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형혜 법무법인 GL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사진=법무법인 GL 제공
진형혜 법무법인 GL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사진=법무법인 GL 제공
아들 셋 엄마, '솔로몬의 선택' 변호사, 포항 키즈.

진형혜 법무법인 GL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을 수식하는 단어다.

한 가정에 아이 하나 보기 어려운 요즘, 그는 아들 셋을 키우는 엄마다. 그간 여러 차례 고사했던 정치권에 그가 이번에는 출사표를 던지기로 했다. 포항에서 초·중고를 나오며 '포항 키즈'인 그는 국민의힘에서 경북 포항 지역 출마 계획을 가진다.

그는 왜 다년간 거리를 뒀던 정치권에 입문할 생각을 했을까. 최근 진 변호사를 만나 정치권 입문 동기와, 아이 셋을 키운 엄마로서 한국의 저출생 문제 등에 대해 생각을 들어봤다. 다음은 진 변호사와 일문일답.

Q. 변호사면서,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이라는 중책도 맡고 있다. 사회적 명예가 충분한데 정치를 직접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

원래 정치적인 노선이나 당 색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냥 하나의 이슈에 따라 다를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천안함 사건에 대해 조작설이 나오면 왜 저렇게 생각할까 싶었고,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가졌다.

아들만 셋이다. 이전 총선까지만 해도 아들들이 모두 미성년자였다. 깜냥도 아니고 상황도 못 된다고 생각해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특히 그간 양당에서 보여준 '살벌함'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간 수년간 양당에서 제안이 있었는데 고사했던 이유다.

Q. 왜 국민의힘인가

21대 국회는 승자독식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여겨진다. 현재 국회는 더불어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다 의결할 수 있는 상황 아닌가. 이렇다 보니 다른 의견이 존중되는 느낌이 아니라 '우리가 하겠다는데 뭐 어떻게 해볼래' 이런 느낌으로 정치가 가고 있다. 다수결이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결국 그렇게 가면 '승자'에게도 좋지 않다. 자만감이나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등장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 위원장이 그간 보여준 능력이나 품격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부터 해왔는데, 그의 등장으로 내가 그런 분들이 승선한 곳이라면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국민의힘이 이전보다 훨씬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가치를 표방하기 시작해 내가 지향하는 바와 같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비해서 여성 비중이 조금 더 낮다. 국회가 한쪽으로 쏠린 것은 성별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좀 더 상생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 남자는 이래서, 여자는 저래서 빚어지는 갈등 양상이 결국 사회적 손실이다. 국민의힘이 앞으로 가져가는 지향점에서 내가 여성으로서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

Q. 국회 입성하면 꼭 발의하고 싶은 법안이 있나

변호사 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 가사 소송, 소년 재판을 많이 했다. 현재 한국은 결혼 자체도 줄고 있지만,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다. 현재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낳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이려고 하는데, 태어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보통 이혼하면 양육권이 엄마에게 오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의 경제력이 남성들에 비해 약한 가운데, 양육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예전보다는 감치 등 불이익을 주는 방법이 생겼지만, 이러한 과정을 밟기 위해서는 법적 절차가 많다. 그런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방치된다. 그런 상황에 놓이는 아이들이 상대적 박탈감,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면서 비행의 길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따라서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이를 대납하고 정책을 동원해서 양육비를 주지 않는 사람에게 청구하는 내용의 법안을 꼭 만들고 싶다.

Q. 가사 소송을 많이 다뤄본 변호사 입장에서 촉법 소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

촉법 소년의 연령을 하향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처방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모든 것은 부모나 어른들의 탓이다. 물론 요즘에 사례를 접해보면 과연 애들이 저지른 범죄라고 볼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정말 많다. 그렇기에 개별 사건으로 보면 촉법 소년의 연령 하향에 동의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그런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 몇 명을 소년원에 더 일찍 집어넣는다는 것이 우리 사회적으로 더 안전해질 것이냐에 대해선 아니라고 본다. 이 또한 앞서 언급한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잘 키우는 방법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사회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Q. 존경하거나 롤모델로 삼는 정치인이 있다면

정치인 중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굉장히 존경한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가지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역을 화합시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또 오바마는 '우리도 할 수 있다'(Yes We Can)는 슬로건을 통해 미국인들의 자긍심을 끓어오르게 했다. 정치라는 것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희망과 미래, 에너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아쉬웠던 것은 '적폐'라는 이름을 붙여서 과거의 세력을 단죄하면서도, 단죄할 만큼의 도덕성이 갖추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망도 배로 컸다.

또한 오바마 전 대통령이 흑인 교회 총기 난사 희생자의 장례식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를 부른 모습을 보고도 감동했다. 미국에서 그 노래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어떠한 수사나 연설보다도 미국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나는 한국 정치가 그런 모습들을 자주 보여줘야 한다고 믿는다.

Q 한국 정치인 중에서는?

완전히 정치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다. 포항은 잠재력이 어마어마한데, 그 모든 잠재력은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항제철이 있기 전까지는 인구 5만명 정도의 아주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인구가 50만명에 달하는 도시다. 산업의 쌀인 철강을 생산하고 그 철강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공급해 지금의 포스코가 생긴 것이다. 이 포스코를 만든 분이 박 회장이시다. 그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역사였다.

그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도 존경스럽지만, 박 회장은 '청렴함'이 있었다. 특히 그가 교육에 가지는 철학은 '교육 보국'이었는데, 교육이 곧 국가를 보위한다는 의미였다. 한국같이 자원도 돈도 기술도 없는 나라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포스코라는 거대한 기업을 세우면서 그 바로 옆에 학교를 만들었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포항공대까지 말이다.

포스코에는 빈 단상이 곳곳에 있다. 그는 언젠가 한국에 노벨상을 받은 사람의 흉상을 세울 자리를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수상자지만, 먼 미래를 바라보고 내린 선택이었다.

실제로 학교에 다닐 때 박 회장은 한 번씩 학교에 와서 학생들에게 얘기를 해주었다. 육사 출신이라 그런지, 우리를 '제군들'이라고 불렀다. 박 회장은 "제군들이 지금 여기서 하는 공부는 제군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포항,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제군들한테 장학금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년에 한 번 정도는 꼭 포항제철에 데리고 가서 소음이 가득한 현장을 보여주곤 했다. 우리 부모님들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굉장히 울컥했던 기억이 남는다.

박 회장은 군 복무를 같이했던 시절 인연으로 만나게 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로 정치에 잠시 입문했다 나왔는데, 다시 회사를 지키기 위해 정치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이후 정치인으로서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전 세계를 유랑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러나 그는 포스코 정도의 거대 기업을 만들어놓고도 회사에 지분도, 주식도 하나 없고 재산도 한 푼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의 지인들이 마련해준 아파트에서 부부가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거대 기업을 만든 인물인 만큼 그가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미움도 샀을 테지만, 주변에서 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던 이유도 그 탓이다.

Q. 지역 활성화를 위해 어떤 구상이 있는가

중앙에서는 포항과 포스코의 바람막이가 되고, 지역에서는 포스코와 주민들 간 갈등을 봉합하는 일이다.

포항은 포스코라는 글로벌 거대 기업 말고도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 등 미래 산업이 포항 북구에 들어오고 있다. 로봇 융합연구소, 한국에 두 대뿐인 방사관 가속기도 모두 포항에 있다. 여기에 포항공대와 글로벌 변호사 양성에 탁월한 한동대 등 교육 인프라도 훌륭하다. 이런 정도의 인프라를 갖춘 도시는 지역에 거의 없다. 포항만큼 지역 균형 발전에 적합한 모델도 없다.

그러던 포항의 인구수는 최근 50만명 선이 깨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52만명에 달해쓴데 앞자리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포스코는 포항 주민들과 수년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본사 이전 문제와 성남 위례지구에 미래기술연구원 분원 문제다. 이와 관련해 주민들의 불만이 큰 상황이다. 포스코의 '포'는 포항 아닌가. 나아가 포스코 교육재단이 학교에 투자하는 재단 지원금을 싹 줄였다고 한다.

저는 일자리와 교육, 이 두 가지를 더 튼튼히 하면 포항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또 주변 경주·울산·영덕 등까지 해 메가시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포스코 키즈'로 받은 혜택으로 성장했고, 지역에서 산업과 그의 사회적 기여가 어떤 중요성을 가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코를 비롯한 기업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저만의 순수한 동기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포스코와 포항 주민 간의 갈등을 조율·중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Q. 아들만 셋 키우는 엄마다.

힘들었지만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다. 큰 애가 중학교 3학년 정도 되니까 제 체감상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PC방에 있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을 때가 있다. 하루는 밤 12시가 다 돼서 들어와서 "너 지금 몇시야"라고 혼을 내니 혼자 구시렁구시렁하는 것이었다. 중3만 돼도 아들들은 엄마보다 키가 더 크지 않나. 순간 이걸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다 적당히 혼을 내고 넘어갔다.

그러다 이제 시간이 지나서 둘째가 중2가 되니까 걔가 PC방을 막 다니고 말을 투덜투덜거리더라. 어느 날은 첫째가 둘째에게 "야. 작작 좀 해라. 사춘기가 벼슬이냐" 하더라. 첫째가 둘째를 잡길래 같이 정색했지만, 속으로는 안 웃기 위해서 얼마나 혀를 깨물었는지 모른다.

Q. 워킹맘으로 하나 키우기도 어려운데 셋은 너무 힘들지 않았나.

변호사는 '월화수목금금금'이 경우가 많다. 그 말은 제가 직접 아이를 물리적으로 키울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뜻이다. 아이 셋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저희 친정엄마 덕분이었다. 어머니께서 도와주실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다. 사실 대부분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그렇게 어렵기 때문에 아이를 안 낳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 셋째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아이가 다쳤다고 선생님께서 울면서 연락한 적이 있다. 뛰어갔더니 애는 멀쩡해 보였는데, 하도 진상 부모들이 많으니까 선생님이 겁을 먹으셨던 거다. 나중에 보니 앞니가 4개가 부러져 있었다. 앉아 있는 여자 친구 머리 위로 서 있었는데, 여자애가 벌떡 일어나 우리 셋째 얼굴을 받으면서 앞니가 다 나간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엄마, 근데 다행히 OO이는 안 다쳤어요"라고 얘기했다. 아이가 다친 자신보다 친구를 생각하고 말하는 사실에 너무 깜짝 놀라고 한편으로 감동이었다. 아이는 당시 대부분 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냈다. 아이가 그렇게 컸던 것은 나보다 그 어린이집 선생님 덕분이었다. 사고 자체는 선생님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애가 영구치가 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빠질 이었다. 아이를 키울 때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때 피부로 느꼈던 것 같다.

Q. 저출생 정책,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 16년 동안 저출생 예산에 280조원나 쏟아 부었다고 한다. 처참한 성적표다. 예산이 부족한 게 아니라 잘못된 곳에 쓰이는 것이다. 일단 육아 부담을 최소화하는 게 시작이다. 그러면 하나 낳을까 말까 했던 사람, 하나 낳고 또 낳을까 말까 했던 사람들에게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유인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중산층을 위한 지원책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소득 기준에 걸리는 분들이 상당하다. 특히 중산층은 아이가 있기만 하면 잘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큰 사람들이다. 조금만 더 지원해주면 충분히 아이를 가질 여력이 있다. 중산층은 국가의 허리 아닌가. 그런 허리를 지원하는 일에 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는 출산 지원책도 소득 제한을 철폐하는 방안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노인들에게 요양보호사를 보내는 일처럼 국가 차원에서 자녀 돌봄 서비스가 더 확대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본다.

Q. 지원책 말고 또 있다면

남자도 강제적으로 육아휴직을 쓰게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불이익이 없게 해야 한다. 물론 예전보다 육아휴직을 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한 자릿수에 그친다. 그마저도 대부분 공무원이나 공기업 종사자들이다.

기대 효과는 출생을 늘리는 일뿐 아니라 부부끼리, 또 부부가 아이와 더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남성들은 육아휴직을 하고 가사노동을 하면 '노는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반대로 '독박 육아'에 몰린 여성들은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알 수 없는 서운함을 느낀다.

특히 그렇게 남성이 육아에 관여하지 못할수록, 감정적으로 아이와 아빠의 거리가 멀어진다. 결국 아빠가 퇴직하고 집에 있게 되면 아빠는 '혼자'가 된다. 아빠 입장에서는 한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정작 아빠와 같이 보낸 추억이나 행복한 기억이 없다. 가족과의 교감이 더 많이 이뤄질수록 높아지는 이혼율도 떨어진다.

그렇게 행복한 가정이 많아지면 한국 사회가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가,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그런 가족, 그런 집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러면 저출생 문제는 더 쉽게 풀린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