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RSU에 덧씌워진 편견
주가를 올리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 중 하나는 주가와 기업 오너·경영진의 보상을 연동하는 것이다. 주가에 따라 자신의 소득이 결정된다면 어느 경영진이 이를 방치할까.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대책을 도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소액주주를 위해 주가는 올라야 하지만, 오너와 경영진이 부를 축적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율 배반적인 인식이 깊게 박힌 탓이다. 스톡옵션에 대한 우리나라의 규제 강도가 유난히 센 것도, 과도한 상속세가 주가를 억누르는 요인이 되고 있음에도 제대로 손보지 못하는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이래저래 경영진이 주가를 신경 써야 할 동기가 유난히 적은 게 우리나라다.

실리콘밸리를 키운 '숨은 힘'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을 보는 시선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이야 사회적으로 장려하는 분위기지만 지난 정부 때만 해도 배당 확대는 악(惡)으로 간주됐다. 대기업이 배당을 늘리면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황제 배당’ ‘승계 악용 수단’ 등의 표현을 쓰며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배당소득세 감세 혜택을 없앴다. 심지어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기업 현금이 주주 이익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막아야 한다”며 배당소득세 인상을 주장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 정부가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하면서 맨 먼저 시행한 조치는 지원 대상 기업의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최근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RSU)을 놓고 제기되는 논란도 그런 왜곡된 프레임의 연장선에 있다. RSU는 성과를 내고 근속연수를 채운 임직원에게 주식을 나눠 주는 제도다. 대체로 5~10년가량 근속하면 그 이후 매년 조금씩 나눠준다.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인 스톡옵션보다 진화한 것으로, ‘회사 가치를 키울수록 더 보상해준다’는 주주가치 제고 방식을 가장 명징하게 구현한 제도다.

RSU는 2000년대 초반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도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들이 인재 유출을 막고 기업 경쟁력을 지탱한 원동력이 됐다. 미국에선 주요 상장사 3분의 2가, 일본에서도 벌써 3분의 1가량이 RSU를 도입했다고 한다. 요즘 미국과 일본이 펼치는 빅테크 랠리의 기저에는 이 RSU가 있다.

한국에서만 '부정 행위' 전락

그런데 우리나라는 몇몇 대기업이 RSU를 도입했다가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됐다.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졌고 급기야 정치권은 규제 법안을 발의했다. “같은 액수의 현금으로 단기성과급을 주는 것보다 투명하고 기업에도 효율적”이라는 전문가들의 반론은 묻혔다. 논란이 커지자 1년 전 이 제도를 도입했던 LS그룹은 지난주 접어버렸다. 뒤따라 RSU를 검토하던 기업들도 황급히 서랍 속에 집어넣는 분위기다.

RSU는 지금도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TSMC나 텐센트 같은 중화권 대표 기업들도 우리보다 빨리 RSU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세제 혜택을 주며 기업들의 RSU 도입을 독려한다. 사회주의 국가조차 기업 가치를 올리려 경영진의 ‘이기심’을 자극하는데, 우리는 ‘주가는 올라도 부의 축적은 안 된다’는 편견에서 한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