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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경봉
    고경봉 편집국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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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신문 스타트업부장입니다.

  • [다산칼럼] 코스피 5000 말하면서 M&A는 틀어막나

    여당의 ‘소액주주 챙기기’가 거침없다. 경영진에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부과하고, 주주총회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더니, 이번엔 ‘의무 공개매수’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회사를 인수하려면 대개 경영권을 가진 최대주주의 지분만 사면 됐다. 국내 상장사 최대주주의 평균 지분율은 약 30%. 인수 측은 이 지분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시세보다 비싼 값에 사들였다.그런데 앞으로는 ‘회사를 인수할 때 최대주주 외에 소액주주들의 지분까지 사야 한다’는 게 이 의무 공개매수 제도의 요지다. 언뜻 보면 이상적이다. 소액주주들도 최대주주나 경영진과 동등하게 자기 지분을 웃돈을 주고 팔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여당은 “최대주주에게 과도하게 몰린 특혜를 없애고 기업 매각의 과실을 모든 주주가 동등하게 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제도라는 점에서도 명분이 선다.하지만 모든 제도가 그렇듯, 한국에서만 제대로 안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배경과 맥락을 두루 살펴 왜 한국에서는 안됐는지, 그 제도를 도입한 뒤 어떤 문제가 생길지를 검토한 뒤 추진해도 늦지 않다.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의무 공개매수 규모를 100%로 하자는 게 주류다. 이렇게 되면 일단 인수합병(M&A)이 확 줄어든다. 인수 측 입장에선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거금을 들일 가치가 있는 기업, 저평가된 기업, 우량 자산이 많거나 성장성이 높은 기업만 사들이게 된다. 지분을 모두 다 사기 때문에 인수 절차가 끝난 기업은 무조건 상장폐지된다. 결국 우량 기업들이 증시에서 이탈하는 상황이 된다. 반면 M&A를 통해

    2025.12.03 17:40
  • [다산칼럼] 늑대 무리가 몰려온다

    전 세계 행동주의 펀드가 먹잇감을 찾아 일본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이다. 판을 깔아준 것은 일본 정부였다. 일본은 아베 신조 전 총리 집권기이던 2014년부터 주주 친화적인 자본시장 밸류업 정책을 추진했다. 기업 거버넌스 코드를 제정해 기업 경영진에 주주 이익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했고, 배당 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을 늘리도록 압박했다. 연기금과 기관투자가들도 신설된 스튜어드십 코드에 맞춰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를 지지했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물 만난 고기가 됐다. 2015년 10건이던 행동주의 펀드 활동 건수는 2019년 60건으로 불어났다.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들이 기업의 장기 성장성은 안중에 없는 ‘늑대 무리’(wolf pack)라는 것을 일본 국민이 깨달은 것은 한참 뒤다.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가 떼를 지어 자국 전자산업의 상징인 도시바를 물어뜯는 것을 목도하면서다. 그 후유증은 컸다. 일본 기업들이 용도 폐기하다시피 한 포이즌필 등 경영 방어책을 다시 꺼내 들기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다.10년 전 일본을 소환한 것은 요즘 한국 주식을 열심히 사들이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드는 여러 생각 때문이다. 최근 외국인 매수세는 최근 4~5년간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이다. 그 열기가 원동력이 돼 한국 증시를 새로운 영역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그 외국인들의 국적 비중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유럽계 자금이 확 늘었다. 특히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영국령 케이맨제도와 같은 조세회피지역의 헤지펀드 자금이 많이 들어온다. 지난달 유입된 외국인 자금의 3분의 1 이상이 이 지역에서 왔을 정도다. 그리고

    2025.10.29 17:38
  • [다산칼럼] 건설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들

    ‘토목공학.’ 한국전쟁 후 폐허만 남은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기술 중 하나다. 열악한 환경에서 배운 ‘토목쟁이’들은 경부고속도로 같은 산업 인프라를 깔고, 조선·자동차·철강·반도체로 이어지는 제조 강국의 초석을 닦았다. 토목공학과는 1970~1980년대 인기 학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많은 토목공학과가 사라지고 몇몇 대학은 건설환경공학과,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등 ‘참신한’ 이름으로 바꾸고 있다. 하지만 상황 반전이 쉽지 않다. 그 분위기는 산업 현장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요즘 건설 공사 현장에선 젊은 연령대의 관리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이 현장을 기피하고 있어서다.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큰 원인은 모든 산업 관리직을 통틀어 감옥에 가야 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점이다. 안전 사고로 직원이 많이 구속되는 업종 중 ‘건설업’ 비중은 압도적이다. 감옥행 사례는 올해도 이어진다. 지난 2월 사상자 10명을 낸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구조물 붕괴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 및 하청업체 현장소장이 줄줄이 구속됐다. 2~3년 전 발생한 서울 마포 아파트 건설 현장과 광주광역시 아파트 건설 현장의 사망 사고로 건설소장들이 올해 초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현장 관리자들은 안 그래도 힘든 현장 살이에 사법 리스크까지 감수해야 한다.전문가들이 빠진 현장엔 50대 이상 일용직 근로자와 외국인 근로자가 가득하다. 전날 술이 덜 깬 상태로 안전화 대신 슬리퍼를 신고 나타나는 고령 인부, 현장 경험이 적고 기본적인 한국말조차 모르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뒤섞여 일한다. 관리자는 안전교육 자료를 4~5개국

    2025.09.21 17:26
  • [다산칼럼] 日 100년 기업 위협하는 '2030 K혁신'

    아직 우리나라가 조선이던 1887년, 일본에선 아시아를 대표하는 화장품 기업이 탄생했다. 시세이도가 그 주인공이다. 한반도에선 청계천 한편의 분전(粉廛) 상인들이 오이즙과 연분을 양반가 규수와 궁녀들에게 파는 동안, 시세이도는 유럽 제품을 뛰어넘는 스킨케어를 만들겠다며 유럽 유학파들을 투입했다. 자국 전통문화와 결합한 ‘J뷰티’ 마케팅으로 일본 전체를 장악했고, 2차 대전 이후엔 세계로 뻗어나갔다. 시세이도의 명성을 뛰어넘을 만한 뷰티 브랜드는 종주국인 유럽에서도 많지 않다. 에스티로더, 로레알 정도만 거론된다.그런데 최근 한국의 신생 뷰티 기업이 이 시세이도의 몸값을 따라잡는 역사를 썼다. 요즘 주식시장에서 뜨거운 에이피알 얘기다. 몸값을 순식간에 8조원까지 불리며 국내 뷰티 브랜드 1인자인 아모레퍼시픽을 제치더니, 140년 가까이 아시아 맹주로 군림해 온 시세이도에 그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다. 생긴 지 11년, 상장한 지 고작 1년밖에 안 된 기업이 말이다.에이피알 성공 스토리는 다른 기업과는 많이 이질적이다. 스타트업이면서 굴지의 대기업들조차 포기하다시피 한 뷰티 디바이스 분야에 뛰어든 것부터가 그렇다. 대형 유통망에 제품을 얹지도 않고, 대형 미디어를 통한 마케팅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SNS와 인플루언서를 통해 입소문을 내고 자체 사이트에서 제품을 팔았다. 그런데도 수년 만에 판매망이 세계 각국으로 뻗고 있다. 알음알음 전 세계에서 몰려든 회원 수가 800만 명이다. 2년 전 30% 남짓이던 해외 매출 비중이 지난해 50%대로 치솟았고, 올해는 80%에 육박한다. 에이피알을 지금의 반석 위에 올려놓은 힘을 꼽자면 남다른 ‘혁신의 속도’다.

    2025.08.17 17:07
  • [다산칼럼] 약자를 짓누르는 법안들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2010년대 중후반쯤 철강사와 발전사 등에서 인명사고가 반복되면서다. 특히 2018년 한국서부발전 화력발전소에서 도급 업체 직원인 김용균 씨가 작업 중 숨진 게 도화선이 됐다. 정치권과 노동계, 시민단체들은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산업 재해의 진앙이라고 봤다. “이들 기업이 비용을 아끼려고 ‘위험을 외주화’하면서 인재형 참사가 이어지고, 그 뒤엔 이전 정부의 재벌에 대한 특혜성 규제 완화가 배경이 됐다”는 논리다.하지만 법 시행 후 결과는 그런 주장과 달랐다. 올해 초까지 지난 3년여간 600여 건의 주요 사고 가운데 31건이 기소되고, 이 중 29건이 유죄 선고를 받았는데 대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처벌받은 곳의 87%가 중소기업이었고 중견기업은 13%에 그쳤다. 안전사고가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재벌’을 겨냥한다며 시행한 법은 그렇게 중소기업들을 위축시키는 결과만 낳았다.근로자나 소액주주 등의 권익을 위해 기업의 경영 활동을 규제하는 법안은 종종 약자를 배려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또 다른 약자를 짓누른다. 대기업의 행태를 바꿔 재계 전체의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의도와 달리 기업 생태계의 제일 밑단에 있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무너뜨리는 식이다.지금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고용보험법 개정안, 상법 개정안 등 일련의 산업 노동 관련 법안을 보면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노란봉투법은 회사가 노조 파업으로 피해를 보더라도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법안엔 대기업 근로자 중심의 대형 산별 노조를 지원하려는 속내가 담겨 있

    2025.07.20 17:18
  • [다산칼럼] 대통령도 못 피한 배임죄, 이제 없앨 때 됐다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려면 다른 나라에서는 접하기 힘든 위험 하나를 각오해야 한다. ‘경영 판단을 잘했더라도 회사가 손해를 보면 감옥에 갈지 모른다’는 점이다. ‘배임죄’에 걸리면 그렇게 된다. 기업을 키우다 보면 횡령, 탈세 같은 명백한 범죄 행위부터 산업 안전 미비, 불공정 거래, 노사 갈등 등 논쟁적 사안까지 ‘교도소 담장 위를 걷게 만드는’ 사유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배임죄는 차원이 다르다. 멀쩡한 기업의 경영자는 물론이고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자도 누구든 피의자가 될 수 있다.회사가 제삼자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그 제삼자가 이익을 얻고, 결과적으로 회사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생기면 경영자는 10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손해 액수가 크면 특별가중처벌 대상으로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경영 판단을 잘못했다고 살인죄에 해당하는 형량을 살아야 하는 셈이다. 인수합병(M&A), 투자 유치, 자산 매각, 물품 거래, 용역 발주까지 모든 경영 활동이 대상이다. 당시에 ‘잘한 거래’였더라도 사후 판단에 따라 죄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피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미수’로 처벌받기도 한다. 그 ‘손해’의 정의도, 처벌 범위도 모호하다.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법이다.해외에선 배임죄를 형사처벌하는 나라가 드문 것은 이처럼 죄의 유무와 범위가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점 때문이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민사로 해결하거나 사기 등 다른 명확한 범죄가 동반될 때만 형사처벌한다. 배임죄를 적용하는 몇몇 나라 중에서도 유독 한국이 처벌 강도가 세

    2025.06.15 17:34
  • [다산칼럼] 나라 전체 멈춰 세울 악성코드의 습격

    지금 한국을 뒤흔들고 있는 SK텔레콤 해킹 사건은 방대한 유출 정보와 교묘한 공격 방식도 놀랍지만,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악성코드가 3년 전에 심어졌다는 점이다. 그 악성코드들은 오랫동안 국내 대표 통신기업의 서버 곳곳에 웅크려 있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이번 해킹은 악성코드를 장기간 숨겨뒀다가 특정 시점에 해커가 명령을 내려 코드를 일제히 활성화하는 이른바 ‘BPF도어’ 방식이다. 그렇게 2500만 명의 휴대폰이 털렸다. 영화 ‘킹스맨’에서 악당들이 전 세계 휴대폰 사용자들에게 무료 유심을 나눠주고 어느 날 초음파를 발생시켜 사람들을 착란에 빠뜨리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비슷한 방식의 공격이 현실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이번 공격의 범인이 누군지, 왜 그랬는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악성코드의 오랜 잠복은 적어도 이 공격을 주도한 이들이 돈이나 명성 등을 노린 게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이미 정보를 빼내 팔아치우거나 ‘사이버 인질극’을 벌였을 것이다. 많은 국내 전문가가 배후로 중국 정부를 지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공격에 쓰인 BPF도어는 중국 해커 그룹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다.국내 최대 이동통신망이 뻥 뚫린 사실은 우리 생활 공간과 산업현장이 5세대 통신망과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용한 초연결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우려스럽다. 당장 우리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에 근거리 통신망으로 연결돼 있는 기기가 몇 개인지 보면 답이 나온다. 스마트 워치나 무선 이어폰 등 개인 기기와 TV 냉장고 등 생활가전, 자동차, 키오스크와 로봇,

    2025.05.20 17:32
  • [이슈프리즘] 무역 전쟁 시대…관(官)부터 전시체제로

    지난달 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백악관에서 21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발표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인상적이고 낯설다. 정 회장이 연단에 오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 스티브 스컬리스 미국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와 옆에 나란히 섰다. 한국도 대통령이 외국 기업 경영자에게 대통령실을 투자 발표 장소로 내주고 그 옆에 국회의장, 여당 원내대표가 도열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특정 기업에 “위대하다”는 찬사를 보내는 것을 우리 국민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미국에서 종종 연출되는 이런 장면은 기업인과 금융인 출신으로 가득한 미국 행정부의 색깔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노회하게 에둘러 가는 기존 정치인의 화법과 다르게 효율을 우선하고 실리를 좇아 직진하는 방식 말이다.각국의 고위 관료 사회를 보면 언제부터인가 산업계, 금융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정부 수장들부터 남달라졌다.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가 출신이고,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금융·테크 전문가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로스차일드에서, 지난해 중반까지 재임한 리시 수낵 전 영국 총리는 골드만삭스 등에서 업력을 쌓았다. 남미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도 기업인이나 금융전문가 출신 집권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신(新)중상주의 흐름이 거세지며 나타난 현상이다.공직사회의 벽도 허물어지고 있다. 미국 행정부만 해도 기업인, 금융인 출신이 즐비하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투자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이고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2025.04.03 17:26
  • [이슈프리즘] 60대가 최고 부자 세대로 떠오르는 이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부(富)의 이동’이 있었다. 60대가 50대를 제치고 처음으로 ‘최고 부자 세대’에 등극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0대 가구주의 평균 순자산은 5억2000만원이다. 50대는 5억1000만원, 40대는 4억5000만원, 30대는 2억5000만원 정도다.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60대의 평균 재산은 50대는 물론 40대보다도 적었다. 한국은 은퇴 기반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퇴직 후 재산이 감소세로 돌아서는 게 일반적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후 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느닷없이 60대의 재산이 한창 돈 벌 나이인 50대를 넘어 최고 부자 세대가 됐다. 도대체 60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보유 주택 수, 보유 주식 규모, 자동차 구매 건수 등 부의 척도를 나타내는 세부 수치를 보면 이유가 보인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부문에서 1위는 40대였다. 하지만 2010년 이후 50대가 추월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2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60대가 폭발적으로 재산을 늘리며 그 바통을 넘겨받고 있다. 지금 60대의 자산은 느닷없이 늘어난 게 아니다. 십수 년 전 최고 부자 세대인 ‘그 40대’가 50대를 지나 은퇴기인 60대에 접어들면서 생긴 현상이다.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86세대 얘기다.86세대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여러모로 남다르다. ‘단군 이래 가장 부자 세대’인 동시에 ‘가장 많은 인구수를 가진 세대’다. 굴곡진 1980~1990년대 몸을 던져 민주화를 끌어낸 주역이며, 한편으론 그 거대한 변화의 흐름

    2025.02.18 17:45
  • [데스크 칼럼] 韓 증시는 왜 '글로벌 꼴찌'가 됐나

    지난해 한국 증시 성적은 처참했다. 미국과 일본의 주요 지수가 사상 최고가 행진을 하는 동안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못난이 형제처럼 사이좋게 뒷걸음쳤다. 주요국 중 가장 부진했다. 기간을 늘려 보면 더 한숨이 나온다. 나스닥은 20년 전보다 9배 넘게 올랐다. S&P500은 5배, 닛케이225는 3.5배 뛰었다. 하지만 코스피는 2.7배, 코스닥은 1.8배 오르는 데 그쳤다.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증시의 성적표는 꽤 준수했다. 글로벌 주요 증시에 뒤처지지 않았다. 한국 증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2015년을 지나면서다. 그즈음 나스닥과 차이가 벌어졌고 2019년에는 S&P와도 멀어졌다. 2022년께부터는 닛케이에도 밀렸다. 결국 지난해 글로벌 꼴찌가 됐다. 도대체 지난 10년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10년간의 패착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요인이 어디 한두 가지겠냐마는, 그래도 지난 10년간 한국 증시가 유난히 뒤처진 가장 큰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 폭이 역사적으로 가장 컸던 시기가 2015년이다. 달리 말하면 그 이후 경상수지는 계속 내리막을 탔다는 얘기다. 한국 수출산업이 그즈음 일제히 꺾였다. 휴대폰과 액정표시장치(LCD), PC 등 우리 주력 전자제품을 비롯해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이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섰다. 수출산업이 중국에 추월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 성장률이 뒤지는 저성장 쇼크가 현실이 됐다. 사회 곳곳에서 구조개혁을 서둘려야 한다는 경고가 터져 나왔지만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19대 국회 후반기 여야는 역대급 정쟁에 여념이 없었고 경제 살리기 법안과 노동개혁 법안은 뒷전이 됐다.그해 일본과 미국의 설비 투

    2025.01.08 17:15
  • [데스크 칼럼] K증시의 복원력을 기대하며

    지난 3일, 잘 안 알려졌지만 국내 증시에선 깜짝 이벤트가 있었다. 외국인들이 주식 시장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증권주를 11년 만에 가장 많이 사들인 것이다. 이를 포함해 밸류업 대표주로 꼽히는 금융주를 대거 매수했다. 이날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모처럼 500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는데, 이 중 3000억원이 금융주였다. 10개월 만의 최대 규모다.갑자기 막장에 볕이 드는 게 이런 기분일까. 드디어 밸류업 정책이 빛을 보는 것일까. 수개월째 국내 주식을 지긋지긋하게 팔아치우던 외국인들이 마침내 돌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장이 끝나고 7시간 뒤 허망하게 사라졌다. 하필 그날 밤, 난데없는 ‘비상계엄’ 소식이 전 세계 투자 시장을 덮쳤다. 이후 외국인들은 증권주를 포함한 금융주를 연일 ‘분노의 패대기’치고 있다. 마치 다시는 한국을 쳐다보지도 않을 것처럼. 금융 선진국 다시 멀어졌지만‘코리아 디스카운트’. 이 지긋지긋한 단어를 없애보겠다고 우리 기업과 금융회사들은, 대통령과 장관들은 수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해외 국가를 방문하고 얼마나 많은 투자자를 만났나. 얼마나 많은 정책을 손봤던가. 그렇게 전진한 끝에 금융 선진국의 자리가 눈앞에 다가왔다. 올해 한국 채권 시장이 세계 3대 채권지수인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되는 역사적 성과도 거뒀다. 금융 선진국의 마지막 관문이라는 MSCI 선진국지수 편입도 시간문제인 듯했다.하지만 우리는 그 수십 년의 노력을 하룻밤에 날려버렸다. 포브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결국 옳았다”는 냉소를 보냈고, 로이터는 “왜 한국 증시가 유독 부진한지를 상기시켜줬다”고 했

    2024.12.10 17:40
  • [데스크 칼럼] '국장은 못믿겠다'는 투자자들

    장면 1. 올해 1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벽두부터 한국거래소로 향했다. 그 자리에서 금융투자소득세가 증시 발전을 가로막는다며 폐지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시장은 뜨겁게 반응했을까. 정반대였다. 코스피지수는 이후 11일간 9% 가까이 하락했다. 금투세가 정말 폐지될지를 놓고 시장은 반신반의했다. 개인들은 혹시 세금을 물게 될까 봐 펀드 환매에 나섰고, 증권사들은 수십억원을 들여 금투세 대응 시스템을 구축했다. 혼란은 10개월 넘게 이어지다가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금투세 폐지 결론을 내자 그제야 일단락됐다.장면 2. 지난 7월 25일. 두산그룹주들이 금융감독원발 악재에 일제히 추락했다. 두산그룹은 지배구조 개편 차원에서 계열사 합병을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이날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자 “금융당국이 합병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이후에도 두산그룹주들은 추가 정정 요구에 동반 하락하는 등 금감원 발표와 이복현 금감원장의 입에 따라 출렁였다. 그 학습 효과는 고려아연에서도 나타났다. 고려아연은 얼마 전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한 직후 주가가 추락했지만 다음 날부터 반등에 나섰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증자에 성공할지는) 금감원 얘기부터 들어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다. 줄줄이 밀리는 증시 부양책요즘 주식시장이 이렇다. 정부가 야심 차게 증시 부양책을 발표해도, 기업들이 경영 계획을 내놔도 투자자들은 ‘과연 될까?’ 하는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정부는 원내 과반 의석수를 차지한 야당의 허가를 구해야 하고, 기업은 금융당국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다. 그렇게 무산되거나

    2024.11.10 17:35
  • [데스크 칼럼] 회장님들의 이상한 '혈투'

    요즘 인수합병(M&A) 시장의 최대 화제는 단연 고려아연이다. 이 회사 경영권을 서로 갖겠다며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군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5조원 넘게 베팅했다. 거기에 MBK가 추가로 6000억원 정도를 레이즈(raise)했다. 국내 적대적 M&A 역사에 전례 없는 규모다.그런데 이 싸움을 가만 보면 뭔가 이상하다. 참가자 모두 얻는 것보다는 잃을 게 많아 보인다. 그런데도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 없이 폭주하고 있다.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은 고려아연 경영권을 뺏어 MBK파트너스에 넘겨주려고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이 얻는 이득은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자신의 고려아연 지분도 시장 가격보다 낮게 MBK에 넘겨주기로 했다. 달아오른 '세기의 분쟁'“고려아연의 견실한 성장을 위한 결정”이라는 변명은 궁색하다. MBK는 중후장대 기업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경험이 별로 없다. 장 회장이 MBK를 낙점한 진짜 이유는 ‘최 회장을 쓰러뜨릴 만한’ 실탄이 많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당하다.최 회장의 대응 방식도 쉽게 납득가지 않는다. 그는 베인캐피탈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사실상 경영권을 내려놨다.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고, 특정 사유가 생기면 베인캐피탈이 자기 지분을 가져다 팔 수 있도록 했다. 경영권 싸움에 이기기 위해 경영권을 내놓겠다니…. 게다가 배임, 시세 조종 논란까지 무릅쓰며 고금리로 돈을 끌어다가 베팅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 회장과 최 회장의 행보를 보면 의도는 동일하다. ‘내가 죽을지언정 너에게는 못 준다’는 것이다.MBK의 행보도 뒷말이 많다. MBK의 고려아연 공개매수가는 현재 주당 83만원이다. 몸값을 1

    2024.10.08 17:39
  • 인구 재앙을 기회로…이민·노동규제 풀어야 '人·財·業' 모인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 속 초강대국들의 시작은 한결같이 미약했다. 최초의 대제국인 고대 로마, 세계 최대 영토를 일궈낸 중세 몽골, 현재 최강국으로 군림하는 미국도 주변국에 치이는 약소국이었다. 이들 나라는 그 한계를 깨고 무서운 속도로 인구를 늘리며 영토를 확장했다. 50만 명 남짓이던 고대 로마의 인구는 200여 년 만에 6000만 명 수준으로 불어났다. 중세 몽골은 정복 전쟁 초기 인구가 100만 명에 못 미쳤지만 100년 만에 1억 명이 넘는 대국으로 변모했다. 건국 당시 300만 명 정도이던 근대 미국 인구는 200여 년 만에 3억 명으로 급증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100~200년 기간에 인구가 10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이들 국가가 초강국으로 변신할 수 있던 힘, 그리고 그 국가체계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던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적은 인구’였다. 이들 국가는 인구 열위를 타개할 방안을 개방성과 포용성에서 찾았다. 피지배층과 외지인에게 시민과 군인이 될 기회를 주고 고위 관료 자리도 열어줬다. 인종과 문화가 다른 민족의 관습과 제도를 과감히 차용했다. 문화와 종교, 사회 시스템의 이종 결합이 곳곳에서 이뤄지자 세계 각지에서 인재가 몰려들었다. 그 길을 따라 돈이 흘러들고 다양한 산업이 생겨났다. ‘팍스 로마나’ ‘팍스 몽골리카’ ‘팍스 아메리카나’는 인구 대국의 소산이 아니었다. 적은 생산 인구와 낮은 생산성을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의 인(人)과 재(財), 업(業)이 모이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꾼 데서 비롯했다. 인구 감소의 재앙이 시작됐다대한민국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를 내년에 맞는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

    2024.09.24 17:58
  • '초고령 국가→개방형 국가' 새 판 짜자

    대한민국의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끈 주역은 동시대 청년들이었다. 2000만 명이던 인구가 1960~1970년대 3000만 명을 넘는 동안 해방둥이들이 산업 역군으로 중화학공업 육성에 몸을 살랐다. 인구 4000만 명 시대인 1980~1990년대는 고등교육의 수혜를 본 베이비붐 세대가 ‘1000억달러 수출’ 시대(1995년)를 활짝 열었다. 5000만 명대에 도달한 2000년대에는 디지털로 무장한 2차 베이비부머와 밀레니얼 세대가 한국을 정보기술(IT) 강국의 반석에 올려놨다. 하지만 노동력의 양적 투입과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를 기반으로 한 성장 모델은 이제 소임을 다했다. 대한민국은 내년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이 처음으로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2050년에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고령자 비중 40%’ 국가가 된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26년 뒤 ‘가장 노쇠한 국가’로 전락한다. 그 전후로 생산성 악화와 세대 간 갈등, 경제적 불평등, 연금 고갈, 의료체계 붕괴가 연이어 우리 사회를 덮칠 것이다.그동안의 성공 경로와는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고령화에 따른 빈곤과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것이다. 산업 생태계 전반에 인공지능(AI), 로봇, 사물인터넷(loT) 등 디지털 전환이 뿌리내리도록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인재상도 재정립해야 한다. 보다 많은 여성이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고령자와 ‘그냥 쉬는’ 청년들이 생산 현장에서 뛸 수 있도록 고용·연금·교육 체계를 수술해야 한다.동시에 한국을 개방형 국가로 전환해 전 세계의 인재와 자본, 기업이 몰려들게 해야 한다. 시스템을 찔끔 손보는 것으로

    2024.09.24 17:54
  • [데스크 칼럼] 총리보다 기사에 많이 등장한 공직자

    한국 공직자 중 최고의 뉴스 메이커는 누굴까.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고위 공직자들의 기사 게재 건수를 따져봤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한국경제신문 지면 기사에 헤드라인으로 등장한 경우를 기준으로 했다. 1위는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이다. 100건이 넘었다.윤 대통령을 제외하면 으뜸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다. 기사 제목에 그의 이름이나 멘트가 등장한 건수가 36건으로, 한덕수 총리(14건)와 경제 컨트롤타워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25건)을 압도했다. 주요 경제 부처 장관들은 비빌 수준이 안됐다. 전 산업을 쥐고 흔들겠다는 발상건국 이후 금융감독기관의 수장이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전례가 있었을까.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증시 밸류업 등 금융 관련 이슈가 부각된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의 거침없는 언행이 한몫했을 것이다. 상법 개정, 배임제도 폐지, 상속세 개편 등 금융감독 업무와 상관이 없는 뜨거운 이슈마다 강하게 자기 목소리를 냈으니 말이다.이 원장은 정부 의사 결정을 합리적으로 도출하기 위해 공직자들이 개별 의견을 내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금감원과 금융위원회의 행보는 그 수위를 넘어섰다. 금융사 관리 감독을 넘어 한국 기업 전체에 대한 그립을 쥐겠다는 의지가 선명하다.금융당국이 과거에 그렇게 의욕을 앞세웠다가 주요 산업이 휘청인 적이 몇 번 있었다. 대표적 사례가 국제회계기준(IFRS)이다. 미국조차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며 도입을 미루는 사안을 금융위가 밀어붙였다. 2011년 IFRS가 시행되자 곳곳에서 혼란이 벌어졌다. 우리 산업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회계기준을 무리하게 적용한 탓에 조선사들은 부채 비

    2024.09.03 18:00
  • [데스크 칼럼] PEF 투자를 '선의'로 착각한 대가

    사모펀드(PEF·경영참여형 사모집합투자기구)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태동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기업 경영권을 사들인 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몸값을 높인 후 되파는 바이아웃 기법이 뿌리내렸다.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선 차익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련의 과정을 얼마나 빨리해내느냐가 관건이었다. 임직원과 소액주주, 소비자 등 기업의 이해당사자들은 외면당하기 일쑤였고 기업의 장기 성장성도 평가절하됐다.20년쯤 지난 1980년대 중반이 되자 단기차익 극대화에 대한 탐욕은 ‘광기’로 변했다. 1988년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RJR내비스코 인수 건이 그랬다. KKR은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RJR내비스코를 헐값에 사들인 뒤 기업을 잘게 잘라서 팔아 막대한 차익을 거뒀다. 이 사건을 다룬 책 <문 앞의 야만인들>은 PEF를 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야만인으로 묘사한다. PEF의 이상한 대박 사례들한국도 PEF가 처음 도입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어느덧 운용사가 1000곳에 달하고 전체 자산 규모는 150조원에 육박한다. 그동안 PEF의 성과는 눈부시다. 기업들의 성장을 위한 젖줄이 됐고, 구원투수 역할도 했다. 버거킹, 아웃백 등 죽어가는 기업을 되살린 사례도 부지기수다.하지만 광기 어린 ‘성인식’을 치른 미국처럼 스무 살을 맞은 한국 PEF에도 우려스러운 부작용이 발현되고 있다. 요즘 PEF의 대박 사례를 보면 그렇다. 투자한 기업이 잘나가서 덩달아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기업이 어려울수록 돈을 버는 이상한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것도 시장의 예상 수준을 훨씬 웃도는 이른바 ‘약탈적 수익’을 얻고 있다. 기업에 투자할 때 걸어놓은 각종 옵

    2024.08.04 17:42
  • [데스크 칼럼] 부자가 떠나는 나라, 들어오는 나라

    중국 부자들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처음 느낀 것은 2010년대 중후반이다. 중국 정부가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해 경제, 사회 부문 통제를 강화하면서다. 관변 언론들은 ‘공동부유’를 외쳤고, 사정당국은 빅테크 규제에 착수했다. 그러자 불안함을 느낀 중국 부자들이 움직였다. 해외로 자산을 빼돌리는 ‘차이나 런’이 본격화한 것이다.아시아 각국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중국 부자 모시기’ 경쟁을 벌였다. 싱가포르가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싱가포르 경제위원회(EBD)는 2019년 패밀리 오피스 개발팀(FODT)을 구성해 중국 부자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듬해엔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와 두바이가 움직였다. 패밀리 비즈니스에 세제 혜택을 주고 밀착 지원하는 가족 사업법을 마련했다. 세계는 '패밀리 오피스' 전쟁 중효과는 엄청났다. 2010년대 중반 50여 개 수준이던 싱가포르의 패밀리 오피스는 올해 1400개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싱가포르의 자산관리(WM) 규모는 1조달러(약 1399조원)나 불어났다. UAE의 가족 기업 설립 건수도 치솟았다. 중국에서 빠져나온 부자들은 싱가포르에 자산을 맡기고, 두바이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부동산을 산다.비단 중국뿐만이 아니다. 요즘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부(富)의 이동은 유례를 찾기 힘든 수준이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각국의 정치 리스크가 부각되자 더 나은 곳을 찾아 수백조원의 자금이 국경을 넘나든다. 글로벌 투자자문업계에선 올해 역대 최대인 13만~15만 명의 ‘슈퍼 리치’가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라고 한다. 싱가포르 UAE 호주 캐나다

    2024.07.02 17:38
  • [데스크 칼럼] 아무 기업이나 상장시킨 대가

    한국엔 세계 3대 성장주 전문 주식 시장이 있다. 역사를 따지면 미국 나스닥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한때는 아시아권 국가들이 그 거래 시스템을 배우겠다며 줄을 섰다. 그중엔 대만도 있었다. 살짝 듣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나. 2000년대 초반 코스닥시장이 정말 이랬다. 얼마나 잘나갔는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이곳으로 앞다퉈 옮기려 했고, 정부가 유가증권시장에 기업들을 묶어두려고 당근책을 내놓을 정도였다. 닷컴 붐을 타고 코스닥지수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이었다. 기술주 랠리는 '남의 집 잔치'지금 전 세계의 기술주 랠리는 언뜻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올 들어 펄펄 끓는 기술주 덕에 나스닥을 비롯한 14개국 증시가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쯤 되면 그 열기의 한복판에 당연히 코스닥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코스닥은 그냥 그저 그런 시장이 됐다. 과거 최고 기록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 채 20년 넘게 옆걸음만 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코스닥의 시가총액 비중은 나스닥의 10%에 육박했다. 지금은 1.5%도 안 된다. 도대체 이 시장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문제를 열거하면 한두 가지겠느냐마는 본질은 단순하다. 검증이 안 된 기업들을 갖다 놓고 개인들끼리 사고팔라는 식의 구조가 20년 넘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성장성 특례다. 2018년 도입된 이 제도는 증권사가 특정 기업에 대해 ‘성장성이 있다’고 건의하면 이를 토대로 상장시켜주는 것이다. 기술 수준이나 재무제표는 제대로 따지지 않는다. 그렇게 상장한 기업이 지금까지 20곳이다. 하지만 5년이 되도록 제대로 흑자를 내는 기업이 없다. 절반가량은 매년

    2024.06.03 00:20
  • [데스크 칼럼] 경영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

    아워홈이라는 회사가 있다. 40년간 단체급식을 업으로 해온 회사다. 매출 2조원, 임직원이 1만여 명에 달한다. 지금 이 회사는 갈림길에 서 있다. 자립할지, 아니면 다른 곳에 팔지를 놓고서다. 그런데 그 중차대한 결정권을 쥔 사람은 회사 경험이 전무한 ‘전업주부’다.시작은 자녀들의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됐다. 지분 39%를 가진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과 20%를 보유한 막내 여동생 구지은 부회장이 다투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지분 20%를 가진 장녀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바로 그 주부 말이다. 3년 전엔 이 장녀의 지지 덕에 여동생인 구 부회장이 경영권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 구 부회장이 신사업에 투자한다며 배당을 줄이자, 장녀는 회사를 매각하려는 오빠 편으로 돌아섰다. 그 장녀는 내친김에 사내이사로 참여했고, 여동생은 이사회에서 내쫓길 처지다. 주부와 아빠친구가 정한다?장녀의 결정은 주주로서 고유한 권리 행사다. 하지만 직원 가족과 협력업체를 합치면 수만 명의 생계가 걸린 회사의 운명을 경영 수업을 받아본 적 없고, 경험도 없는 이가 결정하는 상황을 임직원들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한미약품도 상황이 비슷하다. 한때 신약 수출 신화를 쓴 굴지의 제약사다. 51년간 갖은 풍파를 겪으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창업자가 작고하자 기업의 앞날을 두고 딸과 아들들이 맞붙었다. 다른 회사와 통합하느냐, 아니면 사실상 사모펀드에 매각하느냐를 놓고서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정작 승부의 향방을 결정지은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아빠 친구’다. 작고한 창업자의 절친이자 2대주주인 한 금형업체 오너가 아들들을 지지하면서 딸이 추진하던 통합작업은 무산됐다.

    2024.04.30 18:18
  • [데스크 칼럼] RSU에 덧씌워진 편견

    주가를 올리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 중 하나는 주가와 기업 오너·경영진의 보상을 연동하는 것이다. 주가에 따라 자신의 소득이 결정된다면 어느 경영진이 이를 방치할까.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대책을 도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소액주주를 위해 주가는 올라야 하지만, 오너와 경영진이 부를 축적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율 배반적인 인식이 깊게 박힌 탓이다. 스톡옵션에 대한 우리나라의 규제 강도가 유난히 센 것도, 과도한 상속세가 주가를 억누르는 요인이 되고 있음에도 제대로 손보지 못하는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이래저래 경영진이 주가를 신경 써야 할 동기가 유난히 적은 게 우리나라다. 실리콘밸리를 키운 '숨은 힘'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을 보는 시선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이야 사회적으로 장려하는 분위기지만 지난 정부 때만 해도 배당 확대는 악(惡)으로 간주됐다. 대기업이 배당을 늘리면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황제 배당’ ‘승계 악용 수단’ 등의 표현을 쓰며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배당소득세 감세 혜택을 없앴다. 심지어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기업 현금이 주주 이익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막아야 한다”며 배당소득세 인상을 주장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 정부가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하면서 맨 먼저 시행한 조치는 지원 대상 기업의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금지하는 것이었다.최근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RSU)을 놓고 제기되는 논란도 그런 왜곡된 프레임의 연장선에 있다. RSU는 성과를 내고 근속연수를 채운 임직원에게 주식을 나눠 주는 제도다. 대체로 5~10년가량 근속하면 그 이후 매년 조금씩 나눠준

    2024.03.31 18:08
  • [데스크 칼럼] 잡스가 말했다 "think big"

    2007년 6월 18일로 기억한다. 세계 증시가 유동성 파티를 즐기던 중이었다. 코스피지수는 이날 사상 처음 1800을 돌파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헤지펀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라는 상품에 투자했다가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전 세계가 동요하던 그 며칠 사이에 두 개의 제품이 시장에 연이어 나왔다. 하나는 엔비디아의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인 ‘쿠다’였고, 다른 하나는 애플의 ‘아이폰’이었다. 인공지능(AI)과 스마트폰 시대는 그렇게 금융위기와 함께 찾아왔다. 가보지 않은 길을 뚫은 기업들당시 엔비디아와 애플이 맞서야 할 상대는 정보기술(IT)업계의 ‘절대 지존’들이었다. 엔비디아가 몸담은 세계 반도체시장은 인텔 천하였다.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서 인텔 점유율이 80%에 달했다. 컴퓨터 제조사가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인텔 CPU가 장착됐다는 의미인 ‘인텔 인사이드’가 곧 브랜드였다. 그런 인텔에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만드는 엔비디아가 “CPU 시대를 끝내겠다”며 도전장을 냈다. 모두가 코웃음을 쳤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인텔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던 때였다.애플이 진출한 휴대폰 분야에선 노키아가 독주 중이었다. 글로벌 점유율이 2위 모토로라, 3위 삼성전자, 4위 소니에릭슨을 합친 것보다 높았다. 당시 애플도 빅테크 축에 속했지만, 노키아에 견줄 수준은 아니었다.가보지 않은 길은 험난했다. 엔비디아가 내놓은 쿠다는 수년간 ‘돈 먹는 하마’였다. 그 효용성이 주목받은 것은 6년이 지나서였다. 애플도 휴대폰의 강자 반열에

    2024.02.28 18:05
  • [데스크 칼럼] 코리아디스카운트의 본질

    이렇게 주가 띄우기에 열일 하는 정부가 있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국정 목표의 1순위가 ‘주가 부양’인 듯싶다. 대통령이 새해 첫 행보로 증시 개장식 참석을 택한 것 자체가 초유의 일이다. 여기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방침을 밝히더니 지난 17일에도 한국거래소를 찾아 고소득자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을 허용하고, 기업들에는 주가 부양 대책을 의무적으로 내놓으라고 했다. 지난해 말엔 공매도를 금지하고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기준도 높였다. 그러면서 “자본시장 규제를 혁파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수급으로 지수 올리겠다는 발상이쯤 되면 새해 코스피지수가 호응해서 달릴 만도 하다. 그런데 공교롭게 국내 증시는 연초부터 내리막을 걷고 있다. 중국·대만 등 중화권 증시만 빼면 세계 주요국 중 하락 폭이 가장 크다. 장기적으론 다를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정책으로 해소될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면 이미 십수 년 전 사라져야 했다. 수급을 조절해 증시를 올리겠다는 접근법부터 말이 안 된다. 국민연금만 봐도 답이 나온다. 10년 전 국민연금은 500조원이 채 안 됐다. 지금은 1000조원이 넘는다. 10년 전 100조원이던 퇴직연금은 300조원이 됐고, 생명보험사들의 자산도 100조원 넘게 늘었다. 10년 전 470만 명 남짓이던 개인투자자는 최근 1400만 명을 넘어섰다.이런데도 지난 10년간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고작 25%다. 미국과 일본 등의 증시가 2배 이상 치솟는 동안 말이다. 이런 상황에 부자들에게 연 4000만원짜리 ISA에 가입하라고 허용해주고, 공매도를 금지하고, 기업이 부양 대책을 내놓으면 주가가 오를까.과거 정부

    2024.01.28 18:05
  • [천자칼럼] 독재자들의 공갈

    “우리 군은 마침내 전 세계에 우뚝 섰다. 지난해 시작한 공세를 즐겁게 마무리할 준비가 됐다. 영국은 이제 붕괴할 것이다. 영웅들에게 감사한다.”아돌프 히틀러의 1941년 신년 연설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독일 국민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이 연설을 한 것은 독일이 영국 침공 계획인 ‘바다사자 작전’을 포기한 직후다. 프랑스를 함락하고 나서 야심 차게 영국을 공격했다가 저항에 밀려 물러서기로 한 것이다. 서유럽을 모두 집어삼키겠다는 히틀러의 야욕은 사실상 무산됐다. 그런데도 승리 소식을 의심한 독일 국민은 없었다. 히틀러는 4년 후 독일이 패망하기 직전까지도 “승리가 눈앞에 있다”는 허언을 멈추지 않았다.전쟁이나 갈등 상황에서 독재자들의 메시지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구심점이 흔들리거나 여론이 악화할수록 메시지는 단호해진다. 승리와 영광이 눈앞에 있다는 기대, 영웅에 대한 헌사도 반복된다. 국민이 이런 ‘공갈’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것은 외부 정보를 차단하고 언론을 통제한 상황에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 발언을 검증하거나 견제할 정치 시스템도 부재한다.올해 연초부터 북·중·러의 지도자들이 일제히 강경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 무력을 포함해 모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 남조선을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에 온건한 목소리를 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 총통 선거가 다가오자 “조국 통일은 역사적 필연”이라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차

    2024.01.01 17:34
  • [천자칼럼] 뜨거운 '워크 바이러스' 논쟁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친구가 울분을 터트리더군요. 딸이 학교에 다녀오더니 ‘조지 워싱턴은 건국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노예 소유주에 불과하다’고 했답니다. 요즘 학교가 ‘정치적 올바름’이니 하면서 이런 걸 가르칩니다.”얼마 전 한 방송에서 이렇게 세태를 한탄한 주인공은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다. 그가 요즘 자주 쓰는 대표적인 표현이 ‘워크(woke) 바이러스’다. 워크는 ‘정치적 올바름(PC)’을 추구하고 인종, 성 정체성, 문화 등의 다양성을 지지하는 이른바 ‘깨어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 깨시민주의가 공격적으로 변질하고 바이러스처럼 증식하면서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머스크는 이런 워크 바이러스를 막는 방역 전사를 자처하고 있다. 워크주의에 적극적인 기업인 디즈니와 전면전을 벌이는 게 대표적이다. 디즈니가 머스크가 최대주주인 SNS 엑스(X)의 광고를 중단하자, 테슬라는 자사 전기차의 디즈니플러스 앱을 삭제했다.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수백 명의 흑인 노예를 두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교육 현장에서 벌어진 ‘국부(國父) 논란’에도 참전했다. 시대적 맥락을 외면한 채 업적을 폄훼한다고 일갈한 것이다.반(反)워크주의 소신은 그의 비즈니스에도 반영된다. 챗GPT 등 인공지능(AI) 챗봇들이 편향된 답변을 내놓는다고 비판해온 머스크는 반워크 성향을 자신한 챗봇 ‘그록’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록마저 워크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평가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학습 정보에 스며든 PC주의의 그림자를 못 벗어났다는 평가다.워크주의 논쟁은 한국에서도 뜨겁다. 페미니즘, 환

    2023.12.24 17:35
  • [천자칼럼] 9회 말 투아웃 대타 한동훈

    안타를 치더라도 뚱뚱한 몸집 때문에 매번 1루에서 멈추던 타자가 있다. 한번은 마음잡고 휘두른 방망이에 공이 뻗어나가자 타자는 안 하던 짓을 한다. 1루를 돌아 2루로 향한 것. 하지만 그 순간 ‘선을 넘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타자는 허둥지둥 1루로 몸을 돌리다가 넘어졌고 상대 수비진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반전은 그다음이다. 1루수가 타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2루 쪽으로 가라고 엉덩이를 툭 쳤다. 홈런을 쳤다는 사실을 타자 본인만 몰랐던 것이다. 영화 ‘머니볼’에서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이 장면은 자신이 그어놓은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한방’의 의미를 얘기한다.실제로 꽤 잘나가는 타자들도 중요한 타석에서 자신에 대한 불신에 자주 지배된다고 한다. 9회 말 투아웃과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상대의 구종이 어떨지 고심하고, 내심 투수의 실투도 기대해본다.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에 몸이 굳는다. 포수 미트에 공이 박히고 주심의 힘찬 삼진 콜이 울려 퍼진 후에야 한심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중심 타선의 중압감은 그렇게 크다.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직을 수락하면서 현 상황을 야구에 빗대 주목받았다. “9회 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았어도, 스트라이크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 국민의힘은 꽤 큰 점수 차로 리드를 빼앗긴 상황이다. 안 그래도 팀은 연패로 패배 의식에 절어 있고, 선수단의 내홍에 팬들마저 등을 돌렸다.이런 상황에 한 전 장관이 나서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2023.12.22 17:50
  • [천자칼럼] 한·일 엔터 동맹

    “국내 영화산업이 홍콩 영화에 밀려 존립 위기에 처해 있는데, 막강한 자본을 갖춘 일본 영화까지 수입을 검토한다니 문화 종속이 우려된다.”1992년 7월 국내 일간지 기사의 한 대목이다. 이즈음 아시아 영화산업의 종주국은 단연 일본과 홍콩이었다. 각각 두 나라의 최대 배급사인 도호와 골든하베스트가 그 정점에 있었다. 영화 시작과 함께 나오는 이들의 로고는 아시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나타내는 심벌이었다. 골든하베스트 정문 앞에는 이 회사 영화를 들여오려는 한국 영화사가 줄을 섰다. 한국 정부가 일본 문화를 개방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도호에도 일본 영화를 선점하려는 한국 배급사와 대기업이 몰려들었다. 국내 영화산업은 곧 고사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30여 년 전 한국 문화산업의 열악한 상황을 곱씹다 보면, 최근 CJ ENM과 도호의 협약이 얼마나 상징적 사건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도호의 미국 법인이 CJ ENM의 미국 법인에 2900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라서는 내용의 계약이다. 한국과 일본의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손잡고 미국 시장을 공동 공략하는 모양새지만, 실제론 도호가 CJ ENM에 “수업료를 낼 테니 해외 진출 경험을 공유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도호의 콘텐츠를 리메이크하거나 새로 만드는 작업도 CJ ENM이 맡을 계획이다.도호는 1950년대부터 <7인의 사무라이> <카게무샤> 등 세계적 반열에 오른 작품을 배급하며 글로벌 유통망을 뚫어왔다. 지금도 미야자키 하야오, 신카이 마코토 등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들의 작품 배급을 전담한다. 이런 회사가 이제는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노하우를 배우고, 자사의 콘텐츠를 재가공해 세계에

    2023.12.12 17:57
  • [천자칼럼] 200억원짜리 장갑차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는 프랑스의 슈퍼카 브랜드인 부가티가 2019년 내놓은 ‘라 부아튀르 누아르’라는 모델이다. 기본 가격이 150억원이고, 옵션에 따라 200억원까지 치솟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가격대의 차량이 있다. 출력은 1000마력으로 누아르의 1500마력보다 낮다. 속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누아르는 최고 시속이 420㎞에 달하지만 이 차는 65㎞에 불과하다. 연비는 ‘기름 먹는 하마’ 수준인 L당 3㎞다.그런데도 어떻게 세계 최고가 차량과 가격이 같을까.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무기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고 탱크를 파괴하는 대전차 지뢰도 무력화한다. 심지어 날아오는 미사일도 탐지해 요격한다. 여기에 첨단 센서와 무인 작동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막강한 화력은 덤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내놓은 장갑차 ‘레드백’ 얘기다.한화는 최근 호주 군에 레드백 129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총 3조1500억원어치로, 대당 약 200억원 꼴이다. 항공기나 선박 등을 제외하고 지상의 ‘탈 것’으로만 한정하면 역대 최고가 수출품이다.수주 과정도 극적이다. 호주 정부가 처음 장갑차 도입 계획을 발표한 2018년 당시 경쟁사인 독일 라인메탈의 장갑차 링스는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데 비해 한화는 도면조차 없었다. 한화 직원들이 장난감만 한 모형을 들고 설명회에 참여하면서 창피함에 고개를 못 들었다고 한다. ‘뭐 이런 회사가 있나’ 싶던 호주 군 장성들은 불과 10개월 후 자신들의 요구 내용을 꼼꼼히 담은 장갑차가 눈앞에 나타나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술력도 놀랍지만 전 세계에

    2023.12.08 17:58
  • [천자칼럼] 中 알리·테무의 공습

    한국 기업이 개발한 완구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은 아이템은 ‘그립볼’일 것이다. 1991년 한 중소기업이 내놓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그해 세계 최다 판매 완구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그립볼이 뭐냐고? 벨크로(찍찍이)로 된 원형 판을 글러브처럼 손에 끼고, 캐치볼 하듯 공을 주고받는 놀이기구라고 하면 다들 알 것이다. 지금도 이 완구를 가지고 노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오리지널 제품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걸 만든 국내 기업은 2년 후 부도를 맞았고 제품 명칭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중국산 모조품이 수출 시장과 국내 시장을 잠식한 탓이다.30년 전 완구로 시작한 중국산의 국내 침공은 이제 전 산업을 집어삼킬 기세다. 주요 소비재에 이어 산업용 부품까지 장악하더니 대형마트, 홈쇼핑, 온라인 플랫폼 등 유통산업 전반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 선두에는 각각 중국 1, 2위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와 핀둬둬의 쇼핑 앱인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있다.수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소비자들이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중국산 제품을 직접 구매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저질 제품이 많았고 고객서비스(CS) 부문의 악명도 높았던 영향이다. 중간 유통 기업들이 검증된 제품을 골라 국내 쇼핑몰에 들여와 파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품질에서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붙자 중국 소비재 기업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자국 쇼핑 앱을 통해 각국 소비자를 직접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국내에서 중국 직구 앱의 인기는 열풍 수준이다. 알리의 국내 사용자는 지난 10월 기준 613만 명으로 1년 사이 두 배 넘게 늘었다. 지난 7월 국내에 상륙한 테무도 사

    2023.12.04 17:57
  • [고경봉 칼럼] 공항, 철도 따라 폭주하는 포퓰리즘

    아무리 봐도 희한하다. 광주광역시와 대구광역시를 잇는 철도를 만들겠다는 ‘달빛철도 특별법’ 말이다. 이 철도는 특별해서 건설할 때 남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공공사업을 할 때 경제성 등을 미리 검증하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시켜달란다. 그것도 모자라 철도 역사의 주변 개발 사업도 예타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건설 과정에서 지역 주민을 우선 참여시켜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담긴 44개 신규 노선 중 오로지 이 철도만 이렇게 대우해달라고 한다.제일 황당한 대목은 정부 계획인 6조원짜리 단선 일반 철도는 성에 안 차니, 11조3000억원을 들여 복선 고속철도를 지어야겠다는 것이다. 국내 철도 건설 역사상 유례없는 특혜 조항들로 버무려진 이 특별법이 지금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그것도 무려 사상 최다인 261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했다.달빛철도의 경제성이 얼마나 낮은지는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다. 동일 노선을 오가는 광주대구고속도로만 봐도 답이 나온다. 이 도로의 하루 통행량은 전국 고속도로 평균 통행량의 절반 이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광주 송정역에서 서대구역까지 2시간 정도면 간다. 기차를 타면 30~40분가량 단축되겠지만, 역까지 이동 시간 등을 감안하면 무의미한 차이다. 논란이 커지자 강기정 광주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그럼 고속철도 대신 일반 복선 철도로 짓자”고 반발짝 물러섰다. 그런데도 건설비용이 기존 정부안보다 45% 많은 8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이 법안이 포퓰리즘의 ‘끝판왕’인 이유는 단순히 경제성이 낮은 공공사업에 세금을 쏟아붓기 때문만이 아니다. 문제는 ‘

    2023.12.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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