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탈북어민, 동료 죽인 흉악범"…檢 "국내서도 처벌 가능"
'강제북송' 첫 재판서 공방…서훈·노영민도 무죄 주장
검찰 "북한주민은 헌법상 우리국민" vs 서훈측 "정대세는 뭔가"(종합)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으로 기소된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이 첫 재판에서 "흉악범을 국내에 편입시키면 국민 생활과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판단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은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허경무 김정곤 김미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등 혐의 재판에서 발언 기회를 얻어 이같이 말했다.

정 전 실장은 "이번 사건은 북한에서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후 NLL(북방한계선)을 침범해 무단으로 월선한 이들을 우리 해군이 제압해 나포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들은 하룻밤 새 동료 선원들을 흉기로 살해한 흉악범"이라며 "정부에선 이들을 사법절차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들의 귀국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신과 증거가 없는 살인 혐의라 남한 형사재판에서 단죄하기가 형식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무죄를 받고 우리 사회에서 활보할 수도 있었다고 정 전 실장 측 변호인은 주장했다.

함께 기소된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도 "정 전 실장과 의견을 같이한다"며 "북송 결정이 위법이라는 전제 아래서 이뤄진 공소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어민들을 북송하는 의견에 '타당하다'고 수긍했을 뿐, 다른 피고인들과 공모하진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통일부는 당시 합동조사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탈북 어민들의 수용과 퇴거를 결정하는 것도 통일부 기능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역시 무죄를 주장했다.

반면은 검찰은 공소사실 요지를 설명한 후 "탈북 어민이 살인자라고 한들 국내 수사와 재판으로도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할 수 있다"며 "그것이 헌법상 핵심 가치인 법치주의를 따르는 것"이라고 맞섰다.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하는 헌법 3조를 근거로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귀순 의사를 밝힌 이들 어민도 우리 국민이라는 주장이다.

이어 "이들이 북송된 후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현재까지 알려진 적이 없다.

아마 살아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한국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인데 이들을 포박해 북송한 게 정당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따졌다.

이 대목에서 검사는 목이 메는 듯 울먹였다.

반면 서 전 원장 변호인은 '인민 루니'로 알려진 축구선수 정대세를 언급하며 "남북 국적 문제라는 것이 단칼에 결론 낼 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정대세 선수는 재일교포 2세인 아버지의 한국 국적을 따르게 됐지만 어머니는 조선(북한) 국적이고 어렸을 때부터 조선총련계 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아 2007년 북한 국가대표가 됐다"며 "외국에는 북한 여권을 가지고 나가고 한국에 올 때는 주일한국영사관에서 임시 여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정대세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북한에 정체성이 있고 귀순 의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우리 정부는 이 사람이 국내에서 축구 선수로 활동할 수 있게 해줬다"며 "정대세를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케이스에 따라서 대한민국 법원과 정부가 현명하게 대처해왔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전 실장 변호인도 "북한 주민은 어떠한 경우에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해석 논리는 전시 분단국가이면서도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헌정 질서를 오로지 대결 국면으로 몰아가려는 안보 우익집단의 논리"라며 "전 정부의 평화적 남북 정책을 폐기하고 냉전 안보 정책을 부활하려는 현 정부의 의중을 담은 '묻지마식' 기소로 공소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전 실장 등은 2019년 11월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것으로 지목된 탈북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로 북한에 돌려보내도록 관계 기관 공무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킨 혐의를 받는다.

북한 어민 2명은 2019년 11월2일 동해상에서 어선으로 남하하다가 NLL 인근 해상에서 군에 나포됐다.

당시 정부는 이들 어민이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를 저질러 보호 대상이 아니라며 나포 닷새 만에 북송했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강제 북송' 경위 등을 놓고 다시 논란이 일면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이날 양측의 입장을 들은 재판부는 내달 6일 증인신문을 진행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