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서울대 영상디자인 대학원 수업의 강의계획서 나눠 준 이후, 계획서와 강의안을 몇 번 업데이트했는지 모르겠다. 3월 챗GPT 출시 이후 생성형 프로그램들의 상용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공지능이 생산한 저작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우리가 이대로 역할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 몇 번씩 강조해왔지만, 그 현실을 제대로 체감한 몇 개월이었다.

2022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전

인공지능 개념이 정립된 것은 1955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하지만 슈퍼컴퓨터가 딥 러닝을 통해 진화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에는 정말 놀랄만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2011년 IBM의 왓슨이 미국의 제퍼디 퀴즈 쇼에서 켄 제닝스와 브래드 루터를 꺾고 우승했던 사건과 2016년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고 우승했던 사건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온 사건이 있었다.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여겨졌던 창작의 영역까지 너무 능숙하게 다루는 기계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다음 그림은 작년 말 콜로라도 주립 미술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아트 부분에서 1위를 차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Theatre D’opera Spatial)이다. 이 작품을 게임 기획자인 제임스 엘런이 미드저니(midjourny)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한 것임이 밝혀지자 몇몇은 이를 낙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에 휩싸인 앨런은 수상작을 포함한 3개의 작품을 80시간 동안 제작한 노력을 역설했다.

부디, 인공지능 스스로 창작한 예술이 인간을 위한 것이길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Theatre D’opera Spatial)


인공지능을 통해 제작한 작품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동시대 예술의 경향을 반추해 비교적 쉽게 ‘그렇다’ 로 귀결할 수 있다. 현대 예술은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 자체를 예술의 본질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뒤샹이 사인을 한 변기 ‘샘’이나, 조영남이 대작을 부탁한 ‘화투’그림도 예술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니 본 작품이 예술로 인정은 받은 것은 앨런의 변호를 위해 주장한 본인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 때문이었다. 이 재미있는 사건은 인상파화가들의 ‘낙선 화가 전람회’처럼 인류사에 인상적으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사건 이전부터 인공지능 예술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2018년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화가’로 이야기되는 예술집단 ‘오비어스(obvious)’의 ‘에드몽 드 벨라미의 초상(Portrait of Edmond de Belamy)’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 2500달러에 거래된 것만 봐도 그러하다. 이제 미국에서는 인공지능 작품에 대한 일부 저작권이 법안으로 인정된 상태이다.

부디, 인공지능 스스로 창작한 예술이 인간을 위한 것이길
인공지능이 제작한 에드몽 드 벨라미의 초상(Portrait of Edmond de Belamy)

인공지능이 가진 기술력

현재 인공지능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미드저니 외에도 엔비디아(Nvidia)의 고우간(GauGAN), 오픈에이아이(Open ai)의 달리(Dall-e 2), 구글(Google)의 이메진 (Imagen)등의 서비스는 몇 개의 지시어(Prompt)나 이미지를 입력하면 이에 맞는 이미지를 생성해준다. 동영상 제작도 가능하다. 2022년 8월 출시된 메타(Mate)의 ‘메이크어비디오 (Make-A-Video)’, 2023년 2월 런웨이' (Runway)’ 젠 (Gen-1)등은 동영상 생성형 도구이다.

부디, 인공지능 스스로 창작한 예술이 인간을 위한 것이길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영화들의 스틸 컷
웨이마크(waymark)사는 ‘더 프로스트’ (The Frost)라는 ‘달리 2’를 통해 12분짜리 영화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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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마크 사가 달리 2로 제작한 인공지능 영화 더 프로스트의 장면

2023 대규모 언어모델의 상용화

이 판세에 더해 눈 여겨 봐야 하는 것이 바로 대규모 언어 모델 (large language model)이다. 3월부터 명령이나 질문에 따라 텍스트를 생성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작성할 수 있는 대규모 언어 모델이 연이어 상용화되었다. 2023년 3월 14일 오픈에이아이 (Open AI)에서 챗GPT4가 출시되었고, 3월 21일 구글 (google)에서 바드 (Bard), 5월 3일 마이크로소프트 (Microsoft)에서는 빙 (Bing), 6월 15일 딥 마인드(Deep Mind)에서 쥬래식-1 점보(Jurassic-1 Jumbo)가 출시되었다. 서점가는 대화형 검색 엔진에 관한 책으로 뒤덮였다. 이들은 검색의 결과를 글로 정리해주고, 코딩을 해주고, 기사, 법조문도 작성해준다. 시, 소설, 광고 카피도 쓸 줄 안다. 이뿐만 아닐 것이다. 그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2023 지금, 여기 인공지능 제작물이 세상에 뒤섞이다.

사람들은 대규모 언어 모델, 이미지 인식, 음성 합성 등 몇 가지 인공지능 기술이 결합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기계의 창작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작년에 이미 미국의 한 남성이 챗GPT와 미드저니를 이용해 2일만에 ‘앨리스와 스파클 (Alice and Sparkle)’이라는 동화책을 만들었다고 트위터에 업로드한 게시물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올해부터는 전문분야에서도 그 활용이 두드러졌다. 2023년 2월과 3월에는 런웨이(Runway)사는 뉴욕에서 인공지능 영화제를 개최했다. 또 3월에 미드저니로 제작된 일본 만화 '사이버 펑크 모모타로'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같은 달에 어린이과학동아 편집부에서 인공지능으로 이야기 쓰고, 이에 맞춰 작화를 한 만화를 기재했다. 2023년 4월에는 세종시립도서관도 인공지능으로 만든 동화책을 공개했다.
부디, 인공지능 스스로 창작한 예술이 인간을 위한 것이길
챗 GPT와 미드저니로 2일만에 제작한 동화책

이제 생성형 인공지능은 문화예술계의 많은 사람들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가 공개한 WIT 스튜디오의 3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개와 소년'의 배경을 인공지능이 담당해서 그렸는데, 제작 이전에 넷플릭스가 애니메이션 관련 직원을 다수 해고한 바 있어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에서도 인공지능의 인력 대체를 피해가기 어려우리라 예상된다.
부디, 인공지능 스스로 창작한 예술이 인간을 위한 것이길
인공지능이 그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개와 소년의 배경 작화와
인공지능이 표기된 개와 소년의 엔딩 트레딧에 표기된 AI

가짜의 문제

생성형 인공지능의 도입에는 그보다 심각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는 원작과 인공지능 그림을 가려 맞추는 게임이 유행 중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1차적 데이터의 저작권과 인공지능 작품의 저작권이 충돌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인공지능은 학습 학습데이터로서 사용된 원작자의 표현을 무분별하게 사용한 후 이에 그럴싸한 의미도 가져다 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표절의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렇게 제작되는 인공지능 작품에 권리를 인정할 수는 없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의 문제도 있다. 다음의 이미지들은 ‘딥 페이크 (Deep Fake)’ 기술을 사용해 만든 이미지들이다.
부디, 인공지능 스스로 창작한 예술이 인간을 위한 것이길
딥페이크 기술을 사용한 가짜 모건 프리먼, Cinecom.net 이 소개한 무료 툴

이 기술을 활용하면 다른 이의 얼굴과 목소리를 합성해서 위조된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이 기술은 실제 범죄로 연결되기도 한다. 최근 중국에서는 인터넷 상에 올라와 있는 사진과 정보를 이용해서 지인이나 가족을 흉내 낸 영상 보이스 피싱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또 딥 페이크 콘텐츠의 대부분이 포르노 등의 음란물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악의적 콘텐츠들이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들이 만들어내는 여러 콘텐츠들 (UGC)들과 함께 유튜브(YouTube)나 비메오(Vimeo), 인스타그램(Instagram), 페이스북(Facebook) 같은 사회적연결망(SNS)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통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술생산시대의 인공지능 예술

지속적 발전을 거듭한다면 인공지능은 인간 예술가를 배제한체 자율적으로 예술 작품을 생산할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작업 과정에 개입된 인간의 의도는 정말 ‘인공지능’ 이라는 알고리즘 자체에 남겨질 것이다. 알고리즘의 독립적 창작에도 ‘인성’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필자는 지금 구글 바드에게 “인공지능이 스스로 예술을 창작할 수 있다고 믿는가?” 라고 물었다. 답은 “네, 인공지능이 스스로 예술을 창작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라고 돌아왔다.

그렇다면 그 창작의 ‘예술가’는 누가되는 것일까? 과연 알고리즘이 어떤 ‘기의’와 ‘기표’들을 연결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게 될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창작자가 사라진 체 감상자만이 남은 예술이 예술일 수 있을까? 기술복제시대에 예술에서 나아가 기술창작시대의 예술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부디, 인공지능에 의한, 인공지능의 예술이, 사람을 위한 것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