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고 사흘 뒤인 지난해 3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 SVB 지점에서 직원이 창문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내고 있다. /로이터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고 사흘 뒤인 지난해 3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 SVB 지점에서 직원이 창문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내고 있다. /로이터
미국 중소은행들이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의 여파로 지난해 4분기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자산의 대형은행 쏠림에 따른 예대마진 축소, 금융 규제 강화, 상업용 부동산 위기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SVB 사태 후 예금이자 경쟁…순이익 90% 줄어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지역은행 키코프는 지난해 4분기 전년 동기 대비 91.5% 감소한 3000만달러(약 40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같은 기간 로드아일랜드주 지역은행 시티즌스파이낸셜그룹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69.5% 감소한 1억8900만달러(약 2500억원)로 집계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지역은행 PNC파이낸셜서비스그룹 순이익은 약 40% 감소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롯에 본사를 둔 트루이스트파이낸셜은 지난해 4분기 16억8000만달러 순이익에서 올해 50억9000만달러 손실로 전환했다.

중견 은행들도 고전했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 규모가 853억달러(약 113조원)에 달하는 코메리카의 지난해 4분기 순이익은 2700만달러(약 359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92% 감소했다. 자이언스 뱅코포레이션 순이익은 2억7700만달러에서 1억1600만달러로 58% 줄었다.

이처럼 순이익이 감소한 것은 지난해 3월 SVB 사태 이후 지역은행의 순이자소득(대출 소득에서 예금 비용을 뺀 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다. 당시 지역은행이 연쇄 파산하자 예금을 안전한 대형은행으로 옮기려는 대규모 자금 이동이 발생했고, 이를 지키기 위한 지역은행 간의 예금 이자율 경쟁이 벌어졌다.

빌 뎀착 PNC파이낸셜 최고경영자(CEO)는 "은행위기 이후 소비자들은 (소규모) 은행에 예치한 예금이 안전하다는 정부 규제를 신뢰하지 않았다"라며 "더 복잡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기업 고객은 규모가 큰 은행을 찾았다"고 전했다. SVB 사태 이후 부도 가능성이 거론된 찰스슈왑의 경우 지난해 4분기 순이자소득이 30% 감소했다. 시티즌파이낸셜은 12% 줄었다.

대형은행보다 5배 위험, '상업용 부동산'도 뇌관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당국의 규제 강화도 실적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SVB와 시그니처은행이 파산하자 보험 미가입 예금자를 구제하는데 사용할 특별 수수료로 수억 달러를 적립할 것을 지역은행들에게 요구했다. 일부 은행은 감원과 잠재적 대출 손실에 대비하기 위해 일부 자금을 따로 빼놓기도 했다.

상업용 부동산 위기도 지역은행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일부 지역은행이 재택근무 트렌드와 고금리로 인해 가격이 급락한 상업용 부동산에 대규모 투자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중소형 지역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위험노출액(익스포저)가 대형은행에 비해 5배 많다고 추정하고 있다. 뉴욕 소재 지방은행 M&T 뱅코프는 뉴욕시, 보스턴, 워싱턴DC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로 인해 지난해 4분기 순상각액이 1억4800만달러로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 긴축정책 전환(피벗)도 단기간에 호재로 작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소은행들의 평가다. 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순이자소득이 다시 오르는 데는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중소은행들은 올해 순이자소득이 한해 동안 감소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크리스 고먼 키코프 CEO는 "우리는 지금 매우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처해 있다"라며 "모든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실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