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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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틀었는데 신세계가 펼쳐졌다. 이게 중국산(産)이 맞나 싶다. 화질과 음질 모두 삼성 LG에 뒤지지 않는다.”

얼마 전 중국 가전업체 TCL의 초고화질 85인치 TV를 구매한 직장인 A씨는 “국산 60인치대 TV에서 갈아탔는데, 아주 만족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초대형 TV, 로봇청소기 등 중국산 고가 가전이 한국 가정에 침투하고 있다. 중국 가전업체의 한국 시장 공략 품목이 보조배터리 등 값싼 소품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TV는 품절대란·로봇청소기는 판매 1위…이젠 '하이테크 차이나'

TCL, 한국 시장 본격 공략

한국 시장 공략에 가장 적극적인 업체는 TCL이다. 지난해 11월 한국법인을 세우고, 전국에 38개 사후서비스(AS) 센터도 개설했다. 지난 2년간 쿠팡을 통해 TV를 팔아본 결과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2022년 3월 쿠팡에서 처음 출시 당시 ‘C845’ 시리즈는 55인치부터 85인치까지 전 제품이 5분 내 품절되는 대란을 일으켰다. 업계에선 TCL이 그동안 국내에서 판 TV가 수만 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첫 번째 인기 비결은 품질이다. TCL의 QLED TV 85인치 제품(모델명 C645)은 인공지능(AI) 프로세서를 통한 화질 개선, 고화질 영상 솔루션인 HDR10+ 등 같은 크기의 삼성 LG 제품에 있는 기능을 거의 다 갖췄다. 그런데도 무게는 36.5㎏으로 삼성(41.5㎏)과 LG(45.2㎏)보다 가볍다. 여기에 최고급 입체 사운드인 돌비앳모스를 장착했다. 두 번째 인기 비결은 가격이다. 이 제품의 판매가는 169만원으로, 비슷한 사양의 국산 제품(약 250만원)보다 훨씬 싸다.

삼성·LG 누른 로봇청소기

로봇청소기와 고사양 노트북 등은 이미 ‘중국판’이 됐다. 2020년 한국에 입성한 로보락은 2년 만에 한국 1위가 됐다. 대표 모델(S8 프로 울트라) 가격은 150만원으로, 120만원 안팎인 삼성 LG 최상위 라인보다 비싼데도 그렇다. 먼지를 흡입한 뒤 물걸레로 닦고, 청소를 마치면 걸레를 세척·건조하는 등 첨단 기능이 장착된 덕분이다.

중국 드론업체 DJI는 한국 민간 드론 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공공안전 분야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일반 PC보다 높은 사양이 필요한 게임용 PC 시장은 중국계인 레노버(점유율 11.5%)와 에이수스(17.6%)가 미국 HP(14.2%)와 경쟁하는 형국이다. 삼성과 LG의 점유율은 5%에도 못 미친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산요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를 인수한 중국 1위 가전업체 하이얼도 프리미엄 제품을 앞세워 한국 소비자를 공략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검증된 中 하이테크 제품

중국 가전업체의 약진은 수치로 나타난다. 삼성(18.5%)은 지난해 세계 TV 점유율(출하량 기준) 1위 자리를 지켰지만 LG(11.6%)는 4위로 처졌다. 그 사이를 하이센스(13.7%)와 TCL(13.3%)이 채웠다. 하이센스와 TCL의 출하량이 전년 대비 각각 12.4%, 16.3% 늘어난 반면 삼성과 LG는 각각 9.8%, 7.4% 감소한 여파다. 로봇청소기는 중국 업체들이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민간용 드론은 DJI 한 곳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PC의 제왕’은 세계 시장의 4분의 1을 점유한 레노버다.

업계에선 중국산 가전제품의 프리미엄 시장 점유율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가격뿐 아니라 품질과 디자인 경쟁력도 강해지고 있어서다. TCL의 TV(모델명 QM8)와 로보락의 로봇청소기(Q5 시리즈)는 뉴욕타임스 제품 리뷰 서비스인 와이어커터에서 올해 추천 상품으로 선정됐고, TCL의 사운드바(S6)는 지난해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레드닷어워드에서 제품 디자인 부문 상을 받았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