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있는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앞에서 한 소녀가 산타클로스 인형을 목에 걸고 서 있다. 예수 탄생지로 알려진 베들레헴은 매년 성탄절이면 큰 규모의 축하 행사가 열렸지만 올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전쟁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차분한 성탄절을 보내고 있다.
“성지 순례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영광스러운 특권이 아닐 수 없다.”19세기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예루살렘과 막달라 등 기독교 성지를 둘러본 뒤 신문에 이 같은 글을 실었다. 중동의 무더위와 강도는 목숨을 위협했지만 독실한 신앙인에게 성지순례는 예나 지금이나 일생의 소원이다. 트웨인은 같은 배를 탄 순례객의 감동어린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 신성한 바다를 항해하고 그 주변의 거룩한 땅에 입 맞추는 것. 이것이야말로 얼굴에 주름이 이랑처럼 생기고 머리에 서리를 얹는 동안에 그들이 소중히 간직해온 열망이었다.”이스라엘이 기독교인에게 특별한 것은 성경 속 ‘약속의 땅’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인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약속은 유대인의 유구한 자부심의 근간인 동시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영토 분쟁의 시작점이 됐다. 예수 탄생부터 죽음까지올해 한국·이스라엘 수교 60주년을 맞아 한국 주요 일간지 기자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주요 기독교 성지를 방문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5일간 성경 속 예수 탄생과 죽음, 부활의 현장을 찾았다. 소강석·박요셉·이재훈 새에덴교회 목사가 동행했다. 현지 안내는 성지순례 전문가 이강근 박사가 맡았다.첫 여정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속한 베들레헴. 6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둘러싸여 총 든 군인들의 검문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성탄절 즈음 전 세계 순례객이 몰려드는 건 이곳에서 약 2000년 전 예수가 태어났다는 믿음 때문이다. 예수탄생교회 지하동굴을 발 디딜 틈 없이 채운 순례객들은 예수 탄생 지점을 표시한 14개 꼭짓점의 은색별 앞에 엎드려 입을 맞췄다.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뒤 나사렛에서 자랐다. 나사렛 성요셉교회 지하에는 예수가 유소년 시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진 집터가 있다. 보존을 위해 1990년대 중후반부터 유리문을 설치하고 관람객의 출입을 금지했다. 지난달 29일 교회 측은 한국 취재진에게 예수 집터를 약 30년 만에 공개했다. 집터 공간은 유리문을 지나 성인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통로를 약 10m 걸어 내려가야 나온다. 집터의 넓이는 33㎡ 남짓. 소강석 목사는 “예수님이 이렇게 낮은 곳에서 살았다는 걸 보면서 한국교회가 너무 부자고, 나부터 너무 많은 것을 가진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며 “한국교회는 더 낮아지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이 교회에서 약 50m 거리에 성경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를 동정 잉태(남성과의 결합 없이 임신)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장소가 있다. 이를 기념하는 수태고지 교회의 벽면은 세계 각국의 마리아 그림이 수놓았다. 쪽머리를 하고 푸른 한복을 입은 마리아가 색동저고리 차림의 예수를 안고 있는 한국 성화(聖畵)도 만나볼 수 있다. 엔데믹에 성지순례도 기지개코로나19 팬데믹 초반 ‘백신 모범국’으로 꼽힌 이스라엘은 현재 모든 방역 조치가 해제된 상태다. 입국 시 코로나19 백신 접종증명서나 유전자증폭(PCR)검사 음성확인서 등도 요구하지 않는다.가나안과 갈릴리호수 등 성지 곳곳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순례객의 기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수가 세례받은 요단강에서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이 강물에 들어가 세례 의식을 재현하기도 했다. 텔아비브부터 예루살렘까지 3주간 걸으며 주요 성지를 순례 중이라는 한 호주인은 “어려서부터 성경과 함께 자라 언젠가는 이곳에 와야만 했다”며 “코로나 방역 조치가 풀리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성지가 모여 있는 예루살렘은 여러 종교의 순례객들로 북적였다. 유대교 성전 터인 ‘통곡의 벽’ 앞에서는 전통 모자 ‘키파’를 쓴 유대인들이 기도하고, 바로 옆에 있는 이슬람 황금돔 사원에서는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하루 다섯 번 울려 퍼졌다. 여기서 10분 거리의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에서는 예수처럼 십자가를 지고 걸으며 기도하는 천주교 신부와 그를 뒤따르는 신자들을 마주쳤다. 테러 위험을 막기 위해 관광지 곳곳에는 총 든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피니 샤니 이스라엘 관광부 수석차관보는 “이스라엘을 찾는 한국인들은 어떤 종교를 가졌든 굉장히 의미 있는 방문이 될 것”이라며 “올해 이스라엘을 방문한 전 세계 관광객은 약 210만 명으로 팬데믹 전의 85%까지 회복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베들레헴·나사렛·예루살렘=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팔레스타인 뿐 아니라 북한도(Not only Palestine, but also N. Korea)”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로 기독교의 성지이자, 다윗의 탄생지로 유대교의 성지이기도 한 베들레헴의 거대한 장벽 위에 한반도 지도와 함께 새겨진 문구입니다. 두 종교의 성지인 동시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베들레헴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부딪히는 치열한 분쟁 지역입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위치해 팔레스타인의 관할 지역이지만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서도 가까워 수많은 성지순례자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곳입니다. 하지만 베들레헴을 드나들기 위해서는 두 민족과 종교를 가르는 이 거대한 장벽을 마주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구분하는 일종의 ‘민족 장벽’이자 ‘종교 장벽’입니다.종교와 민족 간의 갈등으로 세워진 이 거대한 장벽에는 수많은 벽화와 문구가 새겨져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내용도 있고 양 민족 간 평화를 염원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남북한 관계를 바라보는 국내의 엇갈린 시각과도 일면 유사합니다. 지난 2018년 이곳을 찾았을 때 이 중에서도 단연 눈에 들어온 것은 한반도와 이 문구였습니다. 별다른 부연 설명은 없지만, 북한을 자신들과 동일시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시각이 그대로 반영돼있습니다. '11일 전쟁'과 아이언돔지난 5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간의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스라엘 경찰이 예루살렘에 위치한 이슬람교 3대 성지 중 한 곳인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의 시위를 강제 진압한 것이 발단이 됩니다. 시위는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인 거주지에 유대인 정착민을 이주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 퇴거한 이스라엘 정부의 조치에 반발하며 일어났습니다.시위 진압 과정에서 200명이 부상을 입고 2명이 사망하는 피해가 나오자 하마스는 5월 11일 이스라엘 경찰을 향해 오후 6시까지 모스크에서 철수하라는 최후 통첩을 보냅니다. 하마스는 자신들이 제시한 데드라인이 지나도록 이스라엘 경찰이 철수하지 않자 최소 150발의 로켓포를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합니다. 이스라엘 본토에서 2명의 민간인 여성이 사망했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향해 보복 공격을 펼치며 최소 20명이 숨집니다. 같은달 21일 양측이 휴전 협정을 맺기까지 팔레스타인에서 248명, 이스라엘에서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합니다. 양측의 부상자는 2200명에 달합니다.이같은 ‘11일 전쟁’의 피해는 가자지구 민간인들에게 고스란히 집중됩니다. 어린이 사망자만 68명에 달합니다. 이 전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담당하던 의료 기관의 3분의 1이 파괴됩니다.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점령한 2007년 이후 올해를 포함해 이스라엘과 다섯 차례의 대규모 무력 충돌이 발생했는데 인명피해 규모는 이번이 가장 컸습니다. 이번 전쟁으로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이재민만 7만2000여명입니다.이스라엘은 11일 전쟁에서 1500여회의 폭격에 성공합니다. 반대로 하마스가 이스라엘 본토에 발사한 로켓은 4360여발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미사일방어시스템 ‘아이언 돔’으로 하마스의 로켓포 90% 이상을 격추합니다. 이스라엘군이 2011년 실전 배치해 운용 중인 아이언 돔은 1개 포대에 대공탐지 레이더와 20발의 요격 미사일로 구성됩니다. 고도 10㎞ 이하에서 적의 포탄을 동시에 요격할 수 있습니다. 창만 든 하마스와 창과 방패를 모두 든 이스라엘 간의 전쟁이었던 셈입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한국과 이스라엘한국군도 이같은 아이언돔 도입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28일 서욱 국방부 장관 주재로 제137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 회의를 열고 국내 연구개발로 장사정포 요격체계, 이른바 ‘한국형 아이언 돔’을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내년부터 2035년까지 약 2조8900억원이 투입됩니다. 북한이 서울을 겨냥해 군사분계선(MDL) 인근에 전진배치한 1000여문의 장사정포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이언 돔 외에도 최근 한국 언론에는 이스라엘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지난 5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습니다. 말만 무성하던 백신스와프를 처음 맺은 국가도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지난 7일 이스라엘 정부가 한국에 화이자 코로나19 백신 70만회분을 보냅니다. 현지언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지난 6일 “팔레스타인이 딜을 거부한 뒤, 이스라엘이 70만 백신을 한국에 보냈다”며 “백신 스와프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이 곧 유통기한에 다다르는 화이자 백신을 한국으로 보낼 예정”이고 보도합니다. 한국은 오는 9~11월 이스라엘이 제공한 동일한 분량의 화이자 백신을 반환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하고 “양국 우정과 신뢰를 더욱 두텁게 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밝힙니다.한국과 이스라엘은 아시아 대륙의 양 끝단에 위치해 작은 국토에서도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경제 성장을 이룬 ‘강소국’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비슷한 지정학적인 상황에서도 한국과 이스라엘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대칭·비대칭 전력 할 것 없이 군사적으로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이스라엘은 비공식 핵 보유국이기도 합니다. 스웨덴의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9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한국이 해·공군력에서 북한을 압도한다 할지라도 북한의 핵무기로 인해 비대칭전력에서 절대 불균형입니다. 이 때문에 남북 관계에서의 한국과 이·팔 관계에서의 이스라엘이 같은 입장이라 보긴 어려운 것이죠. 남북한 사이에서는 두 차례의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1953년 휴전 이후 숱한 군사 공격과 도발이 어느 한쪽에 의해 일방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큰 차이입니다. 이러한 군사 도발에 맞서기 위한 방어적 성격의 한·미 연합군사훈련조차도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로 몇 년째 축소 시행되고 있고 다음달로 예정된 후반기 훈련도 축소 시행될 가능성이 큽니다.베들레헴의 벽화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북한에 동질감을 느낀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북한 또한 지난 11일 외무성 홈페이지에 강현철 국제경제·기술교류촉진협회 상급연구사 명의의 글을 싣고 “많은 나라는 미국의 ‘원조’와 ‘인도주의 지원’에 많은 기대를 걸다가 쓰디쓴 맛을 봤다”며 대표 사례로 팔레스타인을 꼽았습니다.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그로 인한 주민들의 빈곤, 자신들의 적국(한국·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등이 양측이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죠.1년 전 북한은 170여억원의 한국 국민들의 혈세가 투입된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뒤 적반하장으로 “입 건사를 잘못하면 이제 잊혀 가던 서울 불바다설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고 그보다 더 끔찍한 위협이 가해질 수 있다”고 협박합니다. 그사이 제대로 된 사과를 받기는 커녕 몇 달 뒤 서해상에서 공무원 한명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당하는 끔찍한 참사까지 벌어졌습니다. 과연 베들레헴 장벽에 한반도를 그려넣은 팔레스타인인이 이러한 상황까지 알았다면 과연 남과 북 중 어느 쪽을 자신들과 동일시했을지 궁금합니다.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앙골라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는 현재 글로벌 경제 여건 속에서 석유 감산만으로 국제 유가 하락을 방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이 원유 생산량을 늘린 데다 수요는 중국 경기 둔화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전만큼 회복하지 못해서다.앙골라의 탈퇴는 이미 예고된 상황이었다. 앙골라는 지난 11월 회의에서 OPEC이 유가 부양을 위해 자국과 나이지리아 등의 내년 생산량 목표치를 하향한 데 대해 반발하며 사우디아라비아와 대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앙골라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약 110만배럴이다. OPEC 전체의 생산량인 2800만배럴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평가다.하지만 앙골라의 탈퇴가 다른 회원국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 변수다. 해운 정보 제공업체 케이플러의 애널리스트 매트 스미스는 “OPEC의 응집력과 방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건”이라며 “OPEC은 국제유가를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려는 싸움에서 지고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실제 사우디아라비아가 OPEC의 원유 감산을 주도하는 이유는 회원국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 자국의 네옴 시티 건설을 위한 재정 확보 차원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사우디는 더라인 건설과 홍해 프로젝트 등 대규모 건설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위한 재정 마련을 위해 유가를 배럴당 81달러 이상으로 방어해야 한다.하지만 사우디의 노력에도 유가 하락을 방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이사상 최대 수준으로 원유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 지배력을 확보해 나가는 추세기 때문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주 미국에서 하루 1330만배럴의 원유가 생산됐다고 발표했다. 직전 최고치인 1320만배럴을 재차 경신한 것이다.에너지 시장 컨설팅업체 라이스타드에너지에 따르면 현재 340만 배럴 수준인 브라질의 하루 원유 생산량도 2030년 530만 배럴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영 기업 페트로브라스의 석유 생산량이 같은 기간 하루 210만 배럴에서 330만 배럴까지 뛸 것이란 추정에 기반한 수치다.각국에서 줄줄이 원유 생산이 호황에 들어서며 국제유가는 2020년 이후 3년 만에 연간 기준 내림세를 보였다.중국 경기 둔화도 원유 수요를 정체시키고 있다. 중국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에 비해 0.5% 하락했다. 중국의 1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년 동기 대비 3.0% 하락했다.다만 홍해에서의 긴장감은 여전히 유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21일 현재 210만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실은 158척의 배가 홍해를 피해 다른 항로를 택하고 있다. 컨설팅사 MDS트랜스모달은 20피트 컨테이너당 5만 달러로 추정되는 이들 화물의 가치는 총 1050억 달러라고 추산했다.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