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508명 증언 바탕 작성…6년간 비공개로 발간하다 공개 전환
北인권침해 공식화 의미…권영세 "북한 인권 실질 개선위해 노력"
정부, 북한인권보고서 첫 공개 발간…"청소년까지 공개처형"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 500여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가 31일 공개된다.

북한인권보고서는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이듬해인 2017년부터 매년 발간돼 왔지만 일반에 공개되는 건 처음이다.

그간엔 탈북민의 개인정보 노출 우려와 북한의 반발 등을 고려해 비공개했는데, 올해부터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널리 알린다는 차원에서 방침을 바꿨다.

30일 통일부에 따르면 약 450쪽 분량의 보고서는 ▲ 시민적·정치적 권리 ▲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 취약계층 ▲ 정치범수용소·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등 크게 4개 장으로 구성됐다.

보고서는 "북한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자의적 생명 박탈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즉결 처형' 사례에 대한 증언이 지속적으로 수집됐다고 밝혔다.

이어 "살인 같은 강력 범죄뿐만 아니라 마약거래, 한국 영상물 시청·유포, 종교·미신행위 등 자유권 규약상 사형이 부과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해 사형이 집행됐다는 증언들이 수집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여성들이 가정·학교·군대·구금시설에서 각종 폭력에 노출되고, 청소년이 한국 영상물을 봤다는 이유로 처형되는 일이 있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2015년 원산시에서 16∼17세 청소년 6명이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고 아편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고 곧바로 총살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2017년에는 집에서 춤추는 한 여성의 동영상이 시중에 유포됐는데, 당시 임신 6개월인 이 여성은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동작이 문제가 돼 공개 처형됐다고 한다.

또 식량 배급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대부분 주민은 개인 경제활동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무상치료제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의료진에게 현금, 현물 등 사례를 해야 한다는 증언이 나왔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정치범수용소 수용민에 대한 처형과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고,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은 감시와 차별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런 사항들은 대부분 유엔이나 국내외 민간단체에서 내놓은 관련 보고서에 담긴 내용들이지만, 정부 보고서에서 다뤄지면서 공식화하는 의미가 있다.

이번 보고서는 2017∼2022년 탈북한 북한이탈주민 508명이 증언한 1천600여개 인권침해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증언자의 여성(53%)과 남성(47%) 비율은 비슷했고, 연령대는 20대(31.1%)가 가장 많았다.

거주지는 양강도(59.1%), 함경북도(17.3%), 평양시(10.8%) 순이었다.

통일부는 접경지역 사례가 많이 인용됐고, 코로나19에 따른 북한의 국경봉쇄로 탈북민이 급감하면서 2022년 이후 사례가 매우 적은 한계도 있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이번 보고서가 2016년 초당적 협력으로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발간하는 정부의 첫 공개 보고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북한인권 분야의 공신력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으로 배포하고 영문판 발간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발간사에서 "보고서 발간은 우리 정부가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결과물"이라며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실질적 해법을 찾는데 근본적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 당국의 의미 있는 태도 변화와 책임 있는 행동을 이끌어 내는 데 있어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해내기를 희망한다"면서 "북한 주민들이 인간적인 삶을 누리게 되는 그날까지 국제사회와 연대하고 협력해 인권 개선을 향하여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