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과 공화당이 27일(현지시간) 부채한도를 올리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함에 따라 미국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피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증시 폭락이나 대규모 경기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사라지게 됐다.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정부 지출 삭감

미 정부 부채한도는 연방정부가 빌려 쓸 수 있는 돈을 미 의회가 제한하는 제도다. 1917년 1차 세계대전 당시 방만한 재정 운용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미 정부는 부채한도에 도달하면 더 이상 국채를 발행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연방정부 공무원들의 월급과 사회보장급여를 지급하지 못하고 국채 원리금을 못 갚는다.

美 디폴트發 증시 폭락·경기 침체 우려 걷혔다…월가, 일단 안도
이런 디폴트 상황을 막기 위해 미국은 계속 부채한도를 올려왔다. 2005년 8조2000억달러(약 1089조원)였던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2020년 20조달러 이상으로 두 배 넘게 증액했다. 2021년 12월 31조4000억달러로 부채한도를 올렸지만 올 1월 그 한도를 모두 소진했다. 이후 미 재무부는 보유 현금 등을 돌려 막는 특별조치를 취하며 버텨왔으나 다음달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미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부채한도 상향 조정에 반대하자 이달 들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직접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과 협상에 나섰다. 양측은 부채한도를 올리는 대신 정부 지출을 줄이기로 가닥을 잡았지만 각론에서 갈등을 빚었다. 막판까지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매카시 의장이 전화 담판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로이터통신은 2024회계연도에 비(非)국방 분야의 재량 지출을 2023년 수준으로 제한하고 2025년에 1% 증액하기로 합의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난항을 겪던 식량 보조 프로그램(푸드스탬프) 등의 복지 수혜자 근로 요건도 공화당 요구대로 강화하기로 했다.

美 신용등급 하락 피할 듯

미 정부가 디폴트를 피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투자자들도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는 미국이 디폴트를 선언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시작된 대침체와 맞먹는 경제적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디폴트가 일어나면 미국인 800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증시 시가총액 중 45%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디폴트로 인해 70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가계자산의 10조달러가 증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은 신용등급 강등 위기에서도 벗어나게 됐다. 피치는 지난 24일 미국의 디폴트 위험이 커지자 국가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지정했다. 피치는 “미국이 부채한도 합의에 실패한다면 미국의 전반적인 운영 및 채무 의무 준수 의지에 대한 부정적 신호가 될 것”이라며 “이는 미국의 AAA등급과 맞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2011년 미국이 부채한도 협상으로 진통을 겪자 S&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해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줬다.

백악관과 공화당이 부채한도 상향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의 강경파들이 원안대로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뉴욕타임스는 “부채한도 상향 대가로 큰 폭의 예산 삭감을 요구해온 공화당 우파 의원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전망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에 너무 양보했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