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자신을 홀로 돌봐온 막내딸에게 아파트를 증여하자, 다른 자매들이 "치매라서 증여는 무효"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16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홀로 병간호하던 중, 이 같은 일을 겪었다는 미혼 여성 A씨의 사연이 공개됐다.

A씨는 "최근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재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즈음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됐다"며 "막상 고향에 갔더니, 연로하신 아버지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언니들은 육아와 직장생활 때문에 바빴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아지셨다. 저를 못 알아보셨고, 외출하셨다가 집을 못 찾아서 파출소에 가신 적도 있다"며 "결국 나는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고, 매일같이 아버지를 찾아가 함께 대화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을 즘, A씨 아버지는 "다른 자식들과 달리 너무 잘해줘서 고맙다"며 A씨를 법무사 사무실에 데려가 본인 명의로 있던 아파트를 증여하고 소유권 이전 등기도 마쳤다. 이후 아버지의 치매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고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증여 사실을 알게 된 첫째, 둘째 언니는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언니들은 "그 아파트는 원래 우리에게 주기로 했다"며 "아버지 치매로 증여는 무효"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A씨는 "나에게 아버지 간호를 맡기고 한 번도 고향에 오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 화를 내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A씨 자매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증여 무효의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걸 수 있을까. 법조계 전문가들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증여계약의 당사자는 A씨와 아버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매들이 아버지를 대신해 증여 무효의 확인을 구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준헌 법무법인 신세계로 변호사는 "A씨 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신 상황이기 때문에, 자녀들은 아버지의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며 "자매 중 한 명 또는 여러 명이 아버지의 성년후견인이 되는 경우, 그 자매들이 포괄적인 대리권을 가지게 되고, 아버지를 대리해 증여 무효의 확인을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법 제9조(성년후견개시 심판)를 보면 가정법원은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해서 결여된 사람에 대해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또는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청구에 의해 성년후견 개시의 심판을 한다.

이 변호사는 "최근 판결을 보면 단순히 치매를 이유로 환자를 의사무능력자로 보는 경향에 변화가 생긴 것 같다"며 "치매 환자라고 해도 법률행위 당시 의사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된다면 그 법률행위는 유효하다고 본다. A씨의 아버지가 치매라는 이유로 곧바로 증여가 무효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변호사는 아파트 증여 당시 A씨 아버지에게 의사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요양병원의 진료기록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해 진료기록을 확보하고, 진료기록에 대한 감정 등을 통해 증여 당시에 아버지의 정신이 온전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가 있다"며 "아버지의 정신이 온전할 때가 많았다는 영상이나 대화 녹음이 존재한다면 입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