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 기자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이 요즘 다시 시끄럽죠. 정부가 실거주 의무 폐지해준다고 했었는데 그게 지금 거의 물건너가는 분위기라서 그렇습니다.
정부의 정책발표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흥청망청]
여기서 실거주 의무는 뭐냐. 만약 흥부가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다면 흥부가 직접 들어가서 최소 몇 년은 살아야 한다는 거죠. 언제부터? 그 집이 지어진 직후부터. 그런데 분양가가 5냥이면 수중엔 한 2~3냥밖에 없단 말이에요. 모은 돈, 대출 다 끌어와서 중도금까지 내도 잔금이 없잖아요. 그래서 보통은 세입자를 구하죠. 거북이..는 집이 있으니까 토끼를 어디서 잡아와서 세입자로 넣습니다. 그럼 토끼가 낸 보증금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걸로 분양 잔금도 내고 중도금대출도 상환하고, 이런 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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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팅해두고 흥부는 열심히 밭일을 하는데 토끼가 2년만 살더니 나가겠다고 합니다. 흥부는 아직 토끼 보증금을 돌려줄 만큼 못 모았는데 말이에요. 그럼 또 다람쥐를 세입자로 들여요.ㅎㅎ 이 친구 돈을 토끼에게 돌려주고 전세를 한 번 더 돌립니다. 그러는 동안 돈을 모아서 최종적으론 다람쥐에게 돌려주고 입주하는 게 서민들의 내집마련 방법 중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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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흥부는 입주할 생각이 아예 없는지도 몰라요. 처음부터 재테크를 생각하고 분양받았던 것이죠. 그래서 "흥부야 그런 생각 말고 네가 직접 들어가 살아라" 이렇게 규정해둔 게 바로 실거주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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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서 올림픽파크포레온 분양할 땐 여기 보시는 것처럼 원래 실거주 의무가 있었어요. 공고문에 아예 박제돼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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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부가 갑자기 이걸 없애주겠다고 합니다. 앞으로 없애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적용된 곳도 소급해서 다 없애주겠다고 합니다.그래서 아파트는 순식간에 다 팔렸죠.

여기에다 분양권 전매도 풀고, 중도금대출 규제도 풀고, 그래서 '둔촌주공 구하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들 흥부처럼 '내가 당장은 돈이 모자라도 일단 전세 돌리면 되겠구나' 이런 계산을 하고 분양받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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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갑자기 안 된다고 합니다. 들어가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 나 전세 못 돌려? 들어갈 돈 없는데?' 지금까지의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영화에 비유했지만 원래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새드엔딩이었죠. 라이언을 구하러 간 군인들은 다 죽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메시지가 있죠. "네가 누구든, 어디에 있든 그레이트 아메리카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너를 구한다". '둔촌주공 구하기'의 메시지는 뭐였나요. 아무리 정부 발표라도 곧이곧대로 믿지 말아라.
정부의 정책발표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흥청망청]
그래서 정책 발표는 뭘 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할지를 봐야 합니다. 자료 맨끝에 보면 이런 게 있거든요. 여기서 '지침을 개정하겠다, 계획을 변경하겠다, 즉시 시행하겠다' 이것들은 그냥 실무자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는 얘기예요. 대책 반영이 빠른 사항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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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무슨무슨법 개정' 이렇게 돼있는 건 국회로 가야 합니다. 어릴 때 배웠죠, 3권분립. 머리는 행정부에서 굴렸는데 처리는 입법부에서 해야 합니다. 법안을 발의해도 결국 국회를 통과해야 고칠 수 있는 거잖아요. 시기별로 정치 역학관계에 따라서 아예 표결까지 못 가는 경우도 수두룩합니다.

그러니까 정부에서 뭘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게 법 개정 사항이다? 그럼 사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예요. 자료만 곧이 곧대로 믿고 뛰어든다면 위험하다는 거죠.
정부의 정책발표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흥청망청]
그리고 법은 법인데 무슨무슨법 시행령 개정으로 돼 있다? 시행령이 뭐냐면, 법조문을 쭉 봤을 때 '뭐뭐뭐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게 시행령이에요. 뭔가 좀 구체적으로 정해둬야 하지만 법에 담기엔 자잘한 것들, 예외 사항에 관한 것들을 정합니다.

그럼 대통령이 다 챙기냐. 아니죠, 각 부처에서 이러이렇게 정한 다음에 대통령 재가만 받습니다. 샐러리맨들 다 그렇게 살잖아요. 대충 부장님들 눈 가리고 코 가린 다음에 "그냥 여기 결재도장 찍으시면 돼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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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시행령 개정 사항으로 발표되는 것들은 행정부, 그러니까 국토부라면 국토부에서 빠르게 추진 가능합니다. 그리고 여기 보면 무슨무슨 규칙도 있죠. 법 아래에 시행령, 시행령 아래가 규칙인데, 시행령은 대통령이 재가한다고 했잖아요. 규칙은 장관이 재가합니다. 그러니까 이건 시행령보다 더 빨리 고칠 수 있어요. 시행령보다 더 디테일한 것들을 규정하고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규칙이 뭡니까.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건축물 분양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줄여서 청약제도라고 하죠.
정부의 정책발표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흥청망청]
자 다시 둔촌으로 돌아가서 실거주 의무는 법 개정 사항이니까 폐지는 완전 물건너간 걸까요. 제가 회의록을 다 읽어봤는데 대안이 논의될 가능성은 있어요.
정부의 정책발표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흥청망청]
"이번에 법을 고치면 나중에 필요해질 때 또 고치는 건 더 힘드니까 아예 주택법은 그대로 두고 주택법 시행령에 예외를 규정해서 실거주 의무를 피하게 하자" 이런 의견이 나왔어요.
정부의 정책발표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흥청망청]
최초입주가능일 규정을 손보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최초입주가능일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사람이 살 수 있게된 순간부터를 말합니다. 이 법조문을 해석하자면 "흥부야 너는 그 집이 지어진 순간부터 네가 들어가 살아야 돼"라는 것입니다. 근데 만약 여기서 '최초입주가능일'을 지운다면? "흥부야 네가 들어가 살아야 하는 건 맞아, 하지만 시점을 정해두진 않을게".

실거주 의무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게 당장일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럼 흥부 입장에선 일단 동물 친구들에게 몇 번 돌렸다가 나중에 이 집을 팔기 전에만 들어가 살고 의무를 충족시키면 됩니다.

오늘 내용 살짝 헷갈릴 수 있는데 핵심만 복습하죠. 정책 발표는 맨 마지막장이 제일 중요하다.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아라. 두 가지입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촬영 이재형·조희재·예수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이재형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