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붉은 金' 지켜야 미래 산업이 산다
원자번호 29번 구리. 은을 제외하고 전도성이 가장 높은 이 금속은 건축에서 우주선까지 제조업 전반에 사용되는 필수 원자재다. 전기차 배터리를 구성하는 음극 소재(동박)로 쓰이며 수요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말 그대로 안 들어가는 데 없는 산업용 기초소재로 경기 변동에 가격이 민감하게 움직이고 글로벌 경기에 선행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경제분석가 못지않게 경기순환 사이클을 잘 짚는 ‘닥터C(copper)’로 대접받는 이유다.

이런 구리 가격이 뛰고 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지난 22일 3개월물 구리 선물가격은 t당 8866.50달러에 마감했다. 구리 가격이 t당 8800달러대를 넘어선 건 작년 4월 이후 처음이다. 과연 닥터C는 경기 회복을 점치고 있는 걸까.

구리 스크랩 끌어모으는 中

경제계 일각에선 구리값 상승이 더 이상 경기 회복 조짐과 궤를 같이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자재 블랙홀인 중국 변수 때문이다. 경기 흐름과 상관없이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의 50%를 소비하는 중국 내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지난 몇 년간 원자재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대형 제련소를 잇달아 건설했다. 이들 제련소의 마진율 하락에 따른 감산이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진단이다.

‘붉은 금’으로도 불리는 구리는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 일부 금속은 재활용 과정에서 고유한 특성을 잃지만 구리는 예외다. 2차 구리라고 불리는 구리 스크랩(부스러기)의 효용 가치가 높은 까닭이다. 폐PC나 건물 철거 과정에서 수거되는 구리 스크랩은 가공 및 정제를 거쳐 온전한 구리로 재탄생한다. 중국 제련업계는 마진율을 높이기 위해 구리 정광보다 구리 스크랩 사용을 늘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보도(3월 22일자 A10면 참조)처럼 중국 수집상들이 국내 고물상을 돌며 웃돈을 얹어 현금으로 구리 스크랩을 싹쓸이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전국 조직을 갖추고 스크랩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중국계 대상(大商)이 등장했을 정도다. 이들이 중국으로 내보내는 구리 스크랩 물량은 연간 국내 유통량의 15%를 웃도는 10만t 수준이다.

"국부 무단 반출 막아야"

더 큰 문제는 탈세 등 국부 유출이다. 현금을 주고 사는 무자료 거래는 세금계산서를 끊지 않아 판매 가격의 10%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를 내지 않는다. 이들은 컨테이너 입구를 고철로 가린 뒤 뒤쪽에는 비싼 구리 스크랩을 싣는 이른바 ‘커튼 치기’를 하며 세관 검역도 피하고 있다.

구리 스크랩이 동나면서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건 국내 170여 개 구리 관련 제조업체다. 구리 같은 기초 산업 소재가 부족해지면 반도체 전기차 등 미래 산업에도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다. 요소수 대란으로 불린 중국발(發) 공급망 리스크에 온 나라가 휘청이던 게 불과 3년 전이다. 국내 자원이 없다고 자원 빈국은 아니다. 가까운 일본은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려 세계 구리 매장량 1위인 칠레에서 구리 광산 5곳을 확보했다. 해외 광산은 보유하지 못할망정 손에 쥔 국가 자산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구리 스크랩 시장의 무자료 거래 실태와 허술한 세관 검역 시스템을 파악하는 게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