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죄악이다.’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구마 겐고가 쓴 책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을 관통하는 구절이다. 책만 관통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30년 넘는 그의 건축가로서의 이력을 요약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 책은 2021년 도쿄올림픽이 열린 국립경기장을 설계한 구마 겐고가 자신의 건축에 대한 생각과 작업의 진화 과정을 시기별로 정리한 책이다. 책의 3분 1가량은 텍스트, 3분의 2는 자신이 선별한 55개 작업물의 사진과 설명으로 구성돼 있다.

건축을 모르면 지루할 것 같은 소재지만 의외로 몰입감이 있다. 주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건축계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새로운 것을 실험해온 남다른 직업 의식이 비건축인에게도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남루함, 저예산, 패배, 사라짐(소거) 같은 비주류적 요소가 결국 그를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구마 겐고는 1954년생이다. 아버지를 따라 1964년 제1회 도쿄올림픽이 열린 국립요요기경기장을 방문했다가 건축물에 압도돼 건축을 직업으로 삼기로 한다. 그는 “건축은 한계가 있는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해 소중한 토지 위에 건물을 세우는 것이니 그 자체로 범죄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 건축가들은 건축에 대한 반성과 죄의식이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저자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작고, 낮고, 느린 ‘삼저(三低) 주의’ 건축을 계속 시도한다. 그는 미야기현 도메시의 한 마을에서 노가쿠(일본의 고전 연극) 극장을 짓는 일을 맡았는데, 예산이 일반적인 노가쿠 극장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이에 자연과 더 잘 어우러지는 옥외형 극장을 생각해내고 여러 낭비 요소를 줄여 성공적으로 완성한다. “저비용이어서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그는 자평했다.

이런 경험은 도쿄올림픽 국립경기장을 설계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2012년 1차 공모 당선작이 고비용 논란으로 철회되자 구마 겐고는 2015년 2차 공모에서 나무를 소재를 활용한 친환경 설계안을 제출해 당선됐고, 이는 그를 세계적 건축가의 반열에 올려놨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