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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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쩍쩍 갈라지고 있습니다. 두 개의 전쟁에 이어 중동도 확전 기로에 섰습니다. 브렉시트로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떨어져 나가더니 이제 북아일랜드가 쪼그라든 영연방에서 핵분열할 태세입니다. 분리와 독립이 시대정신으로 등극했고 지정학이 핵심 화두가 됐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원이 부족한 나라들이 직격탄을 맞습니다. 활발한 무역과 우수한 인적자원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맙니다. 한국과 독일 같은 나라들이 고전하고 있는 게 대표적입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독야청청인 나라가 있습니다. 지하자원이 풍부해 지정학 위기로 유가가 오르든 개의치 않습니다. 지정학 위기가 이 나라의 기회로 작용하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미국입니다.

지정학이 가른 국가별 운명을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일정과 이슈를 살펴보겠습니다.

※ '정인설의 워싱턴나우'는 매주 월요일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인 '한경 글로벌마켓'에서 유튜브 영상과 온라인 기사로 찾아뵙고 있습니다.

1차 레드라인 넘었지만

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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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행정부가 판단하기에 친이란 무장세력들은 1차 레드라인을 넘었습니다. 각기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고 이란에 충성경쟁을 하는 게 도를 넘었다는 얘기입니다. 미군 기지 공습을 택했다는 것도 분개할 만한 일인데 중동 주둔 미군이 사망했습니다. 미 육군이나 해병대가 적의 드론 공격에 뚫리는 수모도 사상 처음 겪는 일입니다. 미국 드론과 적의 드론을 혼동해 일어난 일이 밝혀지면서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의 방공망도 자존심을 구겼습니다.

미국의 1차 대응은 일단 이란 밖 공격으로 정했습니다. 이란 영토는 치지 않고 친이란 무장세력 근거지만 공습하기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이후에도 무장세력 공격이 끊이지 않으면 요인 사살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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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란이 직접 전쟁에 가담할설 확률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34년째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이런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서로 최종 레드라인을 넘지 않고 이 사건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조속한 휴전입니다. 그래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전쟁 발발 이후 다섯번째로 이스라엘을 방문합니다. 8일까지 전쟁 중재자를 자처해온 카타르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찾습니다.

전쟁 중에도 오르지 않는 기름값

"중동 확전에 관심없다"…지정학 위기가 기회인 나라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그동안 중동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기름값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이번엔 다릅니다. 예맨 무장세력인 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으로 교역로가 막히면서 해운 운임과 경유 같은 일부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지만 원자재의 전방위적인 급등 흐름은 아닙니다.

물론 전쟁 당사국인 시리아와 예맨 등이 핵심 산유국이 아닌 이유가 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전엔 중동 갈등 요인이 커지면 심리적 요인에 의해서도 국제유가는 올랐습니다. 게다가 친이란 무장세력의 근거지 중 하나인 이라크는 세계 3위권 원유 생산국입니다.

그럼에도 국제유가는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세계 원유지도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지면서 미국은 원유 및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을 확 늘렸습니다.

지난해 미국의 원유 및 LNG 생산량은 사상 최대입니다. LNG 수출도 2022년엔 세계 2위였지만 지난해 1위로 올라섰습니다. 원유 수출량도 3위에서 2위로 상승했습니다. 지난해 미국 수출품 중 원유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모두 친환경 대통령을 표방한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 쉬쉬하면서 일어나 일들입니다.
"중동 확전에 관심없다"…지정학 위기가 기회인 나라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대부분의 미국산 원유와 LNG는 유럽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미국산이 러시아산을 대체하면서 유럽의 미국산 의존도는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되면서 미국산 원유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유종이 됐습니다. 중동이 확전 위험에 빠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가장 덜 오릅니다. 이에비해 중동과 가까운 북해산브렌트유나 두바이유는 더 큰 폭으로 움직입니다. 이스라엘 하마스 충돌이후 WTI가 안정세를 보이면서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되레 떨어졌습니다.

커진 씀씀이, 풋볼 소비로도 이어지나

미국인들의 소비심리는 식지 않고 있습니다. 팬데믹 시기 쌓아둔 여윳돈이 줄고는 있다지만 가장 예민한 물가 지표인 기름값이 안정세를 보이자 씀씀이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하마스 분쟁이 정치적 논쟁 거리는 될 수 있어도 경제적 화두는 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인들의 최대 스포츠 축제인 슈퍼볼 시즌이 다가왔습니다. 미국 동부시간 11일 일요일 오후 6시30분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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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남자친구가 속한 팀에 슈퍼볼에 올라 이목이 더 집중되고 있습니다. 일본 공연에서 곧장 돌아와 슈퍼볼 경기를 관람하겠다는 스위프트의 동선도 화제가 됐습니다.

올해도 입장권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상승폭은 상상 이상입니다. CNN에 따르면 티켓 재판매 사이트에서 가장 저렴한 슈퍼볼 관람권 가격은 8188달러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5997달러인 지난해에 비해 50% 이상 올랐습니다. 평균 입장권 가격은 9800달러입니다. 경기가 다가올수록 가격은 더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CNN은 "올해엔 스위프트 같은 억만장자도 슈퍼볼 티켓값을 보면 얼굴을 붉힐 수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슈퍼볼은 대선 전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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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볼이 열리는 라스베이거스 지역은 정치적으로도 주목을 받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경선이 동시에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양당은 여러 지역에서 프라이머리(예비선거)나 코커스(전당대회)를 열었습니니다. 다만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개격파로 경선을 했습니다. 그러다 오는 6일 처음으로 라스베이거스가 속한 네바다주에서 양당이 동시에 프라이머리를 진행합니다. 6대 경합주(스윙스테이트)인 네바다주에서 양당이 경선 일정을 진행하는 건 상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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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화당은 프라이머리 결과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민주당이 장악한 네바다주 정부가 관리하는 프라이머리 선거를 믿지 못하겠다며 8일에 별도로 네바다 코커스를 열기로 했습니다. 공화당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경쟁 중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6일 프라이머리에만 참여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커스에만 나오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공화당이 네바다주에 배정한 대의원 26명은 코커스 승자인 트럼프가 가져갈 전망입니다. 민주당 프라이머리도 바이든의 압승으로 끝날 공산이 큽니다.

싱거운 대선 후보 결정 예선이 끝나고 열리는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선 본선이 진검승부일텐데요. 그 전초전은 슈퍼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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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슈퍼볼 결승전에 나온 팀은 지난해 우승팀인 캔자스시티 칩스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입니다. 공교롭게 민주당과 공화당을 대표하는 곳의 홈팀들입니다. 캔자스시티는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입니다. 샌프란시스코는 민주당의 아성입니다. 바이든과 트럼프는 각각 어떤 팀을 응원하게 될 지도 관심입니다.

슈퍼볼만큼 뜨거운 노동시장

"중동 확전에 관심없다"…지정학 위기가 기회인 나라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지난주 나온 미국 1월 고용보고서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습니다. 역대급 강추위 속에서도 신규 일자리가 급증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동시에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어 실제보다 고용 수치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달 신규 일자리는 전월 대비 35만3000개로 전문가 예상치(18만개)의 두 배 수준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1월(48만2000개) 이후 1년 만에 최대 증가폭입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취업자 수는 3만1000명 감소했습니다. 투잡 쓰리잡 뛰는 다직종 보유자가 늘어 일자리만 늘고 실제 취업자 수는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동 수요가 폭증했는데 1월 평균 근무 시간은 주당 34.1시간으로 한 달 전보다 0.2시간 줄었습니다.

기간을 늘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최근 1년간 신규 일자리는 290만개 늘었습니다. 일자리가 증가하면 취업자나 취업희망자가 늘어 경제활동참가율이나 실업률이 상승합니다. 그러나 1월 실업률은 3.7%로 되레 1년 전보다 0.2%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와 실업자의 비율을 가리키는 경제활동참가율도 62.5%로 62.4%인 1년 전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인구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민자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동시장이 진짜 끓는점에 와 있는 지 아니면 일시적 착시인 지 잘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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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이번주는 중동 확전 여부와 지역은행 리스크가 큰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종료로 블랙아웃에서 풀려난 Fed 인사들이 어떤 발언을 내놓을 지 관심사입니다. 동시에 슈퍼볼과 정치 경선 일정을 통해 미국의 뜨거운 소비와 고용이 지속될 지를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