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기업엔 불황이 없다'. 경기가 나쁜데도 명품소비는 좀처럼 줄지 않아 나오는 말입니다. 부자들은 불황에도 별 타격을 받지 않는단 얘기죠. 하지만 최근의 높은 인플레이션은 억대연봉 부자들의 소비패턴마저 바꾸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주 '클릭! 세계 산업 속으로'에서는 미국과 프랑스의 소비 현황을 알아봅니다.
억대 연봉자도 '천원숍' 간다…인플레가 바꾼 소비 패턴 [클릭! 세계 산업 속으로]
지난 1일 코트라 미국 뉴욕무역관이 발간한 '달러스토어가는 부자들…인플레가 바꾼 미 소비 패턴'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연 소득 10만 달러(약 1억3000만원)이상의 달러스토어(천원숍) 방문객 비율은 지난해 하반기에 비해 평균 4% 증가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달러스토어를 이용하겠다고 답한 억대연봉자도 늘고 있습니다. 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지난 6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 소득 10만 달러 이상 가구의 달러스토어 방문 의사는 지난해 6월에 비해 15% 높게 조사됐습니다.

이에 천원숍들은 더 많은 손님을 맞이하려고 분주한 모습입니다. 올해 달러제너럴은 전년 대비 22% 증가한 19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또 다른 달러스토어 기업인 달러트리도 전년보다 60% 더 늘린 2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온라인 매장의 기세에 쪼그라들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입니다. 천원숍들은 신규 매장을 열고, 특히 인플레이션 여파로 수요가 급증한 식품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냉장고와 냉동고에 투자를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이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는 탓입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웰스파고에서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는 마이클 리얼스크 어드바이스·플래닝 부문 총괄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을 패셔너블하게 여겼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돈을 벌고 바가지를 쓰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가 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닐 사운더스 글로벌데이터 애널리스트 역시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산층들도 압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달러스토어가 이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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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자들의 위축도 현실화 됐다는 분석입니다. 미국에서는 부자를 의미하는 '리치'와 침체를 의미하는 '리세션'을 조합한 신조어 '리치세션'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돕니다. 화이트칼라를 중심으로 대규모 감원 바람이 불고, 주식시장의 하락 등으로 순자산이 줄어들면서 이들이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 7월 실업수당 청구 건수 가운데 연 소득 12만5000달러 이상의 고소득층의 신청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70% 증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비단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닙니다.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에도 비슷한 상황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코트라 프랑스 파리무역관이 발간한 '구매력 약화로 급속히 변화하는 프랑스 소비패턴'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 내 초저가매장(하드디스카운트)의 시장점유율은 2019년 9%에서 작년 말 11.5%로 높아졌다고 합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프랑스 내 초저가매장 소매 매출액은 작년 180유로 규모에서 2027년엔 212억유로 규모로 급증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인들의 소비는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말 대비 지난 상반기 프랑스인들의 식품 구매량은 11.4% 감소했습니다. 동 기간 식료품 가격이 18.4% 상승한 게 주 원인입니다. 프랑수아 지롤프 프랑스 경제관측센터(OFCE)의 경제전문가 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1980년 이후 프랑스 통계청이 집계한 데이터에서 이 같은 소비감소는 전례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국내 업체들이 해외에 진출할 땐 이같은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김동그라미 코트라 뉴욕무역관은 "우리 기업은 이러한 소비 패턴 변화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제품의 시장 포지셔닝 설정과 적절한 잠재 바이어 발굴, 유통채널 설정 등에 참고할 수 있어야 한다"며 "특히 최근 달러스토어를 중심으로 식품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점은 우리 식품 업계도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할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