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라임 사태 이후 변한 게 없다
라임 사기극은 신생 헤지펀드 운용사 홀로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대형 금융회사 임직원이 대거 가담하지 않았다면 희대의 폰지(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은 벌어질 수 없었다. 2019년 라임 사태로 드러난 화이트칼라의 집단 타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신한투자증권은 초비상이었다. 사내 연봉 1위를 자랑하던 임모 PBS본부장은 라임 무역금융펀드 사기를 공모한 것으로 드러나 징역 8년형을 받았다. 라임 투자자 돈 1억달러를 고스란히 날려 미스터리로 남은 캄보디아 투자 건도 전직 신한투자증권 증권맨들과 연관돼 있다. KB증권(델타원솔루션), 대신증권(반포WM센터), 우리은행(WM그룹) 등도 라임 사기에 연루되면서 막대한 수업료를 치러야 했다. 라임 사태만큼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사건도 없다. 하지만, 변한 건 없었다.

무너진 금융회사 내부통제

이번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는 내부통제 미비 성토대회 같았다. 금융회사 컴플라이언스 임원들의 릴레이 반성은 민망할 지경이었다. 사고 금액도 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코스닥시장 사모 전환사채(CB)와 관련해 메리츠증권 임직원이 집단적으로 사익을 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금융(IB)본부 임원부터 실무진까지 7명이 직무상 알게 된 정보로 회사 몰래 사모 CB에 투자해 10억원가량 수익을 거뒀다고 한다. 신한투자증권은 본사 직원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10억원대 자금을 횡령해 코인선물에 투자한 사실을 자체 적발했다.

고액자산가를 상대하는 프라이빗뱅커(PB)도 도마에 올랐다. 하나증권은 전모 클럽원 센터장(부사장)을 보직해임하고 대기발령 조치했다. 전 센터장은 여의도에서 제일 잘나가는 PB였다. 공격적으로 비상장 주식을 앞세워 영업했다가 사고가 터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증권에선 갤러리아WM지점 PB인 윤모 상무가 LB그룹 회장 일가의 자금을 도맡아 운용하다가 손실을 덮기 위해 서류를 조작하고 각종 횡령을 벌여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비리는 잘나가는 곳에서 싹튼다

부동산금융 분야는 폭풍전야다. BNK경남은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담당 직원의 2988억원 횡령 사건은 신호탄이라는 시각이 많다. 시행 과정에서 뒷돈을 챙기거나 지분을 받은 직원이 수두룩하다는 게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증권사마다 내부감사를 통한 비리 포착에 혈안이다. 하이투자증권 연봉 1위였던 김모 사장은 부동산 PF 관련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브로커리지 수익을 가족에게 몰아준 혐의도 받고 있다.

라임 사건 때도 마찬가지지만 내부통제가 작동하지 않는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회사에 큰돈을 벌어다 주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프라임브로커(PBS) 같은 신규 사업이나 이유 없이 비대해진 랩신탁 부서 등이 대표적 사례다. 돈을 잘 번다는 이유로 조직에서 경영진의 호가호위를 받는 일이 많다. 상식적인 우려도 시기와 질투로 오인되기 십상이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에서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최고경영자(CEO)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이익의 질(質)을 따져야 한다. 신뢰로 먹고사는 금융산업이야말로 균형 잡힌 장기 경영 능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