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자동차 2차전지 등 주력 산업에서 올해 1~9월 중국산 의존도가 80%를 웃도는 소재가 20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은 중국 정부의 요소 수출 통제로 품귀 사태를 빚었던 요소수.    연합뉴스
반도체 자동차 2차전지 등 주력 산업에서 올해 1~9월 중국산 의존도가 80%를 웃도는 소재가 20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은 중국 정부의 요소 수출 통제로 품귀 사태를 빚었던 요소수. 연합뉴스
머리 염색약의 주성분인 화학제품 파라페닐렌디아민은 올해 1~9월에 2728만달러(약 370억원)어치를 중국에서 들여왔다. 전체 수입의 98.2%에 달하는 규모다. 웨이퍼(반도체 원판)에 빛으로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네온가스의 주원료인 네온도 중국산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전체 수입량의 82.7%를 중국에서 들여왔다. 중국에 의존하는 이들 소재가 한국 기업 공급망의 ‘약한 고리’가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중국 간 무역 마찰에 따라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수출 규제가 중국 의존도가 높은 소재에 집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선박·디스플레이 소재 틀어쥔 中…韓기업 "수출 통제하나" 전전긍긍
한국경제신문이 30일 한국은행의 ‘주요 제조업 생산 및 공급망지도’ 보고서와 관세청 품목분류체계(HS)를 분석한 결과 파라페닐렌디아민, 네온, 니켈·코발트·망간(NCM) 전구체,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전구체, 고무자석, STS냉연강판 일부, 알루미늄선 등 20개 품목은 중국에 80% 이상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소재는 국내 산업에 활용되는 핵심 원자재다. 전기 소재로 쓰는 알루미늄선(중국 수입 비중 99.7%)과 선박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쓰는 용접용 사각형 강관(98.1%) 등이다. 디스플레이 소재 가운데 디스플레이 패널 표면을 매끄럽게 깎을 때 쓰는 플루오르화수소산은 올해 1~9월 중국에서 5949만달러(약 800억원)어치를 수입했다. 중국 의존도가 95.9%에 달했다.

2차전지 소재 중에서도 중국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품목들이 있다. NCA 전구체(98.8%)와 NCM 전구체(96.9%)는 사실상 전량을 중국에서 들여왔다. 2차전지용 전해질(탄산에스테르 첨가제·96.4%) 등도 중국 의존도가 높았다. 전기차 모터의 소재로 사용하는 희토류자석도 중국산이 86.3%를 차지했다. 요가매트와 신발 밑창 제작에 쓰이는 화학원료 아조디카보안미드는 88.5%를 중국에서 들여왔다.

업계에서는 당장 중국이 이들 소재의 수출 규제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 규제 카드를 꺼내들 여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최악의 경우 2020년 터진 ‘와이어링 하니스(전선뭉치) 사태’와 2021년 겪은 ‘요소수 대란’ 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의 와이어링 하니스 공장이 문을 닫자 현대자동차는 한때 제네시스 전기차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2021년 11월에는 경유(디젤) 차량용 요소 수입이 끊기면서 ‘품절 대란’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공급망 대란은 공장이 문을 닫을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관련 품목 가격이 뜀박질하면서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급망 대란은 한국 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지난 22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간한 ‘지역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동맹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이른바 ‘프렌드쇼어링’ 상황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4%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이들 20개 품목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들의 공급망 다변화가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급망 대란을 겪은 일부 기업들은 일찌감치 공급망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차 감산을 불러온 와이어링 하니스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2020년 79.4%에서 매년 낮아져 올해 1~9월 62.3%로 떨어졌다. 자동차업계가 동남아시아 등 중국 이외 공급처를 확보한 덕분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