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프리카' 대구와 함께 분지 지형…연일 35∼36도 불볕더위
농민들 새벽 비닐하우스 작업…시민, 계곡·하천으로 피신·영남루서 낮잠
13일째 특보…무더위에 이골 밀양시민도 두손 든 폭염
"다음 주가 입추(立秋)인데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돕니다.

"
입추를 이틀 앞둔 6일 "올여름 더위가 견딜 만하시냐"는 질문에 밀양 토박이 손정태(76) 밀양문화원장이 한 말이다.

그는 "긴 장마가 끝나나 했더니, 이젠 폭염 때문에 못 살겠다"며 "여름 날씨가 갈수록 더워지니 큰일이다"고 걱정했다.

더워도 일을 해야 하는 농민들에게도 올해 여름은 정말 가혹하다.

밀양시는 전국 시설고추(비닐하우스 등 시설에서 키운 고추) 재배면적, 생산량 1위 지자체다.

8월 들어 한낮 기온이 35도를 가뿐히 넘어서자 비닐하우스 안 여름고추 따기가 고역(苦役) 중에 고역이 됐다.

우진하 밀양무안 맛나향 고추작목회 사무국장은 "바깥 온도가 35도 언저리까지 오르면 하우스 안은 45도까지 치솟는다"고 말했다.

그는 "차광막을 설치하고 환기창을 열어놔도 아무 소용 없다.

5분만 움직이면 옷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고 전했다.

우 사무국장은 자연재해급 무더위에도 하우스 고추 수확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지금 고추를 따지 않으면 고추가 터져버리거나 빨갛게 익어 상품 가치가 하나도 없게 된다"며 "더워도 어쩌겠습니까.

참고 딸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더위를 조금이라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나마 덜 더운 새벽 5시를 전후로 일을 시작해 가급적 오전 중에 마치는 것뿐이다.

13일째 특보…무더위에 이골 밀양시민도 두손 든 폭염
경남 내륙 지자체 밀양시는 '대프리카'(한여름 무더운 대구 날씨를 아프리카에 빗대어 이르는 말)로 불리는 대구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찜통더위로 유명하다.

무더위에 이골이 난 밀양시 주민들도 올해 여름은 버티기 힘든 모양이다.

한낮이면 거리에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전국 거의 모든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밀양시 역시 폭염특보가 13일째다.

기상청은 올해 장마 종료를 공식 선언하기 하루 전 지난달 25일 오전 11시부터 밀양시에 폭염주의보, 7월 27일 오전 10시부터 폭염경보를 발효했다.

지난 5일 밀양시 낮 최고 기온은 37.8도까지 올랐다.

연일 35∼37도 사이 불볕더위가 밀양시를 엄습한다.

'대프리카' 대구와 밀양 모두 분지 지형이다.

천왕산, 재약산, 화악산, 종남산 등 '영남 알프스'(경남 밀양시·양산시, 울산시에 걸친 고산지역) 높이 1천m 안팎 산이 밀양 시가지를 감싼다.

분지 지형이 여름철 더운 공기를 밀양 시내에 쌓이게 해 기온을 올린다.

부산지방기상청 창원기상대는 "지형적 요인 등이 영향을 미치는지 밀양시가 다른 지자체보다 더 더운 것은 맞다"고 밝혔다.

13일째 특보…무더위에 이골 밀양시민도 두손 든 폭염
밀양시민들은 한여름을 어떻게 날까.

손정태 밀양문화원장은 "밀양시가 여름만 되면 가장 더운 곳으로 부각되는데,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더위를 식힐 하천, 계곡이 천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밀양시에는 시가지를 흐르는 밀양강부터 청도천, 동창천, 단장천 등 물줄기가 25개나 된다"며 "옛날부터 하천에 발을 담그고 천렵을 즐기며 무더위를 잊었고 지금도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밀양시 공무원 출신인 배재흥(61) 사진작가 역시, 가까운 하천, 계곡을 찾아 폭염을 이긴다고 했다.

그는 "밀양은 어디에 살든 주변에 수량이 많으면서 깨끗한 하천, 계곡이 많다"며 "여름이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천에 몰려 발 디딜 틈이 없다"고 말했다.

밀양 시민들은 한여름 0도 가까운 냉기가 바위틈에서 나오는 얼음골, 백운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만든 시례호박소(못), 42m 계곡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구만폭포, 평평한 바위 면적이 5천평에 이른다고 해서 '오천평반석' 계곡 등도 밀양만의 피서지로 추천했다.

13일째 특보…무더위에 이골 밀양시민도 두손 든 폭염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영남루도 무더위를 피하기 좋은 장소다.

밀양강이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은 영남루는 사방이 트여 있다.

강바람이 자주 불어 더위를 식히려는 밀양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누각 기둥이나 난간에 기대 이야기를 나누다 마룻바닥에 누워 한숨 잠을 청하면 이만한 피서가 더 없다.

밀양시는 장마 후 폭염 대응 대책이 행정 1순위가 됐다.

무더위쉼터, 그늘막 운영, 재난 문자서비스 발송 등 기본적인 폭염대책 외에 달궈진 도시를 식힐 갖가지 대책을 시행 중이다.

밀양시에 있는 버스정류장 17곳은 스마트 복합쉼터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폐쇄형인 이 쉼터는 냉난방기가 달려 있다.

밀양시는 버스를 기다리거나 길거리를 걷는 시민이 조금이라도 쉬어가도록 스마트 복합쉼터 17곳에 달린 에어컨을 오전 5시 30분부터 자정까지 하루에 거의 19시간 동안 켜 놓는다.

살수차는 수시로 도심 도로를 지나가면서 강한 햇볕으로 뜨거워진 아스팔트 열기를 식힌다.

시립도서관, 보건소, 문화체육회관 등에 있는 쿨링포그는 한낮 미세한 물안개를 뿜어내 도심 열을 식힌다.

13일째 특보…무더위에 이골 밀양시민도 두손 든 폭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