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망할 뻔한 태양의서커스, 브랜드의 힘이 살렸죠"
“태양의서커스는 40년에 걸쳐 쌓아온 쇼입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진행하던 44개의 쇼를 단 이틀 만에 모두 잃었다고 상상해보세요. 연 매출 10억달러는 0달러로 곤두박질쳤습니다. 5000여 명의 직원 중 95%를 해고했어요.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호텔에서 ‘태양의서커스 루치아’를 한국 무대에 올리기 위해 방한한 다니엘 라마르 태양의서커스 부회장(사진)을 만났다. 그는 2020년 코로나19 시기에 겪은 고통을 떠올렸다. 당시 태양의서커스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상주 공연을 포함한 전 세계 공연을 중단했다. 급기야 파산보호 신청까지 했다.

망해가던 서커스가 부활한 건 같은 해 11월. 시장에서 12억7500만달러라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언제 코로나19가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 부동산 등 손에 잡히는 자산이 없는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따낸 것이다. 그는 “투자자들이 브랜드에 투자했다”며 “태양의서커스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세계적이고 대체할 수 없는 브랜드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창의성이 곧 사업성으로 이어진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라마르 부회장은 “쇼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쇼”라며 “훌륭하고 창의적인 쇼가 있어야 사업이 가능하고, 수익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직의 창의성을 북돋는 비결로 ‘샌드박스’식 관리를 꼽았다. 그는 “공연 창작자들에게 주로 12개월을 주고 쇼를 구상하도록 한다”며 “2개월마다 진행 상황을 확인할 뿐 나머지는 전혀 터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구축된 독보적인 브랜드는 직원들의 충성심으로도 이어진다고 했다. 라마르 부회장은 “당신이 서커스 아티스트라면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서커스 무대에서 공연하고 싶지 않겠냐”며 “직원들은 코로나19로 해고됐을 때도 서커스에 복귀하기만을 기다리며 연습을 지속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일부 행정 직원을 제외하고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는 대부분 복귀 요청을 받고 바로 태양의서커스로 돌아왔다.

연구개발(R&D) 조직을 또 하나의 비결로 들었다. 태양의서커스는 공연 기업 중 이례적으로 R&D에 투자한다. 라마르 부회장은 “전 세계 패션, 건축, 영화 등 새로운 트렌드만 좇는 ‘트렌드 팀’이 있다”며 “매년 매출의 2%가량인 수백만달러를 R&D에 쓴다”고 했다. 드론이 막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하던 2015년 스위스 취리히공대 연구자들과 협력해 드론 10대를 공연에 도입한 게 대표적 사례다.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고, 하나의 쇼를 여러 경로로 수익화하는 게 그의 목표다. 라마르 부회장은 “코로나19 이전에 키즈용 IP를 보유한 V스타 엔터테인먼트 등 3개 기업을 인수했다”며 “IP를 늘려 아동, 마술 등 새로운 분야의 쇼를 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올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티켓을 팔며 기록적인 판매액을 경신 중”이라며 “한국에서 ‘루치아’ 티켓은 공연 개막 전에 10만 장 넘게 팔렸고, 올해 매출은 10억달러에 근접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최예린/사진=최혁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