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 기자
'1대1 재건축'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일반분양이 없는 재건축 사업 방식을 말합니다. 원래는 분양수익으로 사업비를 충당해야 하지만 조합원들이 그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죠. 대신 외부인이 끼지 않는 그들만의 공고한 성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서울 용산의 래미안첼리투스(옛 렉스아파트 재건축)가 대표적이죠. 그런데 재개발에서도 1대1 사업 방식이 등장할 조짐입니다. 일반분양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조금 다르지만요.
서울 금싸라기 땅 기다렸는데 …"분양 물량 다 날아갔다" [집코노미 타임즈]
서울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과 아현역 사이엔 널찍하게 구릉지를 낀 재개발 예정지가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돼지슈퍼가 있는 아현동 699 일대죠. 아현1구역이란 이름으로 더욱 알려져 있습니다. 아직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역명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과거 아현1-1구역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추진한 바 있었기 때문에 아현1구역으로 통칭되고 있습니다. 연접한 구역들부터 아현뉴타운까지 사업이 대부분 완료됐기 때문에 도심 마지막 남은 노른자 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원래 마포구청이 준비하던 밑그림은 2500가구, 용적률 245% 규모의 새 아파트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공동으로 시행하는 공공재개발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새 아파트 규모를 조금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대 등 공공주택을 조금 더 짓는 대신 용적률이 283%로 상향되고 새 아파트도 3100가구를 지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죠.
서울 금싸라기 땅 기다렸는데 …"분양 물량 다 날아갔다" [집코노미 타임즈]
여기 있는 표는 SH가 주민설명회에서 제시한 개략적인 개발계획입니다. 독특한 건 일반분양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합원이 될 토지등소유자 2400명에게 분양할 아파트, 그리고 용적률 인센티브 등에 따라 의무로 지어야 하는 임대아파트 등을 더하면 일반에 분양할 아파트가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업비를 외부에서 충당하지 못하고 오로지 주민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그나마 주민들에게 배정되는 주택형들도 대부분 소형이라는 점입니다. 전용면적 84㎡는 찔끔뿐이죠. 전용 39㎡만 해도 1000가구가 넘습니다. 아파트 전체 규모의 3분의 1이죠.

왜 이렇게 됐을까요? 쉽게 예를 들자면 먹을 수 있는 케이크의 크기는 정해져 있는데 이를 먹을 사람은 많기 때문입니다. 케이크가 묵사발이 되도록 조각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지을 수 있는 아파트의 크기보다 주민들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최종적인 가구수를 늘릴 수 있는 공공재개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마포구청의 정비계획대로였다면 주민들에게 배정되는 아파트의 크기는 더 작아졌을 것입니다.
서울 금싸라기 땅 기다렸는데 …"분양 물량 다 날아갔다" [집코노미 타임즈]
그런데 여기서 진짜 쟁점은 주민들의 숫자입니다. 마포구청이 산정한 주민들의 숫자, 그러니까 토지등소유자의 수는 2237명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헤아린 토지등소유자의 수는 3100명입니다. 구역 안에 과소필지를 소유하고 있거나, 한 집을 여러 명이 소유했을 때의 공유자를 모두 더한 결과입니다.

바로 이 공유자 문제가 아현1구역의 아킬레스건입니다. 공유자를 모두 포함시킨다면 3100가구짜리 아파트를 짓는데 토지등소유자만 3100명이 되는 것이죠. 의무임대분을 마련하려면 주민들이 나눠가져야 하는 새 아파트의 크기를 더 줄여야 합니다. 케이크는 그대로 두고 조각을 늘려야 하니까요.
서울 금싸라기 땅 기다렸는데 …"분양 물량 다 날아갔다" [집코노미 타임즈]
공유자들 때문에 토지등소유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게 문제라면 원칙대로 그들에겐 새 아파트를 배정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공유자들을 배제하면 사업 진행 과정에서 필요한 동의율을 절대 확보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투표의 권한은 있기 때문이죠. 물건을 공유한 2~3명 중 한 사람만 반대하더라도 해당 물건 소유자는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인식됩니다. 당장의 사업 진행을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이들을 구제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죠.

물론 3100명의 토지등소유자가 모두 아파트 분양대상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준에 미달하는 면적의 땅, 그러니까 과소필지를 갖고 있다거나, 애초부터 상가로 분양받을 예정이라거나, 아니면 부부가 공동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경우 등을 제외하면 분양대상자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쉽게 청산시키기 어려운 공유자가 많은 문제, 넉넉하지 않은 용적률 문제를 풀어나가는 문제에선 난관이 예상됩니다. 주민 사이의 갈등이나 부족합 사업성으로 인한 사업 지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아현1구역 인근의 다른 재개발구역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시가 정비사업에 팔을 걷고 나서고 있는 만큼 이와 유사한 '강제 1대1 재개발'이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거나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았던 지역들을 눈여겨보고 있다면 이 같은 문제를 꼼꼼히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이재형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