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월동 여성들]① '120년 역사' 성매매 집결지에 갇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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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형성…재개발 사업 승인에 폐쇄 가시화
완월동 벗어난 여성들 "무일푼에 육체·심리 불안 상태"
[※ 편집자 주 = 우리나라 최초이자 부산지역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인 '완월동'의 재개발 사업이 최근 승인됐습니다.
완월동 개발이 가시화되면서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 60여명은 다시 사회에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연합뉴스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자활 지원의 중요성을 살펴보고 완월동의 개발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기획 기사를 20일부터 3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 부산에는 120년 된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
20일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에 따르면 1902년 유곽이 생기면서 시작된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의 역사는 공창제를 실시하던 일제강점기 내내 이어졌다.
한국전쟁 때는 유엔군 위안소로 운영됐으며 1980년대에는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외화벌이 장소였다.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20여곳의 업소에서 60여명의 여성이 일하고 있다.
근대 역사의 격랑을 겪은 완월동에 최근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민간 건설사에서 이 부지에 40여층 높이의 건물 6개 동을 짓는 사업안을 제안했는데 부산시가 이를 승인한 것이다.
이로써 부산에 마지막으로 남은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은 12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완월동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자연스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문제는 성매매 여성들이 좁은 골방을 벗어나 사회에 정착할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려고 해도 성매매 업소에서 적어도 10년, 많게는 20년 이상 일하다 보니 육체나 정신이 성치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수십 년 동안 사회와 단절돼 일반인과 정상적인 교류를 이어오지 못한 탓에 사회생활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20년가량 완월동에서 일했던 60대 A씨는 "완월동에서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사람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게 쉽지 않다"며 "예전에 만난 손님은 아닐지 과거가 노출될까 봐 항상 마음이 위축되고, 전반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해 자립하는 힘 자체를 상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여성들은 자신이 머무는 방에서 24시간 대기하면서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손님을 맞아왔기 때문에 항상 긴장감과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살림 관계자는 "누군가는 식당에서 설거지하거나 건물에서 청소해도 되지 않냐고 묻지만, 사회와 수십년간 교류 없이 동떨어져 있는 이 여성들은 간단한 장보기는 물론 대화하는 것조차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특히 완월동을 나올 때 돈 한 푼 없이 나와야 하는 경제적 현실이 가장 힘들다.
업소별 차이가 있지만 성매매 여성들은 한 달에 번 돈의 절반가량을 포주에게 줘야 한다.
나머지 절반 가운데서도 월세, 호객비, 지각비 등 벌금과 일을 쉬고 싶을 경우 '일비'라는 명분의 돈을 포주에게 내야 한다.
수익보다 지출이 많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일을 할수록 빚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20년 동안 완월동에 있다가 최근 빠져나온 40대 B씨는 "공장에서 만난 친구의 소개로 다방에서 일하게 됐고 이후 완월동에 왔지만, 빚더미에 앉게 됐다"며 "포주에게 일을 해서 몸이 아프다고 말했더니, 일을 해서 병원비를 스스로 마련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을 하지 않으면 수십만원을 내야 해 보통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돈을 모을 수 있었겠느냐"며 "동료 여성 중에는 상담소에 상담받으러 갈 차비가 없어서 못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부산시는 이에 대비해 내년 예산안에 완월동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자활 예산 3억5천여만원을 편성한 상태다.
살림 관계자는 "그동안 여성단체에서 꾸준히 여성들을 지원해왔는데, 완월동이 본격적으로 폐쇄됨에 따라 많은 여성이 사회에 나올 경우 이들을 위한 정부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지난해 11월 시의회는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선정된 완월동 아카이브 사업의 예산 1억2천8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며 "이처럼 성매매 여성 지원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인 기류가 있어 관련 예산 통과까지 난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완월동 벗어난 여성들 "무일푼에 육체·심리 불안 상태"
[※ 편집자 주 = 우리나라 최초이자 부산지역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인 '완월동'의 재개발 사업이 최근 승인됐습니다.
완월동 개발이 가시화되면서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 60여명은 다시 사회에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연합뉴스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자활 지원의 중요성을 살펴보고 완월동의 개발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기획 기사를 20일부터 3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 부산에는 120년 된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
20일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에 따르면 1902년 유곽이 생기면서 시작된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의 역사는 공창제를 실시하던 일제강점기 내내 이어졌다.
한국전쟁 때는 유엔군 위안소로 운영됐으며 1980년대에는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외화벌이 장소였다.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20여곳의 업소에서 60여명의 여성이 일하고 있다.
근대 역사의 격랑을 겪은 완월동에 최근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민간 건설사에서 이 부지에 40여층 높이의 건물 6개 동을 짓는 사업안을 제안했는데 부산시가 이를 승인한 것이다.
이로써 부산에 마지막으로 남은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은 12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완월동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자연스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문제는 성매매 여성들이 좁은 골방을 벗어나 사회에 정착할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려고 해도 성매매 업소에서 적어도 10년, 많게는 20년 이상 일하다 보니 육체나 정신이 성치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수십 년 동안 사회와 단절돼 일반인과 정상적인 교류를 이어오지 못한 탓에 사회생활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20년가량 완월동에서 일했던 60대 A씨는 "완월동에서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사람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게 쉽지 않다"며 "예전에 만난 손님은 아닐지 과거가 노출될까 봐 항상 마음이 위축되고, 전반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해 자립하는 힘 자체를 상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여성들은 자신이 머무는 방에서 24시간 대기하면서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손님을 맞아왔기 때문에 항상 긴장감과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살림 관계자는 "누군가는 식당에서 설거지하거나 건물에서 청소해도 되지 않냐고 묻지만, 사회와 수십년간 교류 없이 동떨어져 있는 이 여성들은 간단한 장보기는 물론 대화하는 것조차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특히 완월동을 나올 때 돈 한 푼 없이 나와야 하는 경제적 현실이 가장 힘들다.
업소별 차이가 있지만 성매매 여성들은 한 달에 번 돈의 절반가량을 포주에게 줘야 한다.
나머지 절반 가운데서도 월세, 호객비, 지각비 등 벌금과 일을 쉬고 싶을 경우 '일비'라는 명분의 돈을 포주에게 내야 한다.
수익보다 지출이 많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일을 할수록 빚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20년 동안 완월동에 있다가 최근 빠져나온 40대 B씨는 "공장에서 만난 친구의 소개로 다방에서 일하게 됐고 이후 완월동에 왔지만, 빚더미에 앉게 됐다"며 "포주에게 일을 해서 몸이 아프다고 말했더니, 일을 해서 병원비를 스스로 마련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을 하지 않으면 수십만원을 내야 해 보통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돈을 모을 수 있었겠느냐"며 "동료 여성 중에는 상담소에 상담받으러 갈 차비가 없어서 못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부산시는 이에 대비해 내년 예산안에 완월동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자활 예산 3억5천여만원을 편성한 상태다.
살림 관계자는 "그동안 여성단체에서 꾸준히 여성들을 지원해왔는데, 완월동이 본격적으로 폐쇄됨에 따라 많은 여성이 사회에 나올 경우 이들을 위한 정부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지난해 11월 시의회는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선정된 완월동 아카이브 사업의 예산 1억2천8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며 "이처럼 성매매 여성 지원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인 기류가 있어 관련 예산 통과까지 난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