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이상 공고했던 글로벌 시계 시장에 ‘열 살’ 애플워치가 균열을 내고 있다. 2014년 애플워치가 처음으로 공개된 이후 시계 브랜드의 양극화가 극명해진 모양새다. 대당 100만원가량의 애플워치가 매스티지(대중형 명품) 시장을 집중 공략하면서 그동안 중저가 시장을 장악했던 패션 시계들이 대거 밀려나고 있다. 시티즌, 세이코 등 유명 쿼츠 시계(배터리로 작동하는 시계) 브랜드까지 위협할 정도다.

흔들리는 스위스 시계산업

15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스마트 워치 출하량은 약 1억5000만 대다. 이 가운데 애플워치는 5000만 대 이상 팔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스위스 시계 수출 물량(1580만 대)보다 세 배 이상 많은 수치다.
'10살 애플워치'에 패션시계 산업 휘청
출시 당시만 해도 애플워치는 시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의견이 대다수였다.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 스와치그룹의 닉 하이에크 회장은 2014년 “우리는 스마트워치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2014년 2860만 대였던 스위스 시계 수출 물량은 8년 사이(2014~2022년) 44.7% 급감했다.

애플워치가 등장하기 전까지 시계 시장은 롤렉스류의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와 그보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패션으로 승부하는 매스티지 시계 브랜드로 양분돼 있었다. 애플워치의 위협에 흔들리는 브랜드는 패션시계류다. 애플워치는 합리적인 가격에 건강 상태 측정, 통화 및 메신저 지원 등 각종 기능까지 적용해 ‘기능성 특화 시계’로 자리 잡으면서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

쿼츠 시계도 하락 국면

세계 최대 패션 시계 업체인 파슬그룹만 해도 지난해 영업손실 147만달러를 내며 적자 전환했다. 2014년 35억달러에 달하던 매출도 지난해 16억달러로 급감했다. 파슬그룹은 디젤, 아디다스, DKNY, 마이클 코어스, 토리버치 등의 시계 생산 및 유통을 책임지고 있다.

고가 시계 브랜드들의 상황도 엇갈린다. 제조 과정에서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기계식 위주의 브랜드들이 살아남은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쿼츠 시계를 취급하는 브랜드들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기계식 시계 중 명품으로 분류되는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 파텍 필립, 오데마 피게 등의 브랜드는 명품 선호 현상과 가격 인상에 힘입어 실적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롤렉스는 지난해 전년 대비 19.7% 증가한 97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2014년만 해도 연매출이 51억달러 수준이었다. 까르띠에, 피아제 등을 보유한 리치몬트그룹(매출 19.0% 증가), 오메가, 브레게, 스와치 등을 보유한 스와치그룹(5.7% 증가) 또한 매출 증가세를 유지 중이다.

반면 쿼츠 시계를 주로 생산하는 시티즌은 매출이 2014년 30억달러에서 지난해 22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한 시계 수입업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시계를 구입하는 이유는 시계 본연의 기능을 기대하거나 사치재의 역할을 바라기 때문”이라며 “중저가 시계 브랜드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