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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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의 외교·안보 라인의 쇄신 인사를 계기로 대통령실과 내각의 인사 폭이 당초 전망보다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필요시 여론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과감하게 바꿔버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때문이다. ‘어공’(어쩌다 공무원) 출신에 비해 늘공(직업 공무원) 출신의 전문가들이 중용되는 흐름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 “나도 인사 대상자인가”

30일 대통령실은 전날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의 사퇴 소식으로 온종일 어수선했다. 아침과 점심 식사 전후 삼삼오오 모여 인사 뒷얘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한 직원은 “취임 1주년을 한달여 앞두고 외교·안보 라인이 사실상 쑥대밭이 됐다, 대통령실 전체가 뒤숭숭하다”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혹시나 공직기강실 아닌가 해서 움찔하게 된다”고 전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요즘 만나면 인사 아니면 총선 출마 얘기 뿐”이라고 귀띔했다.

이런 분위기는 전례 없이 과감하고 신속하게 단행된 외교·라인 인사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대통령실 수시 인사에 어느 정도 적응해 왔던 직원들도 “예상을 뛰어넘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실제 윤 대통령은 김 전 실장이 지난 5~9일 방미로 자리를 비운 사이 외교부로부터 한·미 공동 문화 행사 보고 누락을 확인한 후 곧바로 인사 조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20일 남짓한 사이에 김일범 의전비서관, 이문희 외교비서관에 이어 김 전 실장까지 차례로 물러났다.

방아쇠를 당긴 사건은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 등 한·미 간판 스타들의 합동 공연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가 큰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에 윤 대통령의 실망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보고가 왜 누락됐고, 어떤 사유로 윤 대통령에게 보고 됐는지 여부에 대해선 여전히 미심쩍은 측면이 많다. 이에 대해 인사·안보 라인 관계자들은 다른 여러 문제들이 누적된 결과라고 강조하고 있다.

○직업 외교관 전성시대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미국·캐나다 △ 같은 해 11월 동남아 △올해 1월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3월 일본 등 해외 순방을 거듭하면서 외교·안보 라인 개편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이 예상보다 빨리 물러난 이후에도 속전속결로 후임자를 확정한 배경도 미리 인사판을 짜놨기 때문이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조태용 주미대사를 안보실장에 앉힌 것도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에선 안보실 ‘넘버 1·2’였던 김 전 실장과 김태효 1차장이 모두 ‘비(非)외교관’ 출신이라는 사실이 문제라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한·일정상회담 등 정치적으로 찬·반이 갈리는 사안에 대해 외교부 조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불만때문이다. 김 전실장과 김 차장 간 불화설, 비서실관 안보실 간 ‘정보 칸막이’ 문제도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여러가지로 문제가 제기되던 외교·라인의 환부를 대통령이 예리한 칼로 신속하게 드러냈다”며 “취임 1년에 가까워 오면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전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내부에선 결국 ‘외교관 순혈주의의 승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했다.

○ 개각폭 커지나

여권에선 취임 1주년을 맞는 오는 5월 대통령실 참모들과 내각의 인사 폭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초엔 대통령실 인사라인은 국회 청문회 절차를 거쳐야 하는 장관급 인사는 최소화하면서 차관과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하 참모진을 대폭 교체하는 방안이 유력했다.

이번 외교·안보라인 쇄신을 지켜본 측근들은 “인사 폭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통령실에선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대통령실 지시 사항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대통령실 참모들과 장관들의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 부처들에 대한 불만들도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 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대표적인 부서로 거론되고 있다.

기획재정부, 통일부, 국토해양부, 법무부 등 부처는 자천타천으로 수장들의 총선 출마가 예상된다. 대통령실에선 정무수석, 홍보수석, 시민사회수석, 사회수석실 등이 출마 또는 인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