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M으로 시작한 DH글로벌…10년 만에 매출 1조원 찍었다
1998년, 전북 부안 산골 출신인 스물다섯 살 청년이 광주에 정착했다. 손에 쥔 건 단돈 6만5000원. 할 줄 아는 것은 운전뿐이어서 택시회사에 들어갔다. 택시기사, 가스통 배달, 옷 장사 등 돈을 벌 수 있다면 물불 안 가렸다. 지인 권유로 광주 한 공장에 인력관리 담당자로 취직했다. 4년쯤 경험을 쌓은 뒤 2011년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10여 년 만에 상장기업 2개를 포함해 계열사 5개를 둔 매출 1조원대 그룹사로 키워냈다. 이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은 중견기업 DH글로벌의 이정권 회장(사진)이다.

DH글로벌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가전을 만든다. 최대 고객은 삼성전자다. DH글로벌은 2013년 위니아만도의 뚜껑식 김치냉장고를 OEM 생산하면서 시장에 명함을 내밀었고, 이듬해 삼성전자에 제품을 공급하면서 사세가 커졌다. 이후 삼성전자 에어드레서, 비스포크 냉장고 등을 잇달아 생산하며 연매출 30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5일 광주광역시 첨단산업단지 DH글로벌 본사에서 만난 이 회장은 “‘남들이 안 하는 것이 무엇일까’ 늘 고민하면서 사업을 했다”며 “부품사는 많지만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많지 않아 역발상으로 완제품 제조 시장에 도전했다”고 떠올렸다. 도박에 가까운 도전은 성공했다. 국내 생산기지가 해외로 이전하며 생긴 생산설비 공백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이젠 OEM·ODM에 그치지 않고 식당용 냉장고, 소주냉장고, 제빙기 등에 자체 브랜드인 스테닉(STENIQ)을 붙여 국내외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최근엔 자동차 부품업계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2022년 코스닥 상장 자동차 전장기업 대성엘텍, 지난해 말에는 코스닥 상장 스티어링휠(핸들) 제조기업 대유에이피를 인수해 사명을 DH오토웨어와 DH오토리드로 바꿨다. 각각 연매출 약 4000억원과 2300억원을 올리는 알짜 기업이다.

이 회장은 DH오토웨어와 DH오토리드 사업을 연계해 글로벌 시장을 적극 공략할 방침이다. 그는 “전장과 핸들을 붙여 묶음 영업하면 경쟁력을 더 갖추게 된다”며 “오는 7월 DH오토리드의 멕시코 공장이 완공되면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업체로 고객사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