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팔던 촌구석 동네…'13조 매출' 잭팟 터진 이유는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일본 도쿄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인 나가노현 스와시. 이곳은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배경이 되는 스와호수(위 사진)로 유명하다. 그 덕분에 관광객 발길이 이어진다. 여기에 물이 맑아 사과, 소바, 와사비 맛이 좋은 곳으로 통한다. 하지만 스와시 경제를 이끄는 것은 매출 10조원이 넘는 엡손이다. 1942년 된장공장 터에서 시계를 수리하던 회사가 일약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지난 23일 스와시에 자리잡은 글로벌 IT기업인 세이코엡손(엡손) 본사를 찾았다. 이날 비가 내리면서 도시 한복판 스와호수서 뿜어낸 안개가 본사 건물을 덮었다.

스와시 엡손 본사 한켠에는 회사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모노즈쿠리 박물관'(사진)이 자리 잡고 있다. 모노즈쿠리는 장인정신이라는 의미의 일본어다. 박물관에는 세이코엡손 장인정신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1950년 처음 만든 시계부터, 1960년대 만든 프린터 등이 제작 연도별로 전시돼 있다.
사과 팔던 촌구석 동네…'13조 매출' 잭팟 터진 이유는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이 박물관은 회사의 본사 자리를 허물고 세웠다. 엡손 창업주 야마자키 히사오 등 회사 임직원 9명은 1942년 된장 공장 자리에 처음 엡손 본사를 세웠다. 이 지역 출신인 야마자키 창업주는 쇠락해가던 스와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목적에서 공장을 세웠다. 도쿄에서도 먼 이곳은 일본에서도 시골로 통한다. 엡손 관계자는 "한국으로 보면 강원도 산기슭 한 가운데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지역 경제를 북돋기 위해 세워진 엡손은 세이코 시계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 회사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IT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세이코 시계는 이 대회의 육상, 수영대회 등 타이머로 사용됐다. 엡손은 대회 기록을 인쇄하기 위해 프린터를 개발했다.
1968년 도쿄올림픽에서 사용한 세이코엡손의 타이머 프린터. 사진=김익환 기자
1968년 도쿄올림픽에서 사용한 세이코엡손의 타이머 프린터. 사진=김익환 기자
최초의 소형 디지털 프린터 제품인 'EP-101'을 만들어 대회에 공급했다. 이를 계기 삼아 프린터 기술을 가다듬으면서 세계적 프린터 회사로 발돋움했다. 첫 번째 프린터 제품인 EP에서 이름을 따서 엡손(EPSON)으로 이름을 지었다. EP(Electric Printer·전자프린터)와 SON(후손)의 합성어다. 1980년 개발한 프린터 MP-80 시리즈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몰이하면서 엡손은 일약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미세한 시계 부품을 제조하는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고효율, 초소형, 초정밀 기술이 진화해 나갔다. 각종 프린터 제품과 프로젝터, 산업용로봇 등을 생산하고 있다. 1983년에는 휴대용 컬러텔레비전을 만든 데 이어 초소형 로봇, 스마트 안경 등도 개발에 성공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 외곽 시골 회사는 급성장했다. 세이코엡손의 2022년 회계연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3303억엔(약 13조1700억원), 951억엔(약 9410억원)을 거뒀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프린터로 지난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7.8%에 달했다. 그 뒤를 프로젝터(16.2%), 시계 및 산업용로봇 등(16%)이 이었다.

하지만 장인정신에 기반한 이 회사의 고민도 있다. 최근 종이문서를 출력하지 않는 '페이퍼리스' 문화가 빠르게 퍼지면서 이 회사의 프린터 사업 기반이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높다. 엡손은 대응책에 골몰하고 있다.

내일 오전 9시 르포②로 이어서…

스와(일본)=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