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권력' 회장직 부활하나…'유한양행'에 무슨 일이 [박동휘의 재계 인사이드]
'막강한 권력' 회장직 부활하나…'유한양행'에 무슨 일이 [박동휘의 재계 인사이드]
유한양행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홍역을 치르고 있다. 2021년 3월 정관을 변경해 이사회 의장에 취임한 이정희 유한양행 전 대표(73·사진)가 이번엔 임기 연장을 주총 안건으로 상정해서다. 회장직 신설을 위한 정관변경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유한양행은 최근 ‘직위 신설의 건’이 포함된 주총 안건을 공시했다. 정관 제33조 2항에 ‘이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정관 변경안이 통과되면 이사회 의장 주도로 회장 및 부회장직 신설이 가능해진다.

28년 만에 회장직 부활하는 유한양행

1926년 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유한양행은 지금껏 단 두 명의 회장을 배출했다. 창업자와 연만희 전 회장뿐이다. 연 전 회장은 1988년 유한양행 사장에 취임, 5년간 임기를 마치고 1993년에 회장에 취임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창업자의 유일한 직계 후손인 유일링씨가 미국에 체류 중인데다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려 창업 정신을 이어갈 분이 필요해 유한양행의 최대 주주인 유한재단의 요청으로 회장직을 수락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 전 회장은 66세이던 1996년에 은퇴했다.

유한양행의 지배구조 변화는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와 관련해 함의하는 바가 크다. 유한양행은 기업 지배구조의 모범생으로 통했다. 한 세기 동안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창업자 정신을 지켰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22년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과 KCGI가 주최한 ‘제1회 한국기업 거버넌스 대상’ 시상식에서 유한양행은 경제 부문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주최 측은 유한양행이 국내 최초의 모범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확립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랬던 유한양행이 28년 만에 회장직을 신설하는 것인 만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업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선진 지배구조 기업의 변심?

최근 산업계에선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것이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경영을 담당하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면 감시와 견제라는 이사회 본연의 기능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삼성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이런 이유로 대표와 의장을 분리한다. 통상적인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은 이사회 의장은 CEO로부터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사외이사가 맡을 것을 권한다.

경제개혁연대를 이끄는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이사회 의장 제도는 의장이 대표이사를 견제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최근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그는 “최근 해외에서도 창업자가 이사회 의장을 맡으면서 CEO는 제대로 역할을 못 하는 일이 발생해 이사회 의장제도를 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벤처 창업자들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을 맡는 사례도 ‘모범 지배구조’ 측면에선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창업자들은 일상적인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새로운 사업은 구상하기 위해 좀 더 자유로운 이사회 의장직을 맡는 것이 회사를 위해 더 바람직할 수 있다는 취지이긴 하지만, 거꾸로 이사회를 창업자가 지배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독립적인 사외이사의 역할 수행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은 1936년에 종업원지주회사를 도입했을 정도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해왔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이윤을 임직원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미다. 공익 재단인 유한재단을 최대 주주(15.92%)로 만들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것은 이 같은 취지에서다. 유한양행이 수익을 많이 창출할수록 이윤은 유한재단, 유한학원 등에 배당으로 배분된다.

이 같은 시스템은 재단과 회사, CEO와 사외이사진 간 견제와 균형을 통해 유지돼왔다. 유한양행 전 임원은 “유한재단의 재단 이사장과 유한양행 대표이사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하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유한만의 독특한 경영의 거버넌스를 구축해놨다”고 설명했다.

소유와 경영 분리한다는 유일한 박사의 창업 정신 사라지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유한양행은 1980년대 중반부터 독특한 CEO 승계 방식을 만들었다. 대표이사 사장은 3년 중임만 허용하는 제도다. 연만희 전 회장도 임기를 한 번만 연장하고 5년간 사장직을 수행했다. 이때부터 사장 3년 중임제가 정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직급(직위)별 재임 기간도 6년을 넘지 않도록 했다.

권력이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한양행은 차기 사장 후보를 발탁하는 과정에서도 공정성을 최대 가치로 정착시켰다. 사장은 임기 만료 1년 전인 5년 차에 이사회를 통해 차기 사장 후보를 발탁,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시켜서 미래의 유한을 이끌도록 준비시키는 방식이다. 이 모든 과정은 회사의 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는 유한재단 이사회와 사전 협의나 사후 추인 과정을 통해 진행된다.

유한양행이 회장직을 신설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유한양행 안팎에선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며 반발 움직임이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특정 대주주가 없는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이나 유한양행처럼 재단이 최대 주주인 회사는 대표이사가 바뀔 때마다 인사와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며 “유한양행이 회장직을 신설하는 것은 외풍을 철저히 막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보여지지만, 결국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유한양행 측은 “일부 논란이 되고 있는 회장, 부회장 직제 신설은 회사의 목표인 글로벌 50대 제약회사로 나아가기 위해 선제적으로 직급 유연화 조치를 한 것”이라며 “일부 거론되고 있는 특정인의 회장 선임 가능성에 대해서는 본인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와 같이 절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어 회장직 신설에 대해 유한양행 측은 “현재 ‘대표이사사장’으로 정관상 표기되어 있는 것을 표준정관에 맞게 ‘대표이사’로 변경하는 것”이라며 “금번 정관 변경의 목적은 사업의 목적추가, 공고방법 변경 등 다양한 조항을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과정이기에, 직제 신설 또한 미래 지향적인 조치일 뿐”이라고 밝혔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