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는 이탈리아 통일 15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남북간의 지역갈등이 심각을 넘어 거의 전쟁 수준까지 치달은 이탈리아는 묘하게도 대통령은 남부에서, 총리는 북부에서 배출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날도 남부 나폴리 출신이자 진보 정치계의 거두인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과 북부 밀라노의 재벌 정치인 베를루스코니가 서로 불편한 표정으로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손끝을 움직이자 마치 지중해의 북서풍 마에스트랄레처럼 가슴을 적시는 선율이 순식간에 극장 안으로 울려 퍼졌다. 주세페 베르디가 남긴 불후의 명곡,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었다.

오페라 <나부코> 속의 이야기는 이렇다. 바빌론의 압제자 나부코 왕에게 사로잡힌 유대인들은 유프라테스 강가로 끌려나와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이 저무는 황혼녘에 고향땅을 바라보며 입을 모아 망향의 설움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가라, 마음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
아아, 잃어버린 아름다운 조국이여
그립고도 애달픈 추억이여, 예언자의 황금 하프여
너는 왜 말없이 버들가지에 매달려 있는가?"

-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나부코> 제3막

노래를 부르던 합창단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물은 곧 객석으로 전염되어 온 극장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 순간만큼은 해묵은 남북 간의 지역감정도, 서로를 향한 삿대질과 비난도 종적을 감추었다. 베르디의 음악 앞에서 정말로 ‘하나의 이탈리아’가 되어 통일 150주년을 뜨겁게 자축했다.
우울증 시달리던 베르디는, 詩 한구절에 번쩍 뜨여 '이탈리아 제2의 애국가'를 작곡했다
국립오페라단이 11월 말부터 공연하는 <나부코>는 베르디에게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는 하마터면 이 오페라를 쓰기 전에 펜을 꺾을 뻔 했다. 첫 두 편의 오페라를 모두 실패하고, 어린 두 아이와 사랑하는 부인을 전염병 등으로 차례로 잃었다. 심한 우울증에 빠진 베르디는 대인기피증에 걸렸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할 만큼 정신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졌다. 이때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후일 베르디는 이날의 기억을 회고록에서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귀가를 서두르던 나는 오페라 대본을 건성으로 받아들었다.
내 마음은 예리한 슬픔과 숨 막히는 괴로움으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대본을 책상 위로 집어던졌다.
그 바람에 묶여있던 원고가 스르륵 펼쳐졌다.
우연히 열린 페이지에 쓰인 한 줄의 시구가 내 눈에 들어왔다.
“가라 마음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i dorate!)”
갑자기 가슴 속으로 악상이 흘러 넘쳤다.


단 한 구절의 시가 베르디의 예술혼을 폭발시켰다. 식음을 전폐하고 거의 광인에 가까운 몰골로 작곡에 몰두한 그는 순식간에 4막짜리 대작 오페라를 완성시키고야 만다. 지금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이탈리아에서 제2의 국가로 불린다. 한 개인의 가장 비참하고 절망적인 순간에 탄생한 선율이 지금은 온 세상을 감동시키는 가장 위대한 음률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