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손 일본 히로오카 사무소, 내년 한국 출시 앞두고 페이퍼랩 소개
[르포] 5초에 한 장씩 종이가 뚝딱…폐지의 화려한 재탄생
사용한 종이를 버리지 않고 기계에 넣으면 금세 새로운 종이가 만들어진다.

지난 24일 일본 나가노현 시오지리시에 자리한 세이코엡손(이하 엡손)의 히로오카 사무소에서 만난 페이퍼랩의 1세대 모델 'A-8000'은 약 5초에 한 장씩 재활용된 종이를 생산하고 있었다.

히로오카 사무소는 엡손의 '기둥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잉크젯 프린터와 프린트 헤드를 생산하는 곳이다.

먼저 일반 가정에서 쓰는 프린터의 급지 트레이와 비슷하게 생긴 곳에 A4 혹은 A3 크기의 폐지를 가지런히 넣으면 가로 2.85m X 세로 1.43m X 높이 2.01m, 무게 1천750㎏의 페이퍼랩 내부에서 파쇄 작업이 시작된다.

평균 65db 이하의 소음 속에서 폐지의 섬유는 잘게 잘게 분리돼 하얀색 솜뭉치처럼 바뀐다.

글자와 그림에 사용된 착색제는 파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분리돼 페이퍼랩 내 전용 용기에 수거된다.

[르포] 5초에 한 장씩 종이가 뚝딱…폐지의 화려한 재탄생
이 과정에서 물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는 엡손 고유의 '건식 섬유 기술'로, 시스템 내부 습도 유지를 위해 소량의 물만 쓰기 때문에 폐수 문제가 거의 없고 큰 배관 공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엡손 측 설명이다.

분리된 폐지 섬유는 '페이퍼 플러스'라는 특수 물질과 결합해 강도와 백색도가 높아지며 이후 압착 과정을 거쳐 종이로 재탄생한다.

페이퍼 플러스에는 강도와 백색도를 높여주는 물질뿐 아니라 흰색과 청록색, 밝은 자주색, 노란색 등 네 가지 염료도 포함돼 모니터 설정을 통해 다양한 색상의 종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한 시간에 6.5㎾의 전력 소비를 통해 A4 용지는 최대 720장, A3는 최대 360장이 만들어진다.

두께는 일반 용지 수준인 90∼110g/㎡에서 마분지 수준인 150∼240g/㎡까지 다양하게 생산할 수 있다.

이렇게 재생된 종이는 원하는 크기로 절단돼 명함이나 팸플릿, 복사 용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히로오카 사무소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폐지 재생 설비는 잉크 제거를 위해 물을 대량으로 쓰지만, 페이퍼랩은 종이컵 한 컵 분량만 사용한다"며 "더욱이 종이 재활용을 통해 목재 사용을 대폭 감소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약 7.9t의 종이를 만들 때 물은 통상 나무 생육 단계부터 7천759㎥ 정도가 사용되지만, 페이퍼랩으로 동일한 양의 종이를 생산할 때 사용되는 물은 약 71㎥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페이퍼랩의 판매가는 약 2억원으로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지난 2016년 일본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미쓰이스미토모를 포함한 은행과 보험사, 건설사, 공공기관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출시 전으로, 현재의 '육중한 체격'을 절반으로 줄이고 디자인도 개선한 2세대 모델이 내년에 소개될 예정이다.

엡손 관계자는 "A-8000은 투입된 폐지의 약 70% 정도만 재생 종이로 생산할 수 있지만 이러한 재활용률을 좀 더 높이고 가격도 경쟁력을 갖춰 출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르포] 5초에 한 장씩 종이가 뚝딱…폐지의 화려한 재탄생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