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150 vs 80달러…"양쪽 다 암울하다" [원자재 이슈탐구]
중국 실물 경기 주목하는 원자재 시장 <2·끝>
엇갈리는 국제 유가 전망
한국, 고유가 지속되면 경상수지 적자에 환율 급등
80달러 이하라면 글로벌 침체 현실화 의미


국제 유가가 수 개월째 급등세를 지속한 가운데 향후 원유 가격 전망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석유 업계는 유가가 계속 상승해 배럴당 150달러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수 년간의 자원 개발 투자 부족 때문에 '에너지 슈퍼 사이클'이 펼쳐질 것이란 얘기다. 반면 월스트리트 금융사의 상당수는 내년 배럴당 80달러 안팎의 유가에 베팅하고 있다. 중국발 부동산 위기와 미 중앙은행(Fed)의 고금리 정책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 또는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두 경우 모두 한국에는 대형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가가 150달러로 치솟을 경우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예상되며, 환율도 올라 스테그플레이션(저성장 고물가) 우려가 커질 전망이다. 반대로 원유 공급이 부족한데도 유가가 80달러 이하로 내려간다는 시나리오는 중국 주요 부동산 기업이 줄파산하거나, 미국 경기가 급락하는 등의 본격적인 침체 국면을 상정하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원유 저장시설   /사진=Reuters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원유 저장시설 /사진=Reuters

친환경 정책 과속, '원자재 슈퍼사이클' 초래

미국과 중국 등 에너지 소비대국의 수요는 강세다. 지난달 25일 미국 CNBC 등 외신들은 "중국의 9월 연휴 기간동안 해외여행 예약이 전년 같은 기간의 20배가 넘는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여행 등 기타 실물 경기 흐름이 예상보다 양호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유 공급 측면에선 미국을 중심으로 생산 차질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셰일가스 기업 콘티넨털리소스의 더그 로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정부가 탐사를 장려하는 추가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크리스티얀 말렉 JP모간 애널리스트 역시 보고서를 통해 "2025년에 하루 110만 배럴의 원유 공급 부족으로 유가가 120달러선까지 오르고 이후 150달러까지 오른다"고 예상했다. 유가 상승 전망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감산으로 원유 공급부족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13개국과 러시아 등 비(非) OPEC 10개 산유국이 원유 생산을 줄인 것은 최근 원유 가격 강세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사우디는 일일 최대 생산량이 1225만배럴에 달하지만 지난 8월 생산량은 일일 평균 898만배럴에 불과했고, 감산을 연말까지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미국 등 석유 소비국의 원유 재고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원유 재고는 전주보다 220만배럴 감소했고, 서부텍사스산(WTI)원유 인도 시점 재고는 1년여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② 중국 경제 연착륙한다...튼튼한 수요
중국 정부가 대규모 침체 없이 부동산 부문 구조조정에 성공할 것이란 희망도 커지고 있다. 중국은 현재까지 석유 제품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중국석유화공그룹(시노펙)은 중국의 하반기 항공유 소비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90%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벤 러콕 트라피구라 석유부문 공동대표는 이달초 싱가포르에서 열린 S&P글로벌 원자재인사이트 아시아태평양 행사에서 "중국은 자산시장이 좋지 않은 것과 별개로 원유 수요 측면에선 상황이 좋다"고 말했다. 베테랑 석유 컨설턴트에서 헤지펀드 매니저로 전업한 게리 로스 블랙골드 인베스터스 최고경영자(CEO) 역시 "4분기에는 소비 급증이 있을 것"이라며 "중국 내 정유공장 가동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원유 수입이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③ 친환경 과속...수년 간 유전 투자 부족
환경 에너지전환 정책도 유가 상승가 상승할 것이란 전망의 주요 근거다. OPEC의 감산 정도에 비해 심각한 원유 부족 현상이 나타난 것 역시 서방 석유 기업들이 그동안 너무 급격하게 석유 설비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컨설팅 업체 라이스타드 에너지에 따르면 2014년에 8870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글로벌 석유·가스 투자는 2015년부터 2022년 사이에는 연평균 5210억달러에 그쳤다. 유전 개발은 5~10년이 걸리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 영국과 스웨덴 등이 친환경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지만 석유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하기엔 불확실성이 높다. 캐나다의 석유업체 세노버스 에너지의 알렉스 푸르베 회장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하루 원유 생산량을 10만 배럴 늘리려면 수 십억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며 "의미 있는 투자를 하려 정부의 정책이 명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④ 석탄 공급 축소, LNG수급난
석유와 함께 화력 발전에 쓰이는 대체 연료들의 가격이 강세인 점도 유가 상승을 점치는 근거다. 석탄의 경우 지난 6월 t당 125달러까지 떨어졌던 가격이 지난주 160달러를 돌파했다. 상호 대체할 수 있는 관계인 발전 연료인 LNG가격이 상승세를 타고 있어 석탄을 미리 확보하려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석탄 광산에서 잇따른 사고가 발생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진 것도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겨울을 앞두고 LNG의 가격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네덜란드 TTF가스 선물은 전날 1㎿h(=3.41MMBTU) 당 44유로를 넘어서며 5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한 달 전 35유로에 비해 25%가량 급상승했다.

앞으로도 원유 탐사·시추 투자 안늘려
지난해 '돈 벼락'을 맞은 셰브런과 BP 등 석유 메이저 기업들은 신규 유전 개발 등 재투자 대신에 수익의 대부분을 배당하거나 자사주 매입에 썼다. 에너지 전환을 대세적 흐름으로 판단하고 재투자를 하지 않았다. 에너지 분석업체 엔베루스에 따르면 최대 셰일 시추업체 중 하나인 엑슨모빌은 미국 내 가동중인 시추 장비를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65기에서 올해 17기까지 줄였다. 팩트셋에 따르면 엑슨모빌은 상반기에 배당금과 주식 환매에는 약 161억달러를 지출한 반면 자본 투자는 108억달러에 불과했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친환경 에너지전환을 강조하며 자원 개발 인허가에 소극적이다. 지난 29일 발표된 미국의 '해양 석유 시추 5개년 계획'에 담긴 인허가 물량은 198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에릭 밀리토 미 국립해양산업협회 회장은 "석유를 수입에 의존하게 만들어 기름값을 끌어올리고 걸프 연안 일자리를 없애는 완전한 국가적인 실패"라고 비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국발 침체 우려, 미국 경기도 '살얼음판'

글로벌 경기 침체로 조만간 원유값이 급락할 것이란 반론도 적지 않다. 주식시장에선 지난달 원유 가격이 급등했음에도 석유 산업을 추종하는 S&P500에너지 하위 지수는 3.4% 상승에 그쳤다. 금융 투자업계에선 중장기적으로 석유업체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본다는 의미다. 이 같은 전망은 선물 가격에서도 드러난다. 미국 서부텍사스산(WTI)원유의 1개월 뒤 인도분 가격은 90달러를 넘나드는 반면, 내년 5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배럴당 81~82달러 선에서 머물고 있다.

① 천천히 그러나 차근차근 커지는 중국 경제 위기감
중국 경제가 연착륙에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은 유가 하락론의 주요 근거다.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은 2021년 채무불이행 이후 최근까지 회생을 추진해왔으나 점점 파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헝다그룹은 지난달 만기가 도래한 위안화 채권 원금과 이자 40억위안(약 7358억8000만원) 상환에 실패했고, 홍콩 증시에서 주식거래가 중단됐다. 쉬자오인 회장 등 경영진들은 연금되거나 구속된 상태다. 헝다그룹이 파산하면 금융권 위기도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룽국제신탁은 지난 8월 개인과 기업 등에 판매한 투자상품 상환에 실패했다. 자금을 모아 부동산 개발업체의 프로젝트에 투자했으나 되돌려 받지 못한 탓이다. 중국 신탁산업 규모는 2조9000억달러(약 3900조원)에 달하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투자된 상태다. 중룽도 지난해말 기준 신탁 펀드자산의 약 11%를 부동산 부문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② 미국이 먼저 쓰러질 수도...'골디락스'는 헛된 꿈
미국 경기가 크게 꺾이며 침체(Recession)에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유가 급등을 포함해 네가지 위험 요소를 지적했다. 고유가 충격 이외에 첫번째 위험은 자동자 노동조합 파업의 장기화, 둘째는 정부 셧다운 우려, 셋째는 이달부터 재개되는 연방 학자금 대출 상환이다. 컨설팅 기업 EY-파르테논의 그레고리 다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파업과 셧다운으로 인한 근로자의 임금 감소, 소비 지출 둔화 등은 개별적으로는 큰 위협이 아니지만 한 번에 이 같은 악재가 현실화하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도 여전하다. 이 같은 우려로 미 중앙은행(Fed)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장기간 고금리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도 내비쳤다. 경기가 결국은 꺾일 것이라고 예상한 BoA는 지난달 유럽 에너지주 비중 축소를 추천했다. 안드레아스 브루크너 Boa 유럽부문 전략가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수요 약세가 시작되면 유가가 현재 수준에서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많은 수출 원하는 일부 산유국
일부 산유국들이 유전 투자와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는 점도 변수다. 브라질 국영 페트로브라스는 석유 생산량을 올해 270만 배럴에서 2032년 320만 배럴로 18% 늘리기로 하고 시설 투자에 나섰다. 카를로스 트라바소스 페트로브라스의 최고 엔지니어링 기술 및 혁신 책임자인 로이터통신에 "부유식 생산 저장 및 하역 선박을 건조하기 위한 장비 확보 문제만 없었다면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인도 국영 오일 인디아는 인도 내 석유 탐사 지출을 올해 10억 달러에서 5년 내 100억 달러로 늘릴 계획이다.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은 아예 감산에도 동참하지 않고 제재가 느슨해진 틈을 타 생산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정유시설   /사진=Reuters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정유시설 /사진=Reuters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