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노동계 '파이터'들의 변신
“민주노총의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은 수없이 등장했는데 문재인 정부 때는 한 번도 없었다. …노란봉투법도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가진 거대 집권당 시절에 충분히 통과시킬 수 있던 법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인제 와서 입법을 추진한다. 민주노총이 민주당의 하청을 받아 용역 투쟁을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내용만 보면 여당의 중견 정치인이 쓴 것 같지만 실제 이 글의 작성자는 강성 노동 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던 정호회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변인이다. 최근 인터넷에 ‘나의 노동운동 실패기, 그리고 새로운 선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정 전 대변인은 2003년 화물연대를 조직해 파업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노동 현장의 후배들에게 ‘뼈 때리는’ 질타를 하고 있다.

정 전 대변인은 과거 통합진보당 사태 때 보여준 노동계의 폭력성과 정치 편향성에 기가 질렸다고 한다. 여기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노동계를 떠나는 결정타가 됐다. 우리 편이 무조건 옳다는 진영논리가 충격이었다고 했다.

민주노총 조직실장 출신인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도 최근 기득권 노조의 구태를 비난하며 탈(脫)진보를 선언한 인물이다. 그는 “양대 노총 조합원 상당수는 이미 상위 50%의 기득권층”이라며 “재벌, 정부 탓만 하지 말고 먼저 무언가를 내놓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 노동운동가 중에서 보수진영으로 돌아선 사례는 왕왕 있다. 도루코 노조위원장 출신인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서울지하철공사 노조 설립을 주도한 배일도 전 한나라당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 전 대변인과 한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의 핵심 지도부 출신인 데다 노동계의 소문난 강성 ‘파이터’였다는 점에서 그 변신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이들의 고언은 이러다 민주노총이 진짜 붕괴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사라져야 한다’는 저주가 아니라 ‘바꿔야 산다’는 경고다. 그만큼 노조의 정치 편향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커지고 있다. 그 사회적 인내가 바닥나기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지 모른다.

고경봉 논설위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