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9회 말 투아웃 대타 한동훈
안타를 치더라도 뚱뚱한 몸집 때문에 매번 1루에서 멈추던 타자가 있다. 한번은 마음잡고 휘두른 방망이에 공이 뻗어나가자 타자는 안 하던 짓을 한다. 1루를 돌아 2루로 향한 것. 하지만 그 순간 ‘선을 넘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타자는 허둥지둥 1루로 몸을 돌리다가 넘어졌고 상대 수비진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반전은 그다음이다. 1루수가 타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2루 쪽으로 가라고 엉덩이를 툭 쳤다. 홈런을 쳤다는 사실을 타자 본인만 몰랐던 것이다. 영화 ‘머니볼’에서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이 장면은 자신이 그어놓은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한방’의 의미를 얘기한다.

실제로 꽤 잘나가는 타자들도 중요한 타석에서 자신에 대한 불신에 자주 지배된다고 한다. 9회 말 투아웃과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상대의 구종이 어떨지 고심하고, 내심 투수의 실투도 기대해본다.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에 몸이 굳는다. 포수 미트에 공이 박히고 주심의 힘찬 삼진 콜이 울려 퍼진 후에야 한심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중심 타선의 중압감은 그렇게 크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직을 수락하면서 현 상황을 야구에 빗대 주목받았다. “9회 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았어도, 스트라이크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 국민의힘은 꽤 큰 점수 차로 리드를 빼앗긴 상황이다. 안 그래도 팀은 연패로 패배 의식에 절어 있고, 선수단의 내홍에 팬들마저 등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 한 전 장관이 나서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실제 시합에선 이렇게 등장했다가 영웅이 아니라 원흉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총선 때도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와 몇몇 중진이 역전 타자를 자처했지만, 상대의 실책이나 요행을 바라는 소극적 플레이를 펼치다가 범타로 물러났다. 국민의 마음을 울리는 한방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실은 우직한 풀스윙에서 만들어진다. 타석에 선 한동훈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고경봉 논설위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