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 숨긴 공무원 승진 취소는 위법"…대법서 판결 뒤집힌 이유
문재인 정부 시절 다주택자는 '공공의 적'으로 치부됐다. 인사청문회에선 다주택 여부를 따지는 게 단골 메뉴였고, 다주택자 고위공무원은 승진에서도 불이익을 받았다.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부동산 시장이 꺾였고 바뀌었다. 때마침 주택보유현황 조사에서 오피스텔 분양권 보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무원을 강등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령상 근거 없이 이뤄진 불이익한 처분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5급 공무원 A씨가 경기도지사를 상대로 낸 강등처분 취소소송(사건번호 2022두65092)에서 "강등처분은 적법하다"고 판시한 원심을 깨고 지난 4일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오피스텔 분양권 누락 신고…승진 6개월 만에 강등

2020년 12월 경기도는 4급 이상 공무원과 승진 대상자를 상대로 주택 보유현황을 조사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관한 도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4급 이상 고위공직자에 대한 주택 보유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연합뉴스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연합뉴스
4급 승진후보자였던 A씨는 당시 주택 2채(자녀 명의 1채, 매각 진행 중 1채)와 오피스텔 분양권 2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주택 보유조사 담당관에게 주택 2채만 보유 중이라고 답변했다.

A씨는 이듬해 2월 4급 승진에 성공했다. 당시 4급 승진후보자 132명 중 다주택 보유자로 신고한 35명은 모두 승진하지 못했다.

경기도는 같은 해 8월 A씨를 5급으로 강등했다. 오피스텔 분양권 보유 사실을 고의로 누락해 지방공무원법 제48조의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인사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등 비위 정도가 중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A씨는 "강등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다주택 보유 여부가 승진 기준…“법적 근거 없어”

쟁점은 A씨가 지방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인지 여부다. 원심은 "A씨가 승진 심사에 반영된다는 점을 알면서도 오피스텔 분양권 2건에 대한 신고를 누락했다"며 "지방공무원법 제48조의 성실의무 위반에 따른 징계사유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2022누11855).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공무원 주택 보유현황은 공무원의 직무 수행 능력과 관련되는 도덕성·청렴성 등을 실증하는 지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법령상 근거 없이 '다주택 보유 여부'를 승진 심사에서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건 신분상 중대한 불이익 처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택 보유 조사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다고 곧바로 지방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이를 징계사유로 보는 건 법률상 근거 없는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도 공무원의 복종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용권 자의적 행사…능력주의 원칙 위반”

A씨에 대한 강등처분이 재량권을 일탈한 것인지를 놓고도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갈렸다. 앞서 원심은 인사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등 비위 정도가 중하여 강등 징계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재판부는 "A씨는 사전에 다주택 보유 해소를 권고받지 못해 주택을 처분할 시간이 없었고, 주택 보유현황이 곧바로 인사에 반영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려웠다"며 "이러한 조사 결과를 근거로 한 강등처분은 징계양정의 재량권을 일탈해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직무 수행 능력과 무관한 요소를 승진임용에 관한 일률적인 배제 사유 또는 소극 요건으로 삼았다면 이는 임용권자가 법령상 근거 없이 자신의 주관적 의사에 따라 임용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이라며 "헌법상 직업공무원제도의 취지․목적 및 능력주의 원칙은 물론 지방공무원법령 규정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