빚어냈다.
해석도 신선했다. 수없이 들었다고 생각한 쇼팽 에튀드인데, ‘아, 여길 이렇게 갈 수도 있구나’,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는 대목을 곳곳에서 만났다. 젊은이만의 에너지가 약동하면서도 듣는 이와 ‘밀당’에 능했다. 한마디로… 아저씨인 내가 들어도 연주 자체가 섹시했다.
청중, 특히 여성팬들이 열광하는 게 당연했다. 대중음악가수 임영웅 팬덤도 그렇지 않던가. 임영웅 열성팬을 자처하는 여성팬들이 이런 저런 화제를 낳는데, 일단 임영웅 자체가 노래를 출중하게 잘 한다. 이른바 ‘덕질’ 할 만 하니까 하는 것이다.
임영웅 팬덤은 ‘선한 영향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2023) 4월 K리그 프로축구 경기에 임영웅이 시축자로 나섰을 때였다. 임영웅 팬들이 대거 몰리면서 당시 서울 월드컵경기장에는 코로나19 이후 국내 스포츠 최다인 4만5007명의 관중이 모였다. 축구팬들은 걱정이 많았다. 경기 시작전 시축, 최대로 쳐봤자 하프타임때 임영웅의 공연만 보고 그의 팬들이 대거 빠져나가면 후반전 경기장 분위기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임영웅 팬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축구장이라는 곳 자체가 익숙치 않겠지만 축구장의 분위기와 기존 팬들의 문화를 존중해 달라는 임영웅측 요청을 팬들이 충실히 따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5일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의 분위기는 조금 아쉬웠다. 일본의 콘서트홀들이 대개 그렇듯, 이곳도 연주홀 내에서는 모두 촬영 금지다. 연주 중에만 안되는 게 아니고 커튼콜도 안되고 휴식시간에도 안된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서양 유명 홀들보다도 훨씬 엄격한 규정인데, 나는 납득이 안되지만 자기들이 그렇다는데 뭐 어쩔 수 있나. 한국사람들이 대거 몰려든 이날, 공연장 직원들은 유난히 바쁘게 ‘촬영 금지’ 팻말을 들고 다니며 사전에 주의를 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적지 않은 청중이 휴대폰을 꺼내 커튼콜 뿐 아니라 앵콜곡 연주까지 촬영하다 제지를 당했다. 직원들이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공연 중에는 쉴 새없이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고, 물병이나 프로그램책자 등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본에서 공연을 여러차례 봤지만 처음 겪는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리를 사서 온 한국인 관객이 더 비싼 구역의 빈 자리로 내려가겠다며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이건 차마 믿고 싶지 않다.
연주가 출중했으니 열렬한 환호성과 기립박수가 쏟아진 것 자체는 당연했는데, 다음과 같은 점도 좀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내가 일어서면 내 뒷사람의 시야를 가린다는 것. 적당히 나의 감동과 아티스트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으면 좀 앉아줄 필요도 있다. 내가 계속 서 있으면 내 뒷사람도 결국 일어서야 하고, 그게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모르겠는데, 일본은 워낙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경계하는 문화가 공연장에서도 일반화되어 있다지 않나. 얼마전 도쿄에서 미국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대규모 공연이 있었다. 여기서도 앞줄에서 일어서서 시야를 가로막는 외국 팬들때문에 일본 관객들이 불만을 터뜨렸다는 기사가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임윤찬은 여전히 성장 중인 스타다. 그의 번뜩이는 천재성과 온몸을 갈아넣듯 연주하는 헌신에 찬사를 보내는 해외평론가들이 있는만큼, ‘신동? 몇년 그러다 가는 애들 많아.’ ‘잔재주인지 진짜 음악인지 더 두고 봐야 해.’ ‘티켓파워? 그거 다 한국 극성팬들이 빚어낸 착시효과 아냐?’ 이런 식의 회의론을 펴는 이들도 없지 않다. 임윤찬이 가는 곳마다 한국 팬들이 따라가서 현지 관객들이 눈살 찌푸릴 행동을 하면 그런 회의론을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되겠나.
임윤찬 소속사가 팬들과의 소통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있다. 그의 연주에 걸맞는 관람매너를 지켜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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