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통 벗고 선풍기 틀어도 못 버텨…그늘 찾아 공원으로"
서울 사흘째 폭염주의보…시민들은 무더위 피해 실내로
에어컨 꿈도 못꾸는 쪽방촌…공원 산들바람에 "시원하다"
사건팀 = 장마가 잠시 쉬어가는 틈을 놓칠세라 여지없이 찾아온 무더위에 시민들은 저마다 열기를 식힐 묘안을 찾으며 휴일을 보냈다.

폭염주의보 사흘째인 2일 오후 서울의 수은주는 30도 안팎까지 올랐다.

장마로 습해진 공기가 불쾌지수를 더 높였다.

기상청은 이날 서울의 일평균 습도가 80%를 기록해 체감온도는 33.3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 적막한 쪽방촌엔 선풍기 도는 소리만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은 서있기만 해도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릴 만큼 오전부터 무더웠다.

고시원이 모여있는 골목 안은 오가는 사람 없이 고요했다.

매트리스 하나 겨우 들어갈 만큼 비좁은 고시원은 출입문이 열린 채 에어컨 대신 선풍기만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고시원 공용 주방에서 마주친 한 주민은 웃통을 벗은 채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연신 몸을 닦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는 "선풍기로도 못 버틸 것 같으면 아예 밖으로 나가버린다.

빨리 여름이 지나가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에어컨 꿈도 못꾸는 쪽방촌…공원 산들바람에 "시원하다"
인근 공원에는 찜통 같은 쪽방을 벗어나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려는 주민 10여명이 모여 있었다.

의자에 누워 낮잠을 자는가 하면 윗옷을 벗어제낀 이들도 눈에 띄었다.

주민 대부분이 행정복지센터에서 받은 생수병을 하나씩 들고 무더위를 달랬다.

그늘 아래 잠시 불어온 산들바람에 "시원하다"며 양팔을 벌리기도 했다.

윤영식(70)씨는 "방이 너무 더우니까 바깥으로 나왔다.

혼자 방에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이곳 공원에서 열리는 야외예배에 참석했다는 김모(59)씨는 "너무 더워서 아스팔트 녹는 냄새가 나더라. 연로하신 분들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드실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에어컨이 있는 곳은 예외 없이 사람들이 모였다.

동자동 언덕길에 있는 교회에 예배를 보러 왔다는 백모(86)씨는 교회에서 나눠준 냉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백씨는 "나이 90을 바라보지만 운동 삼아 교회에 나왔다.

방에 혼자 있는 것보다 상쾌하다"고 말했다.

에어컨 꿈도 못꾸는 쪽방촌…공원 산들바람에 "시원하다"
◇ 테라스 포기하고 실내로…한강 대신 영화관
서울 광진구 한 중학교에서 축구 동호회 활동을 한 고모(30)씨는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숨쉬기가 힘들었다"며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러서 평소보다 물을 몇 배는 마시며 뛴 것 같다"고 말했다.

21개월 아기를 키우는 김모(29)씨는 "아기가 밖에 나가서 놀려고만 한다.

근처 공원 같은 곳에 가면 뙤약볕이 내리쬐는데 쉬지 않고 뛰어다니니 걱정도 되고 따라다니며 놀아주기도 힘들다"고 호소했다.

직장인 김모(34)씨는 "너무 더워서 새벽 3시에야 잠이 들었다"며 "전기요금이 걱정되지만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켜고 잤다"고 말했다.

그는 "헬스장까지 걸어가는 20분이 너무 힘들 것 같아 운동도 빠질까 생각 중"이라며 "불쾌지수가 높아 싸울까 봐 한강 대신 영화관에서 데이트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에어컨 꿈도 못꾸는 쪽방촌…공원 산들바람에 "시원하다"
이날 오전 에어컨이 없는 성당에 다녀온 박모(62)씨는 "아직 27도인데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났다.

사람들이 모두 부채질을 했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너나없이 실내로 몰렸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박모(37)씨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테라스가 있는 식당에서 만나려 했는데 너무 더워 실내로 바꿨다"며 "에어컨이 없으면 잠시도 못 견딜 것 같다"고 말했다.

성동구에 사는 대학생 김지하(25)씨는 "올해는 에어컨을 청소할 새도 없이 더워져서 그냥 에어컨을 켜기 시작했다"며 "오늘은 최대한 실내에 있을까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