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피로 맺은 동맹, 영국과의 새로운 미래
조선시대 김정호가 펴낸 지리서 <대동지지>는 1832년 영국 상선 암허스트가 홍주목(지금의 충남 홍성군)에 도착한 것과 관련, 그 나라의 수도는 ‘란돈(蘭墩·런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국과 영국이 수교한 지 올해로 140주년이 됐다. 영국은 6·25전쟁 당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8만여 명의 병력을 파병했고, 1000명 이상이 전사하며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켰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경제 기적을 만든 한국 국민에게 존경을 표했다.

최근 양국 간 교류는 경제, 과학기술, 문화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영국 자동차시장에서 현대자동차·기아의 자동차 판매량은 올 들어 10월까지 역대 최대인 17만 대를 기록했다. 시장 점유율도 10.8%에 달했다. 또한 비틀스, 해리포터 등 창조산업의 본산인 영국에서 BTS, 블랙핑크 등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방문은 찰스 3세 국왕 취임 이후 첫 번째 국빈 방문이며, 한·영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두 나라 정상이 ‘다우닝가(街) 합의’에 서명함으로써 양국 간 관계를 가장 높은 수준의 관계인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번 방문으로 1조8000억원 규모의 경제 성과가 창출됐다. 해상풍력 분야에서 1조50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국내 청정에너지 생산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국 비즈니스 포럼에서는 2700억원 규모의 수주계약이 체결됐고, 원전 등 에너지와 인공지능(AI) 같은 신산업, 방위산업 등에서 총 31건의 민간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자율주행, 백신, 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다양한 협력이 기대된다.

우선 한·영 자유무역협정(FTA) 개선 협상을 개시해 디지털, 공급망, 에너지 등 신통상 규범을 도입할 예정이다. 해상풍력, 원전 분야 MOU 등 청정에너지 파트너십을 체결해 영국과 글로벌 탄소중립을 선도해 나갈 기반을 마련했다. 원전 분야에서는 소형모듈원전(SMR), 폐기물, 핵융합 등 원전 전 주기에 걸쳐 8건의 민간 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1956년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자로를 개발한 영국과의 기술 협력을 강화하고, 영국 신규 원전 시장 진출의 토대를 마련했다. 아울러 주요 7개국(G7)의 일원인 영국과 공급망 협력체계를 구축해 첨단산업 공급망을 강화, 위기 때 공조 협력이 한층 긴밀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외에 양국 간 디지털 파트너십을 체결해 6G와 AI 등 디지털 분야 협력 발판을 마련했다.

과거 대항해시대에 영국은 과감한 도전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됐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기회와 위험이 병존하는 새로운 대항해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연은 역풍에서 가장 높이 난다(Kites rise highest against the wind, not with it)’는 명언을 남겼다.

영국은 2021년 브렉시트 이후 적극적 통상정책으로 세계 선도국의 위상을 회복해 가고 있다. 130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영국은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AI, 양자기술, 우주산업, 창조산업을 이끌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글로벌 위기를 넘어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잡아야 한다. 6·25전쟁 당시 용맹을 떨친 ‘글로스터셔 연대’의 헌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위대한 기적이 만들어졌다. 앞으로 ‘다우닝가 합의’로 새롭게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영국과 함께 글로벌 중추 국가로의 힘찬 도약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