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가와 음악당
이시가와 음악당
일본 중서부에 위치한 인구 40만의 도시 가나자와는 ‘제2의 교토’라 불린다. 전쟁은 물론 지진과 같은 재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전통가옥이 많은 부분 보존되어 있어 도시 전체가 정갈하고 차분하다.

21세기 미술관과 같은 급진적인 동시대 예술을 역동적으로 품고 있는 이 도시의 철도역 바로 옆에는 '이시가와 음악 콘서트홀'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11월 4일 이 콘서트홀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어우러져 특별한 공연을 펼쳤다. 바로 이시카와 뮤직 아카데미(IMA) 창립 25주년 기념 콘서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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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오후 마티네로 열린 이날 공연은 이시카와 뮤직 아카데미 출신의 아티스트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였다. 1부 순서는 국제 콩쿠르 우승 주역들의 협주곡 무대로 꾸며졌다. 먼저 2021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 우승자 미치아키 우에노(첼로)가 첫 번째 솔리스트로 등장해 쿠프랭의 첼로와 현을 위한 모음곡을 연주하며 콘서트의 문을 열었고, 이어 2016년 몬트리올 국제 콩쿠르 우승자 아야나 츠지(바이올린)와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자 양인모(바이올린)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2 번을 연이어 연주했다.

비발디 ‘사계’가 연주된 2부 프로그램은 이번 공연을 위해 프로젝트로 결성된 ‘드림 슈퍼 스트링 앙상블’ 단원들로 꾸며졌다. 앙상블 단원으로 참여한 시온 미나미, 후미카 모리, 최주하, 료스케 수호가 번갈아가며 솔리스트로 등장해 각 계절의 소리를 이끌었다. 솔리스트는 물론 풀트 앞에 앉은 앙상블 한 명 한 명이 ‘단원’이라는 이름표가 무색할 만큼 국제 콩쿠르 무대를 빛낸 내로라하는 경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아카데미 스승이자 도쿄 현악4중주 리더였던 고이치로 하라다의 차분한 지휘 아래, 이들은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앙상블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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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 뮤직 아카데미의 기원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클래식 음악 공연기획사 ‘아스펜’ 대표 마사미 시게타가 뉴욕 줄리어드에서 도로시 딜레이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사라 장을 비롯해 미도리, 이자크 펄만 등 현존하는 거장들을 길러낸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대모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아시아의 어린 음악 전공생들을 위한 음악 캠프를 만들어 보라고 그에게 조언했다. 그럼에도 그 베이스캠프를 가나자와로 선택한 것은 의외였다. 이 전통적인 도시에는 당시에 콘서트홀은 물론 음대를 포함한 음악교육 기관이 아예 전무한, 음악적으로는 불모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시게타는 막역한 친구였던 당시 이시카와현 지사를 끈질기게 설득해 정부 지원금을 이끌어냈고 1997년 마침내 첫 뮤직캠프를 개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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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한여름,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첩첩산중의 리조트에서 열리는 이시카와 뮤직 캠프는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모집한 10~20명의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 꾸준히 열려왔다. 규모도 소소하고, 외진 곳에서 벌어지는 행사인지라 지역주민들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무명의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 변방까지 찾아온 음악가들의 이름은 결코 ‘소소’하지 않았다. 캠프를 만들도록 독려한 도로시 딜레이는 물론 지안 왕, 초량린 등 국제적인 아티스트들이 초창기 IMA의 기틀을 잡았으며, 1회부터 참여한 음악감독 고이치로 하라다는 25년 동안 어린 학생들의 든든한 스승이자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하라다와 절친한 음악 동료였던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고 김남윤 또한 교육은 물론 영재 발굴에 앞장선 인물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김남윤의 눈에 처음 띄어 제자로 발탁된 곳이 바로 이 IMA였다. 클라라 주미 강, 임지영, 신지아, 장유진, 김동현 등 지금 해외에서 주목받는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연주가들이 모두 이 IMA를 거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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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일본 학생들이 캠프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음악가들이 더 뛰어난 기량을 보이더군요. 한국의 어린 음악가들은 기교도 뛰어나지만 적극적인 표현력을 가지고 있어 다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일본 학생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어 주었습니다. 또 서로 어울리면서 우정도 나누고 국적에서 비롯된 장벽을 허무는 데도 캠프가 일조했던 것 같아요.” 반세기 동안 학생들을 배출해 온 음악감독 하라다의 소감이다.

2주는 짧은 기간이지만 한 번 찾아온 학생들은 꾸준히 여름마다 다시 찾아왔다. 집중적인 테크닉 교육도 훌륭했지만 선생들과의 친밀한 교감도 IMA가 가진 매력이었다. 특히 음악성은 물론 인품마저 훌륭한 하라다와의 소통은 어린 학생들에게 기교를 넘어서 진정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을 알려주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또한 “하라다 선생과 함께 하고 싶어서” 25주년 기념공연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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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를 극복하고 올해 8월 3년 만에 다시 시작된 IMA는 오랜 동료였던 김남윤의 부재로 진행됐다. 대신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 백혜선(피아노)과 서울대 교수 백주영(바이올린)이 새로 합류했다. IMA의 다음 반세기를 내다보는 하라다의 시선은 예년과 다르다.

“지금까지 IMA는 솔리스트를 양성하는데 주안점을 두어 왔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음악교육이 대개 그래왔듯이요. 음악가들은 어릴 때부터 경쟁하며 서로를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교육을 받아 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앙상블’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다른 이의 소리를 들으며 조화로운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가 더 절실해졌어요. 2주라는 짧은 교육 기간이 문제이긴 하지만, 가능하다면 앞으로는 실내악이라든가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가들을 양성하고픈 마음이 커지고 있습니다.” 노승림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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