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 여성작가가 쓴 도발적 소설…올해 일본 최고권위 아쿠다가와상 수상
"내가 임신하고 중절하는 걸 도와주면 1억엔을 줄게요.

"
'근세관성 근병증'이라는 병을 앓아 중증 척추 장애를 갖게 된 여성 이자와 샤카는 자신을 돌보는 남성 간병인에게 어느 날 이런 충격적인 제안을 한다.

휘어지고 뒤틀린 등뼈 때문에 인공호흡기와 객담을 빼내는 흡인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육체를 지닌 샤카.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식사와 목욕도 할 수 없고, 평범한 연애와 섹스도 불가능하다.

일본의 명문 사립 와세다대에 다니는 샤카는 장애인이지만 요양 그룹홈 건물의 소유주이자 막대한 현금을 물려받은 부유층 상속녀다.

물려받은 재산 때문에 일할 필요조차 없지만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태블릿PC로 성인 웹 소설과 잡글을 써 푼돈을 벌고 그 돈을 불우이웃에 기부하며 살아간다.

샤카(釋華)에게는 또 다른 자아가 있다.

SNS에서 샤카는 샤카(紗花)라는 또 다른 이름을 내세워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며 살고 싶다는 욕구를 분출한다.

"다시 태어나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라거나 "비장애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을 하고 싶다"라는 도발적인 발언을 SNS 공간에서 내뱉던 샤카는 급기야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이용해 남성 간병인의 몸을 사 임신과 중절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그 이유는 바로 '헌치백'(hunchback·꼽추)이 아닌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일본의 장애인 여성 작가 이치카와 사오(44)의 자전적인 스토리가 녹아 있는 장편소설 '헌치백'의 줄거리다.

소설에는 작가가 중증 장애인으로서의 겪은 삶의 경험이 핍진하게 녹아있는 데다, 인터넷 밈과 은어를 과감히 차용하는 등 풍자성과 실험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설 마지막 부분의 짧은 글로 작품 전체를 뒤집어엎는 반전도 놀랍다.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적 시선을 상대로 장애인 여성의 거침없는 성적 욕망이라는 도발적 소재와 스토리로 응수한 이 작품은 올해 일본 최고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작품의 소재와 완성도, 작가가 지닌 화제성 덕분에 일본에서도 출간 후 30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난 7월 열린 아쿠타가와상 시상식에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기자들 앞에 선 작가는 자기 목에 꽂혀 있는 기관절개 호스를 누르며 기자들의 질문에 여유 있게 답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당시 "어째서 2023년에 이르러서야 (아쿠타가와상을) 중증 장애인이 최초로 수상하게 됐는지 모두가 생각해주셨으면 한다"는 수상소감으로 차별적 시선에 또 한 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작가는 한국어판을 내면서 한국의 문학과 영화가 자신의 창작활동에 큰 힘이 돼줬다는 고백도 했다.

그는 '헌치백' 한국어판 서문에서 "현실사회를 이야기하는 힘을 가진 한국문학은 비슷한 고민과 억압에 고통받아 온 일본 사람들을 깊은 공감으로 이끌어줬다"면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그려낸 장애 여성의 성과 삶, 로맨스 이야기는 제게 수많은 감정과 창작 의욕의 원천이 됐다"고 했다.

허블. 14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