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탈선사고 유가족 10년 투쟁…그들은 논리로 바꿨다 [책마을]
2005년 4월 25일 오전 9시 19분.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서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가 발생했다. 오른쪽으로 꺾이는 곡선 구간을 시속 116㎞로 진입하다가 벌어진 사고였다.

선두의 두 칸이 선로 옆 아파트와 부딪혔다. 107명이 죽고 562명이 다쳤다. 아사노 야사카즈씨는 이날 아내와 여동생을 잃었다. 그의 딸은 중상을 입었다. 이날부터 그의 삶은 원래 궤도를 벗어났다.

"차장 및 관제사와의 무선에 유난히 신경을 곤두세웠던 점, 일근 교육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하며 변명을 생각했던 점으로 인해 운전에 대한 주의가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가 사고로부터 2년 2개월이 지나 발표한 보고서다. 단 12줄로 사고 원인을 요약했다. 사고 원인은 구조적 문제가 아닌, 23세 열차 운전사의 개인적 실책이 됐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궤도 이탈>은 사고 이후 10년 동안 서일본여객철도주식회사(JR서일본)에 맞서 사고 원인을 파헤친 아사노 씨의 행적을 기록했다. 고베 신문 기자였던 마쓰모토 하지무가 사고를 둘러싼 정보를 모은 '논픽션 저널리즘'이다. 아사노 씨를 비롯한 유가족의 관점에서 당시 인터뷰와 언론 보도, 사건 보고서를 정리했다.

아내와 여동생을 떠나보낸 아사노 씨는 사고를 구조적인 문제로 봤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JR서일본은 영업 실적을 위해 배차 간격을 줄이고 운행 속도를 높였다. 애당초 정시 운행이 불가능한 열차 시간표를 편성한 셈이었다.

운행이 지연될 경우 운전사에게 선로 정리를 시키거나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는 등 '일근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는 JR서일본의 고압적인 조직문화가 운전사의 과속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사고를 둘러싼 핵심 논쟁은 그의 소논문에서 드러난다. "재해를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자연 현상으로 보는 인식과 사회 현상으로 보는 인식 사이의 대립"이다. 아사노 씨가 10년 동안의 분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이 간극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JR서일본은 형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한다고 나섰다. 하지만 유가족은 진심으로 성의 있는 사죄와 원인 규명,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요구했다. '가해자' JR서일본과 '피해자' 아사노 씨가 각자 그리는 궤도는 나란히 길을 달리며 전개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사노 씨는 감정 싸움 대신 이성과 논리를 선택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뛰어 넘어 JR서일본 측에 공동 검증을 제안했다. 지역 환경계획 연구소 대표였던 경력을 살려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그는 "이건 과학기술 논쟁이다. 감정론으로만 얘기하다보면 안전으로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그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JR서일본은 오버런이나 지연 등의 경미한 실수를 징계나 평가 대상에서 제외했다.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투자도 늘렸다. 인사와 조직 면에서는 현장 안전을 총괄하는 기술 이사 직책을 신설했고, 안전연구소를 비롯한 연구시설도 확충했다.

그를 10년 간 달리게 한 원동력은 '사고의 사회화'에 대한 강한 의지였다. 아사노 씨는 유가족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사고를 교훈으로 삼아 JR서일본은 자기가 일으킨 사고를 진지하게 반성하고 원인을 검증해야 한다. 그 결과를 유가족에게 제대로 설명할 책임이 있다. 그것을 요구하는 게 유가족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