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겐하임의 힘은 숨은 거장 발굴…韓 미술에 기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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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미술관 이끄는 나오미 벡위스
3년 전 세계 미술계 주목받으며
첫번째 흑인 수석 큐레이터 올라
작년부터 관장 권한대행도 맡아
흑인·여성·아시아 작가들 주목
가을엔 한국 실험예술 전시 열어
LG와 글로벌 파트너십도 체결
3년 전 세계 미술계 주목받으며
첫번째 흑인 수석 큐레이터 올라
작년부터 관장 권한대행도 맡아
흑인·여성·아시아 작가들 주목
가을엔 한국 실험예술 전시 열어
LG와 글로벌 파트너십도 체결
미국 주요 미술관에 요 몇 년은 격변의 시기였다. 미국 사회를 뒤흔든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 미술계에도 영향을 미쳐서다. 주요 미술관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였던 ‘백인 남성’들의 작품은 유색인종과 여성, 아시아 작가의 작품에 하나씩 자리를 내줬다.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인 뉴욕 구겐하임은 이런 움직임의 선봉에 선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의 수장(관장대행)을 흑인 여성이 맡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20년 구겐하임의 첫 번째 흑인 수석큐레이터로 임명된 나오미 벡위스는 작년 이맘때 리처드 암스트롱 전 관장이 은퇴를 선언하자 그 짐을 물려받았다. 그런 그를 지난달 31일 뉴욕 구겐하임에 있는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런 구겐하임도 3년여 전 큰 위기를 겪었다. 직전 수석큐레이터인 낸시 스펙터가 객원 큐레이터로 영입한 흑인 여성을 차별대우한 의혹을 받아서다. 구겐하임의 결정은 ‘34년 식구’였던 스펙터를 내보내고 벡위스를 후임으로 임명하는 것이었다. 전 세계 미술계가 들썩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구겐하임에 흑인 여성시대가 열린 만큼 성별과 인종을 뛰어넘는 전시가 나올 것으로 기대돼서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벡위스는 그동안 구겐하임이 상대적으로 덜 다룬 남미·아시아 작품, 흑인 작품, 여성 작가 작품 등을 뉴요커에게 집중적으로 소개했고 그때마다 관람객으로부터 호평받았다. 올 하반기엔 한국 작가의 전시를 연다. 제목은 ‘오직 젊음: 한국의 실험적 예술(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전시로 한국에선 지난 5~7월에 열렸다. 6·25전쟁 직후 성년이 된 예술가들의 작품 90여 점을 전시한다.
벡위스 관장대행은 “백남준 정도를 빼면 미국에 알려진 한국 예술가는 많지 않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기원을 알게 되면 세계에 ‘한국 미술 팬’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5월 이 전시를 보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을 들렀던 그는 “(지금 한국 현대미술을 이끄는 사람들의) 1960년대 젊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평가했다.
구겐하임 특유의 ‘색다른 접근’은 현대미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누구나 다 아는 거장의 작품도 구겐하임 스타일로 터치한다. 유명 예술가의 어린 시절이나 이들만의 작품 철학을 정립하기 전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지금 전시하고 있는 ‘파리의 젊은 피카소’가 그렇다. 1900년 가을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피카소가 그곳에서 그린 작품들이다. 당시의 보헤미안 문화를 볼 수 있는 ‘물랭 드 라 갈레트’부터 ‘더 다이너스’까지 10점의 회화 작품 등이 걸려 있다. 벡위스 관장대행은 이런 전시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모든 예술가는 거장이 되기 전 서툰 시절이 있었다”며 “관람객은 그들이 거장으로 거듭나기까지 거친 험난한 여정도 궁금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겐하임은 앞으로 인공지능(AI), 증강·가상현실(AR·VR),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디지털과 결합한 예술 분야에서도 아티스트를 발굴할 계획이다. 지난해 LG와 손잡고 2027년까지 혁신적인 예술가를 지원하는 내용의 ‘LG·구겐하임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LG 구겐하임 어워드’를 신설해 매년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혁신적인 아티스트를 선정, 10만달러를 주고 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인 뉴욕 구겐하임은 이런 움직임의 선봉에 선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의 수장(관장대행)을 흑인 여성이 맡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20년 구겐하임의 첫 번째 흑인 수석큐레이터로 임명된 나오미 벡위스는 작년 이맘때 리처드 암스트롱 전 관장이 은퇴를 선언하자 그 짐을 물려받았다. 그런 그를 지난달 31일 뉴욕 구겐하임에 있는 집무실에서 만났다.
○미국 미술계를 검게 물들인 아이콘
뉴욕 구겐하임은 여느 도시에나 있는 그저 그런 미술관이 아니다. 한 해 110만 명이 찾는 뉴욕의 관광명소일 뿐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2019년)에 등재된 유서 깊은 장소다. 내부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바실리 칸딘스키 컬렉션을 포함해 파블로 피카소,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클로드 모네, 에드가르 드가 등 거장의 작품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이런 구겐하임도 3년여 전 큰 위기를 겪었다. 직전 수석큐레이터인 낸시 스펙터가 객원 큐레이터로 영입한 흑인 여성을 차별대우한 의혹을 받아서다. 구겐하임의 결정은 ‘34년 식구’였던 스펙터를 내보내고 벡위스를 후임으로 임명하는 것이었다. 전 세계 미술계가 들썩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구겐하임에 흑인 여성시대가 열린 만큼 성별과 인종을 뛰어넘는 전시가 나올 것으로 기대돼서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벡위스는 그동안 구겐하임이 상대적으로 덜 다룬 남미·아시아 작품, 흑인 작품, 여성 작가 작품 등을 뉴요커에게 집중적으로 소개했고 그때마다 관람객으로부터 호평받았다. 올 하반기엔 한국 작가의 전시를 연다. 제목은 ‘오직 젊음: 한국의 실험적 예술(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전시로 한국에선 지난 5~7월에 열렸다. 6·25전쟁 직후 성년이 된 예술가들의 작품 90여 점을 전시한다.
벡위스 관장대행은 “백남준 정도를 빼면 미국에 알려진 한국 예술가는 많지 않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기원을 알게 되면 세계에 ‘한국 미술 팬’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5월 이 전시를 보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을 들렀던 그는 “(지금 한국 현대미술을 이끄는 사람들의) 1960년대 젊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평가했다.
○구겐하임의 힘은 ‘거장 발굴’
벡위스 관장대행은 “(한국 현대미술가를 미국에 알리는 것처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거장을 발굴하는 게 구겐하임의 힘”이라고 했다. 2019년 스웨덴 여성 작가인 힐마 아프 클린트 회고전처럼 말이다. 그때만 해도 미국인에게 낯선 이름이었던 클린트는 구겐하임을 만나 단숨에 ‘스타’가 됐다. 뉴욕 구겐하임 개관 후 가장 많은 60만 명이 이 전시회를 들렀기 때문이다. 그의 전시 도록은 구겐하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그를 만난 날에도 구겐하임에선 ‘게고(Gego)’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현대미술의 장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여성 설치 예술가다.구겐하임 특유의 ‘색다른 접근’은 현대미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누구나 다 아는 거장의 작품도 구겐하임 스타일로 터치한다. 유명 예술가의 어린 시절이나 이들만의 작품 철학을 정립하기 전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지금 전시하고 있는 ‘파리의 젊은 피카소’가 그렇다. 1900년 가을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피카소가 그곳에서 그린 작품들이다. 당시의 보헤미안 문화를 볼 수 있는 ‘물랭 드 라 갈레트’부터 ‘더 다이너스’까지 10점의 회화 작품 등이 걸려 있다. 벡위스 관장대행은 이런 전시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모든 예술가는 거장이 되기 전 서툰 시절이 있었다”며 “관람객은 그들이 거장으로 거듭나기까지 거친 험난한 여정도 궁금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겐하임은 앞으로 인공지능(AI), 증강·가상현실(AR·VR),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디지털과 결합한 예술 분야에서도 아티스트를 발굴할 계획이다. 지난해 LG와 손잡고 2027년까지 혁신적인 예술가를 지원하는 내용의 ‘LG·구겐하임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LG 구겐하임 어워드’를 신설해 매년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혁신적인 아티스트를 선정, 10만달러를 주고 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