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윈쪽부터) 이인제 전 의원, 김무성 전 대표, 최경환 전 부총리 (아래 왼쪽부터) 박지원 전 원장, 정동영 전 장관, 추미애 전 장관  /사진=뉴스1, 한경DB
(위 윈쪽부터) 이인제 전 의원, 김무성 전 대표, 최경환 전 부총리 (아래 왼쪽부터) 박지원 전 원장, 정동영 전 장관, 추미애 전 장관 /사진=뉴스1, 한경DB
"우리 정치판은 귀하고 좋은 사람이 먼저 배제되고, 그러지 않은 사람이 더 버티고 또 들어오려고 하고 있는가"

내년 초 신당 창당을 공식화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양당을 둘러싼 '인적 쇄신' 상황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의 '리더십'이 위기에 빠진 가운데, 정치권에 때아닌 '올드보이(OB)' 열풍이 부는 모습을 꼬집은 것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정계를 떠났던 OB들이 최근 대거 총선 몸풀기에 나섰다. 일부 초선 의원들이 '후진 정치 구조'를 지적하며 불출마를 선언하는 상황에서, 그 빈자리를 OB들이 채우려는 듯한 모습이다.

2000년대 이전에 정계에 입문한, 소위 'OB'의 귀환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있다. 여권에서는 6선의 이인제와 김무성, 5선의 심재철 전 의원 등이, 야권에서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천정배 전 장관, 추미애 전 장관, 이종걸 전 의원 등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자신이 현역 시절 활동했던 지역구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거나,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 이인제 전 의원은 자신이 4선을 한 충남 논산에서 출판 기념회를 열고, 논산·계룡·금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김무성 전 의원은 자신이 내리 6선을 한 부산 출마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이재명 대표를 잡겠다"며 인천 계양 등 험지 출마를 예고하기도 했다.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도 끊임없이 출마설이 나돈다. 그는 4선을 지낸 자신의 옛 지역구인 경북 경산으로 전입신고를 마쳤다. 민경욱 전 의원도 인천연수을에 출사표를 던졌고,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은 경기 안양동안을에 도전한다.

민주당에선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자신이 3선을 한 목포의 옆 지역구인 전남 해남·완도·진도에 예비 후보로 등록했고, 2007년 17대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전 장관은 자신이 4선을 한 전북 전주에서 5선에 도전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전 장관은 광주 서구을에서 7선에 도전한다.

전북에서 3선 의원을 지낸 유성엽 전 의원도 전북 정읍시·고창군에 출마를 선언했고, 5선을 지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역시 5선인 이종걸 전 의원도 수도권 출마를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열심히 일하는 민간 부문과 달라"…실망한 초선들은 떠난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초선 의원들. 왼쪽부터 오영환, 이탄희, 홍성국 의원 /사진=뉴스1
더불어민주당에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초선 의원들. 왼쪽부터 오영환, 이탄희, 홍성국 의원 /사진=뉴스1
OB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현역 초선 의원들의 불출마가 이어지는 상황과 겹치며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민주당에서는 지금까지 4명의 현역 초선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소방관 출신인 오영환 의원(경기 의정부갑)과 판사 출신의 이탄희 의원(경기 용인정), '증권맨' 신화를 쓰고 정치권에 영입됐던 홍성국 의원(세종갑), 강민정(비례) 의원 등이다.

이들은 불출마를 선언하며 공통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답답한 정치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오영환 의원은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하기에 바쁜, 국민이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책임 있는 정치인의 한 명으로서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했다. 교육 전문가인 강민정 의원도 "21대 국회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처럼 퇴행시킨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특히 '후진적인 정치구조의 한계'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불출마 선언문에서 "지금의 후진적 정치 구조가 가진 한계로 인해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승자와 패자만 있는 '제로섬 정치'의 폐해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고 나쁘다는 걸 체감했다"고 국회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때로는 객관적인 주장마저 당리당략을 이유로 폄하 받기도 했다"며 "내가 이기기 위해 남을 제거해야 하는 전쟁이다.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는 민간 부문과는 달랐다"고 토로했다.
OB의 귀환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미 오래전 국민의 심판을 받고 정계를 떠났던 이들이 혼란한 정세를 틈타 복귀하는 것은 '후배 등에 칼을 꽂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이와 관련 "우리가 경계해야 할 프레임은 올드보이의 귀환"이라고 말했고, 김성주 민주당 의원도 "열심히 싸우는 후배 정치인들의 등에 총을 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정세균 총리와 같이 내려놓는 자세와 태도가 어른다운 것이다"고 지적했다.

내년 총선에서 '동대문갑' 출마를 선언한 여명 전 대통령실 행정관은 이와 관련, 통화에서 "젊은 피, 세대 교체도 좋지만, 당의 어른인 다선 중진도 지혜를 모은다는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면서도 "지금 상황은 안타깝다"고 했다. 정계에 복귀하려는 OB들이 하나같이 당선이 쉬운 자신의 예전 지역구로 돌아가려는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총선 전략을 두 가지인데, 하나는 누가 봐도 '기득권'인 분들이 험지 출마하거나 불출마하고, 다른 하나는 당선될만한 지역에는 3040 청년들을 전진 배치하는 것"이라며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그런 약한 고리를 뒤집고 중진들이 돌아오는 것은 당을 더 외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