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AI시대, 공교육이 사는 법
교육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물과 뭍에서 두루 사는 포유류 수달은 교육하는 동물의 좋은 본보기다. 새끼들이 젖을 뗄 무렵, 어미 수달은 순번을 정해 새끼들을 물속으로 밀어 넣어 수영과 사냥을 가르친다. ‘교육의 때’를 감지하는 육감이야 본능이니 놀라울 게 없다. 그러나 새끼들이 딱 가라앉지 않을 만큼 물밑에서 떠받치는 모습은 경이로운 광경이다. 동물의 새끼 훈육은 포식자와 자연으로부터 제 몸을 보호할 최소한의 생존능력을 길러주기 위함이다. 둥지에서 멀어지는 공포와 숨 막히는 훈련의 고통이 탄탄한 근육으로, 예민한 육감으로 자라나 제 살길 찾기를 돕는다.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고순도 실전 교육이다.

우리가 교육이란 이름으로 벌이는 일들은 대개 쓸모없는 게 넘쳐 문제다. 고통은 오롯이 아이들의 몫이다. 지식과 기술을 과잉 주입당한 고통은 훗날 세상을 살아갈 지혜의 근육으로 재생되기도 힘들다. 당락을 위한 줄 세우기 한 번으로 시험은 용도 폐기된다. 우리 고등교육 졸업장이 글로벌 표준의 직업적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그래서다. 해방 이후 대학별 선발에서 본고사, 학력고사, 수능 등으로 입시제도가 수없이 얼굴을 바꿔왔지만 대한민국 교육은 되레 뒷걸음질치고 있다. 한창 달아오른 사교육 괴물, 킬러 문항과의 전쟁이 그 증좌다. 사교육비는 학령 인구가 반토막으로 쪼그라드는 상황에서도 지난 5년간 50% 가까이 불어났다.

한 해 26조원 규모로 덩치를 불린 사교육만이 문제가 아니다. 연간 공교육 예산(약 102조원)이 국방예산(약 57조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대졸자 취업률은 75%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하위(31위)권이다. 우리 기업들은 여전히 미완성 신입 직원을 훈육하느라 허리가 휜다. 함량 미달 공교육, 복지부동 교직 사회, 오락가락 정부 정책이 합작한 고비용 저효율 교육의 현주소다. 이웃 일본은 그사이 노벨상 수상자 29명을 배출했다.

한국은 좁은 우물이다. 그럼에도 박 터지는 내부 경쟁만 요란하다. 이른바 ‘SKY’와 ‘인(In)서울’이 지상과제임을 각인한 부모들이 건재하는 한, 사교육 시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국제무대에서 써먹을 생존형 교육을 키워 킬러 문항을 대체하자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인도나 싱가포르처럼 공교육 12년이면 최소한 영어 하나라도 확실하게 남겨주자는 것이다. 사교육비의 절대 비중인 연간 6조원 안팎을 퍼붓고도 한국인의 영어 말하기 실력은 꼴찌 수준(세계 132위, 2019년 기준)을 맴돌고 있다.

코딩도 마찬가지다. 입시전쟁이 끝나면 적어도 프로그램 개발 실력이라도 남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영어와 코딩, 수학에 두루 능한 인도 출신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구글)와 사티아 나델라(MS) 등이 좋은 표본이다. 인도인들은 이미 세계 정계와 재계까지 장악력을 넓히고 있다. 더 시급한 게 ‘질문하는 능력’이다. 영어도 코딩도, 정답 찾기도 인공지능(AI)이 대신해 줄 날이 머지않아서다. 이미 1인 1AI 시대가 열린 마당이다. 실리콘밸리의 AI 유니콘기업 스터빌리티 AI의 이마드 무스타크는 “조만간 스마트폰에 슈퍼 AI가 탑재돼 인터넷 없이 구동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들은 빠르게 이 흐름에 올라탈 기세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차별성에 주목한 것이다. 한 대기업 회장이 말했다. “정답 찾기형 입사시험을 바꾸겠다. 대신 기업에 질문하라고 할 것이다.”

이제 공교육은 무엇을 할 것인가. 고통스러운 질문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