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천재' 노이만'과 '천재 기사' 이세돌이 나오는 외국 소설 '매니악' [서평]
"그것은 어느 컴퓨터도 둔 적이 없는 수였다. 인간이 고려할 법한 수도 아니었다. 새로웠고, 수천 년간 축적된 지혜와의 급진적 결별이자 전통과의 완벽한 단절이었다."(<매니악>, 360쪽)

칠레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의 논픽션 소설(사실에 근거한 소설) <매니악>엔 앞서 2016년 세계를 뜨겁게 달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국이 소재로 등장한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4대 1로 이긴 것을 계기로 AI가 인류를 곧 넘어서게 될 것이란 충격과 공포가 퍼졌던 그 때다.

라바투트는 과학자 혹은 천재적 인물을 소재로 그들의 인생과 내면을 다루는 서사에 특화한 작가다. 그의 전작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현대 과학계에 지각변동을 몰고 온 여러 과학자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전 세계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며 화제를 모았고, 2021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소설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와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컴퓨터과학자인 존 폰 노이만, 이세돌 9단 등을 다룬다. 양자역학의 부상부터 컴퓨터의 탄생, AI 혁명에 이르기까지 현대 과학계의 결정적 순간과, 그 순간의 중심이 되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마치 영화처럼 촘촘하게 서사가 전개된다.

가장 익숙하면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과정을 다룬 3부 '세돌 또는 인공지능의 망상'. 모두 아는 줄거리에 결말이 정해져 있지만 긴박한 대결 장면과 세밀한 내면 묘사가 책장을 계속해서 넘기게 만든다. 마치 당시 대국 현장을 생방송으로 관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세기의 천재' 노이만'과 '천재 기사' 이세돌이 나오는 외국 소설 '매니악' [서평]
소설은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두 번째 대국에서 내놓은 37수와 이세돌이 네 번째 대국에서 놓은 '신의 한 수' 78수에 주목한다. 각각 AI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두 수에 대해 작가는 "바둑의 한계를 뛰어넘어 낯설고 끔찍한 아름다움을, 이성보다 강력한 논리를 펼치며 머나먼 곳까지 파문을 일으켰다"고 묘사한다.

이세돌뿐 아니라 알파고 개발의 주역 데미스 허사비스, 이세돌 맞은 편에 앉아 알파고의 수를 대신 놓은 딥마인드의 수석 프로그래머 아자황, 이세돌에 앞서 알파고에 패배했다가 딥마인드의 자문을 맡은 유럽 챔피언 출신 판후이 등 당시 대국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내러티브를 풍부하게 만든다.

사실과 허구 사이 어디쯤에 있는 논픽션 소설로, 사실만큼 흥미롭고 소설만큼 중독성 있는 문체로 인류와 과학사의 중요한 순간을 포착해냈다. 이세돌의 이야기만큼 에렌페스트와 노이만의 서사도 흥미롭다. 책의 제목인 '매니악'(MANIAC)은 노이만이 만든 컴퓨터의 이름이자, '미치광이'라는 뜻의 단어다. 인류와 과학사에 특이점을 가져다 준 천재들의 광기어린 도전을 확인할 수 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