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화적 태도에도 세르비아는 서방 비난…"친러노선 강화 전망"
세르비아서 8일째 부정선거 규탄시위…러 "서방이 배후"
세르비아에서 집권당의 총선 부정선거 의혹을 규탄하는 시위가 8일째 계속됐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수천 명의 시위대가 이날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건물 앞에서 부정 의혹이 제기된 지난 17일 총선 및 지방선거의 무효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정부 부처와 주요 기관 청사가 밀집된 도심 도로 교통을 봉쇄하고, 전날 체포된 시위대의 석방을 요구하며 이들이 구금된 시내 경찰서를 향해 행진했다.

지난 18일 이후 8일째 이어진 이번 시위는 전날과는 달리 별다른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일부 대학생이 차로를 막은 채 축구와 배구를 하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전날 베오그라드에서는 시위대가 시청 청사의 창문을 깨고 진입하려다 경찰에 의해 진압됐고, 이 과정에서 시위대 38명이 체포되고 중상자 2명을 포함해 경찰 8명이 다쳤다.

시위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세르비아를 친러시아 대신 친서방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미국은 부정선거 의혹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대신 현 정부에 대한 유화적 태도를 보였다.

크리스토퍼 힐 세르비아 주재 미국 대사는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서 "선거 절차의 정당성은 투명성과 함께, 투표로 드러난 국민의 의지에 대한 승자와 패자 모두의 존중 의지에 달려 있다"며 전날 시위의 폭력과 기물 파손을 비난했다.

그는 지난주에도 이번 선거 이후로도 세르비아 정부와 협력하길 바란다고 밝혀 세르비아 야권의 비난을 받았다.

이는 친러시아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는 등 친서방 노선을 병행하는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고려한 것이지만, 이번 부정선거 의혹을 계기로 세르비아의 친러시아 노선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예상했다.

세르비아서 8일째 부정선거 규탄시위…러 "서방이 배후"
부치치 대통령은 전날 폭력 시위에 대해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외세의 도움을 받아 정부를 전복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집권 세르비아진보당(SNS) 소속 아나 브르나비치 세르비아 총리는 "이런 발표는 서방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면서 시위 관련 정보를 사전에 제공한 러시아 정보기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역시 이번 시위의 배후에 서방이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알렉산드르 보산-카르첸코 세르비아 주재 러시아 대사는 이날 부치치 대통령과 만난 뒤 "서방이 시위를 조장한다는 반박 불가능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며 "세르비아 정부가 법치를 보장할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번 사태가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정부를 축출한 유로마이단 혁명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이 서방이 지원한 유로마이단 혁명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르비아에서는 지난 17일 실시된 총선에서 부치치 대통령의 세르비아진보당이 48%의 득표율로 승리한 뒤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다.

야권에서는 집권당이 미등록 유권자를 불법적으로 투표에 참여시키거나 표 매수, 서명 위조 등의 부정을 저질렀다고 주장했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모니터 요원으로 구성된 국제선거감시단도 일련의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선거 이튿날인 지난 18일부터 선관위 앞에서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며, 야권 인사 7명은 총선 무효화를 주장하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