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700년 전의 재판에 주목하는가, 연극 '회란기'
‘회란기’는 세 번째 작업하는 중국 고전이다. 몰락한 집안의 딸인 기생 장해당이 부자 마원회의 첩으로 들어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녀를 시기한 마부인이 마원회를 독살하고 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아들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내용이다. 고선웅 작품 특유의 변사 같은 운문체 말투, 다소 과장된 몸짓은 여전하다.
이 같은 스타일은 그가 5·18 민주화 항쟁을 그린 ‘푸르른 날에’부터 ‘조씨고아’ 에 이르기까지 비극을 다루는데 있어 꽤 유효했다. 신파적인 요소를 오히려 해학적으로 나타내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슬픔에 매몰되지 않도록 한다. 단, 내용 전달 위주의 1부는 연극적 장치가 적어 조금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선웅 연출은 조명도 특수장치도 없던 옛날의 연극은 어땠을까 하는 상상으로 연극의 원형에 가까운 날것의 느낌을 주고자 미니멀한 무대와 간결한 오브제로만 ‘회란기’ 무대를 꾸몄다고 밝힌 바 있다.
2부에서는 본격적인 포대제의 재판이 이루어진다. 이 인물로 말할 것 같으면 옛날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판관 포청천이다. 요즘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가 시즌2에서 속도감 있게 몰아치듯 이 연극도 2부에서 모든 인물들이 동원되며 빠르게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이 작품의 주제 역시 ‘권선징악’이다.
선을 권하고 악을 벌한다는 이 단순하고 명징한 주제가 7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건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권선징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 때문에 이런 작품을 통해서나마 대리만족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극을 소개하고 감상을 적는 이 곳에 난데없이 우리나라의 사법정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도 죄를 짓고 심판을 받지 않는 이상한 경우를 적잖게 보는 것도 사실이다. 장해당은 극 중에서 “돈 있고 줄 있는 사람은 간단히 끝내면서, 돈 없고 줄 없는 사람은 모질게도 족쳐대는 세상”이라고 절규한다. 극장의 관객은 누구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흔히 연극을 ‘시대의 거울’이라고도 한다. 소설,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대의 희로애락을 담는다. 그러나 이런 고전 작품을 보면 오히려 원전 혹은 연극이 시대를 향해 꾸준히 나아갈 바를 보여주고 반영하기를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세기에 많은 예술들이 그러했다. 시대를 담기도 하고 그보다 앞서가기도 하며 현실과 긴장 관계를 형성했다. 2부 포대제의 단호하고 엄정한 판결을 보면서 우리 사회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바로 앞에서 배우들이 실제로 말하고 소리 지르고 울고 있는 연극이란 장르가 갖는 그 환기성은 다른 어느 장르보다 강하다. 신문, 뉴스에 도배되는 답답한 소식에 지친 그대, 넷플릭스도 좋지만 극장으로 가서 ‘회란기’ 판관 포대제의 판결을 보라. 제법 위로가 될 것이다. 특히 모든 인물이 무대에 서게 되는 마지막 장면의 시각적인 쾌감은 이번 연출의 백미이다.
‘회란기’는 지난 해 예술의 전당에서 초연됐고 이번 두산아트센터 공연이 두 번째였다. ‘조씨고아’처럼 앞으로 극단 마방진의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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